'시크하다'라는 책을 오래전부터 눈여겨보고 있었다. 추상적인 제목이 어떤 주제를 다루는지 구미가 당겼었지만 막상 프랑스 문화에 대한 작가의 주관적인 글이라는 대목에서 조금 실망스러웠다. 솔직히 프랑스, 일본 문학이나 영화들은 내게 늘 모호하고, 명확하지 않은 표현에 완독 하지 못했던 기억이 대부분이어서 자신이 없었기 때문이다.
그래도 한국인이 프랑스에 대해서 쓴 책이라는 사실이 평소 가지고 있던 편견을 조금이나마 깰 수 있도록 해 주었으면 하는 기대로 서문을 펼쳐 들었다.
[행복은 경제력과 상관없는 하나의 노하우..
내 인생을 다른 방식으로 바라보는 방법, 이것이 바로 '지혜'가 아닐까?]
경제력과 상관없는 노하우가 행복이라고 말한다. 그렇다면 행복이란 것이 인생을 다르게 바라보는 기술(技術 Technique)에 있다는 뜻인가?
'기술'이라는 단어는 반복적으로 내가 노력하면 어느 정도의 수준까지는 이를 수 있다는 뜻인데 그러면 프랑스에서는 인생을 다르게 볼 수 있는 방법을 어떻게 가르칠까?
[사진출처:네이버 이미지 검색]
그것은 놀랍게도 중학교 때부터 본격적으로 시작한다고 했다. 철학을 정규과목으로 채택해 플라톤, 니체, 칸트의 원서를 읽고 수업 시간에 토론하면서 자연스럽게 죽음, 물질, 성공, 섹스에 대한 이야기를 열정적이게 주고받는다고 했다.
평소 삶의 궁극적인 문제에 대해 물어보아야 할 중요한 주제가 진정 조기교육을 해야 한다는 나의 생각과 일치하는 것에 놀랐다.
반면 어린 친구들에게 죽음이 무엇이고, 삶이 왜 중요한가에 대한 근본적인 질문과 답도 없이 막연한 공부와 좋은 대학, 좋은 직업이 유일한 행복의 정답임을 강요 받는 우리 한국의 교육 현실이 생각나 마음이 아팠다.
죽음과 삶에 대한 진지한 고민으로 늘 마음이 무거웠던 나의 10대 시절. 학교에서의 나는 늘 겉돌았고, 같은 고민을 하는 친구 하나 없이 12년의 긴 외로운 학교생활의 기억이 다시 떠올라 씁쓸하면서도 그렇게 일상적이고 편한 분위기로 서로 토론할 수 있는 프랑스의 십 대들이 부러웠다.
나는 이 책의 1/3 지점에서 내 사춘기 시절 늘 죽음을 생각하며 아래와 같이 글을 적어 놓았다.
'나는 어렸을 때부터 왜 사람들이 삶과 죽음에 대해 말하기를 회피하는지 늘 궁금했다. 죽음이라는 주제에 대해 고민하는, 그들 속에 있는 내가 마치 지구별의 외계인처럼 느껴졌다.'
성인이 되고 중년이 된 지금도 삶 이전에 죽음에 대해 늘 생각한다. 이런 내게 사람들은 뭐가 그렇게 진지하고, 고민이 많은지 내게 반문한다. 너무 복잡하게 생각하지 말고, 쓸데없는 고민하지 말라고. 그냥 죽지 못해 산다고도 하고, 사는데 의미 따위가 어딨냐고, 그냥 살아 있으니까 사는 거다, 그러니 너도 그렇게 유난 떨지 말고 그냥 살아라고.
지인들의 말에 어느 정도 수긍은 하지만 여전히 나의 오래된 질문을 상쇄시키지는 못했다. 질문하지 않고, 답 조차 찾을 생각을 하지 않는 그들이 의아했다. 하지만 프랑인들이 죽음과 삶에 대해 각자의 답을 찾으려 노력하고, 어른이 되어서도 여러 가지 다양한 주제로 진지하고 열정적이게 토론하는 일상의 모습들을 책을 통해 들여다보며 늘 진지하게 고민해 왔던 나의 생각들이 이해받은 느낌이었다.
질문하고 함께 고민하는 사람들. 답을 찾아가는 길이 고독하거나, 외롭지 않을 그들이 진심 부러웠고, 나 또한 나와 비슷한 질문을 가진 사람들과 함께 고민하고 싶은 마음이 간절해졌다.
[출처: 네이버 이미지 검색, 영화 '모아나' 장면 중]
프랑스에서 인생을 다르게 볼 수 있도록 조기 교육하는 또 다른 기술은 아주 어린 유아 때부터 오감(五感)을 통해 사물을 개인의 느끼는 그대로 표현하는 것이라고 했다. 이것은 오감을 단순히 표현하는 것에 그치지 않고 삶의 가장 기본적인 감각을 통해 먹고 마시고, 그로 인해 다양한 관계를 맺는 일, 즉 삶을 즐길 줄 아는 방법을 훈련하는 것이라고 했다.
[프랑스는 자연이 밥을 주므로 자연이 주고 싶은 밥을 먹을 줄 안다는 것이 자연에 대한 도리라고 후손에게 가르친다. 또 자연에도 서로 상부상조하는 메커니즘이 있는데 사람이 자기 먹고 싶은 것을 얻으려고 이 메커니즘을 무너뜨리면 반드시 보복당한다고 교육한다.]
교육이란 이런 것이어야 했다. 무엇이 행복인지 알아가는 과정에 있는 우리에게 무엇을 느껴야 하고, 그 느낌의 주체가 누구인가를 알게 하는 것, 그리고 인간 이외의 생명의 존엄함과 자연의 순환 속에 인간 또한 순응하며 사는 것이 얼마나 중요한지를 몸으로 느끼게 해 주는 것이 얼마나 중요한 일인지를 체험하고 자각하게 하는 것, 이것이 교육의 기초가 됨이 마땅한 일이었던 것이다. 자연을 대하는 태도가 인성의 기본이 되는 것을 그들은 이미 알고 있었다고 하면 너무 과한 것일까?
성공과 소비에 집중된 우리의 교육. 상생보다는 경쟁을, 절제의 능력과 힘보다는 소유와 소비의 충족이 행복을 보장할 것처럼 우리를 미혹하고 있는 지금의 시간이 위험하고, 위태롭게 느껴졌다.
백 년이 넘어 낡고, 좁아터진 아파트에서 에어컨도 없이 사는 그들. 부모나 조모, 조부가 물려준 차, 소품들을 매우 가치롭게 여기는 프랑스인들은 지금 자신이 가지고 있는 것에서 즐기고, 그 이상을 소비하기보다 절제하는 것을 당연하게 받아들인다고 했다. 그래서 프랑스인들은 신용카드를 거의 갖고 있지 않다고 했다. 이 부분에서 나 또한 많은 반성을 했다.
프랑스 하면 '개인주의'와 더 나아가 '이기주의'라는 단어가 떠오른다. 작가는 말한다.
[프랑스인은 자기 자신으로 꽉 차 있고, 심지어 배우자나 가족일지라도 타인을 자기중심에 두지 않는 '이기주의'철학에서 나온다. ]라고.
이 부분에서 나는 한참을 생각을 했다. 모든 결정의 중심에 '자신'을 둔다는 건 무슨 뜻일까? 그건 내가 가장 자신 없어 잘 하지 못하는 부분이기도 했다.
많은 상황에서 늘 괜찮다고 말하는 내가 결국은 상대에게, 또는 가족에게 서운함을 터트리게 되는 이유였다는 걸 새삼 깨닫게 되었다. 싫고 좋음을 정확하게 표현하기, 지나치게 배려하지 않는 것이 관계를 더욱 어렵게 하고, 멀어지게 할 수 있다는 것으로 이해되었다.
가족과 친구, 그리고 다양한 관계에서 매우 중요한 부분이기에 소소한 부분부터 실질적인 연습이 필요하겠다
마지막 부분에서 작가는 말한다.
[연애에 목적이 없듯이, 인생은 즐거워서 사는 것이지 이유가 있어서 사는 것이 아니다. 연애가 어떻게 끝나건 사랑하는 사람과 아름다운 시간을 보내봤다는 것이 중요하듯이 인생도 살아봤다는 것이 중요하지 성공했는지 여부가 중요하지 않다.]
작가는 어렸을 때 유학을 떠났고, 한 개의 대학을 졸업한 것 이외에는 음악, 미술 등 다양한 관심사로 여러 대학을 다니다 중간에 그만두었다. 4개 국어에 능통해서 천재 소리도 듣는 사람이었지만 내가 생각하는 작가는 공부하기를 즐겨하고 호기심이 매우 많은 사람이라는 인상을 받았다.
호기심. 그것은 어떤 목표를 이루겠다는 것보다 배우는 즐거움을 아는 사람이라는 뜻이기도 할 것이다. 작가는 40세로 다양한 방송활동과 강연, 그리고 유튜버로 활동 중이다. 그 주제도 매우 다양하다. 호기심이 왕성하고, 어떤 것이든 궁금해서 이곳저곳, 여기저기 파고드는 사람이 바로 작가인 듯했다.
그렇게 과정을 즐기고, 여기저기를 들여다보며 가다 보면 다양한 배움의 즐거움을 만나고 그러다 인생의 다양한 의미도 발견하게 될 것이다.
내가 이 책을 좋아하는 부분도 이런 부분이다. 무언가를 향해 끊임없이 노력하고, 앞으로 나아가는 것도 훌륭하지만 천천히 나의 속도로 인생과 삶에 대해 묻고, 여기저기서 다양한 답을 찾아가는 과정, 그것이 인생이고, 그것이 행복이지 않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