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가 이명수 님을 알게 된 것은 '세월호'사건에 대해 마주할 용기가 아주 조금 생겼을 때 우연히 듣게 된 정신과 의사인 정혜신 님의 강의를 즐겨 듣게 되면서부터이다. 강의를 할 때 늘 가슴 깊숙한 곳에서부터 나오는 울림이 가늘어지는 호흡과 함께 말의 끝부분은 대부분 가늘게 떨렸다.
아이를 잃은 부모의 마음을 앞으로 나서 적극적으로 부축했던 사람이 정신과 의사인 정혜신 님이라면 묵묵히 그녀를 약속 장소에 데려다주고, 그녀의 강의를 멀찍이 뒤에서 들어주던 사람은 이 책의 작가, 이명수 님이다.
이 책은 제목만큼 표지도 강렬한 빨간색이지만 답지 않게 책의 내용은 시이다. 치유의 내용이 담긴 시에 작가가 주관적인 해석의 글이 담겨 있다. 그는 시라는 문학의 장르만큼 자신의 주관적인 경험상, 임상실험 결과 치유의 가장 좋은 건 없다고 확언했다. 그의 말처럼 왜 하필 詩(시)일까?
이 질문에서 어렸을 때부터 사람과 신에게 위로와 해답을 찾다가 더 심한 갈증으로 돌아섰던 기억이 났다. 그리고 짧은 시로 가슴 깊이 위로받았던 경험이 떠올랐다. 작가도 그 말이 하고 싶었던 것일까?
40년 넘게 그가 읽고 소중히 간직해 왔던 시를 풀어 그가 가장 잘할 수 있는 방법으로 사람들에게 위로와 치유를 하고 싶었던 것이 아닐까 싶다. 수많은 말보다 짧은 시 한 소절의 큰 울림과 힘을 아는 사람이 이명수 작가이다. 어린 자식을 잃은 부모만큼의 지옥이 있을까마는 사람마다 각자의 지옥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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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가는 오래된 자신만의 지옥에서 곡소리조차 내지 못하는 이들을 위해 책을 통해 대신 울어 주고, 대신 곡을 해준다.
[산이 좋아지고 물이 좋아지는 해가 뜨고 달이 지는 뜻을 새겨듣는 오십에 여태 날 위해 심히 부지런히 부끄럽게 울어왔으니 이제 남을 위해 울어 줘도 되리라 슬퍼도 울 힘이 없고 울래야 울 수도 없는 이들을 위해 대신 울어줄 수 있으리라
최서림의 곡비哭婢1 중 발췌
-옛날 장례(葬禮) 때 곡하며 따라가던 여자(女子) 종을 말함.]
그리고 '지금 일어설 수 없으면 일어서려 하지 않아도 된다. 더 주저앉아 있어도 된다. 꺾였을 때는 더 걸으면 안 될 만한 이유가 있는 거다. 그걸 인정해 줘야 한다. 충분히 쉬고 나면 저절로 걷게 된다. 당신은 원래 스스로의 다리로 걸었던 사람이다. '절대적으로 괜찮은 존재였던 것을 잊으면 안 된다'라고 말한다.
[자주 만나면서도 외면하며 지나가는 얼굴들 소리 없이 내 이름을 밀어내는 이데올로그들 중략 이 세상 많은 이들처럼 나도 그저 평범한 몇 개의 열쇠만을 갖고 있을 뿐이다 그러나 두드리는 일을 멈추진 않을 것이다 사는 동안 내내 열리지 않던 문이 나를 향해 열리는 날처럼 기쁜 날이 어디 있겠는가 문이 천천히 열리는 그 작은 삐걱임과 빛의 양이 점점 많아지는 소리 희망의 소리도 그와 같으니리
-도종환의 열쇠 중]
이 시에서 작가는 '내내 열리지 않던 문이 나를 향해 열리는 날, 내게 꼭 맞는 열쇠 딱 하나, 찰칵, 하고 열릴 때의 그 손맛 같은 희열감' 등에 대한 말을 했고 나는 내가 무척 사랑해 마지않던 M이라는 친구를 떠올렸다.
내가 곡소리조차 내지 못하고 있을 때 내 대신 곡소리를 내 줄 거라 믿었던, 내가 애정 한 친구 M, 그리고 내 지인들에게 나도 모르게 커져 있었던 기대감이 문제였던 것인지 그저 담담하게 침묵하는 그들에게 그만 나는 상처를 받고 말았다.
무엇이 문제인지 나는 아직도 알지 못한다. 그저 서운함으로 더 이상 아프지 않기 위해 그들과 거리를 두고 있는 지금 나는 서서히 그들에게 문을 닫고 있다.
빛이 가득했던 그 방문이 서서히 닫히고 언제 열릴지 알지 못한 채 흰색의 천들을 방안 가구 하나하나에 씌워가고 있다.
참 빛났었는데.... 기쁨과 환희의 시끌벅적함이 가득했었는데....
이내 가슴이 따끔따끔 아려왔다. 사랑은 이별을 포함한다고 나는 자주 말해왔다. 언제냐는 시간의 문제일 뿐 모든 관계는 이별을 수순으로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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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 영화 대사처럼 죽음은 생명이 끝나는 것이지 관계가 끝나는 것은 아니다. 계속 이어져 있다. 사고로 다리나 손을 절단한 사람은 한동안 잘려나간 손가락, 발가락이 아프다고 소리를 지른다. 실제 부위가 없으나 있는 것처럼 느끼는 증상, '환상통(phantom pain)'이다. 이별 과정에서도 환상통은 똑같이 나타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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눈에 보이지 않아서 그렇지 평생 절뚝거리며 살아야 한다. 그렇게 살 수밖에 없다. 내가 유난을 떨거나 심약해서 그런 게 아니다. 그게 정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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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때 받아야 할 것은 자기 처벌이 아니라 위로다. 그이를 얼마나 사랑했는지를 가장 잘 아는 사람은 바로 당신이다. 그것으로 충분하다.]
그렇다. 나는 반년 가까이 아프고 있고, 그리고 계속 아플 예정이다. 사랑했던 시간, 관계했던 긴 시간만큼 아니 그보다 더 긴 시간 아파할 수 있는 것이다. 나는 그렇게 미련하게 오랫동안 아픈 사람이다. 작가는 그런 나를 혼내고, 미워하면 안 된다고 말하는 것 같았다.
얼마나 우리가 좋았고, 아름다운 관계였는지 모른다. 하여 서로를 잃어버리는 시간이 오더라도 '환상통'처럼 오랜 시간 아파해야 함이 옳다. 아파도 된다고 그가 말해 주었으니까.
[모난 돌멩이라고 모난 파문으로 대답하지 않는다 검은 돌멩이라고 검은 파문으로 대답하지 않는다 산이고 구름이고 물가에 늘어선 나무며 나는 새까지 겹쳐서 들어가도 어느 것 하나 상처입지 않는다. 바람은 쉴 새 없이 넘어가는 수면 위의 글줄을 다 읽기는 하는 건지 하늘이 들어와도 넘치지 않는다 바닥이 깊고도 높다
-권정우의 저수지 중 발췌]
저수지처럼 한 없이 품어줄 수는 없어도 악다구니 쓰지 않고 조용하고 순하게 돌아설 수 있다. 모난 돌멩이처럼 가슴에 들어와 박혔어도 내 마음 안에서 돌고 돌아 몽돌로 내려놓을 수는 있다.
좁디좁아 이리저리 부대끼고 소란스러움 가득한 가슴이지만 고운 시와 글들을 대하며 얼르고, 서늘한 바람 한 줌과 파랗게 시원한 하늘 한 줄기로 조용조용 잠재운다.
그렇게 오랜 시간 나와 함께 하는 '나'와 화해하고, 얼뤄가며 살아야 한다고 시로, 이야기로 내게 작가는 말해 준다.
[살다 보면 진공상태 같은 고립감을 살갗으로 느낄 때가 있다. 음소거 상태의 텔레비전을 볼 때처럼 현실감은 없는데 내겐 현실인 상황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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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계에서의 배제가 곧 죽음인 것이다. 뇌파촬영을 해보니 '내가 세상으로부터 배제되었다'는 느낌은, 육체적 고통 중 초고 등급이라는, 손가락 끝을 불에 태우는 고통과 맞먹는다. 그런 고통이 일상적으로 지속되면 그게 지옥이다.
생존의 최소 단위는 한 사람과의 연결이다. 생명의 모스부호들이다. 그 신호만 있으면 어떤 고립 상황에서도 사람은 살 수 있다. ]
지금의 상황에 많은 사람들이 강도만 다를 뿐 이와 비슷한 경험들을 하고 지내고 있을 것이다. 나 또한 움츠러들고, 진공상태로 지내다 보니 모든 공기의 중심에는 나의 숨, 나의 생각에 집중된다.
많은 상황에서 예민해지고, 소외감을 느끼고, 고립감을 느낀다. 그것은 상황에서 오는 것보다 스스로의 생각 안에 갇혀서 오는 것이 더 많은 거라고 생각한다.
물어보지 않았으니 누구도 대답하지 않는다. 애매모호하다. 어렸을 때는 그 애매모호함을 견디기 힘들어 쩔쩔맸었다. 정도의 차이지만 지금도 다르지 않다. 작가는 말한다.
[날이 밝으면 저절로 모든 게 명확해진다. 특별히 사람 관계에서 개와 늑대의 시간을 통과한다고 느낄 땐 혹시 이게 지옥이 아닌가 생각할 수도 있다. 아니다. 애매모호함의 작은 스트레스만 잘 견디면 금방 괜찮아진다.
"치유란 동굴 속에 숨은 사람을 끄집어내는 게 아니라 그의 옆에서 어둠을 함께 감내하는 일이다. 그러다 보면 그가 동굴에서 스스로 걸어 나오게 된다."
젊은 승려가 치는 종소리가 맑지 않은 까닭은 미숙해서라기보다 앞선 종소리가 돌아올 때까지 다음 종소리를 충분히 기다려주지 않은 탓이란다. ]
쨍하게 파랗고, 맑은 하늘처럼 빛났던 시간. 그리고 확신과 믿음이 가득했던 관계에서 멀어지고 있는 시간을 혼자 보내고 있다. 이런저런 이야기들이 들려오지만 그 또한 또렷한 소리가 아니다. 많은 사람들 속에 관계하고, 깊숙이 그들 속에 들어앉아 있었지만 지금은 혼자이다. 아니.. 많은 사람들이 그러하리라.
오랫동안 사람에 의존해 살아왔었고 그로 인해 많은 일들로 나 에너지와 시간을 할애하며 살았지만 정작 내 스스로에게 집중하는 시간은 그다지 많지 않았다. '나'를 소외시키고, 배재시킨 시간이 길었다는 생각이 문득 들었다.
'내 마음이 지옥일 때'라는 책의 시작에서 내 마음의 어지러움의 원인이 바깥에 있다고 생각했지만 결국은 내 안에 있었다는 결론에 도달했다. 또 시작에는 친구도 있었고, 아버지도 있었고, 내가 사랑하는 이도 있었지만 지금은 '나'라는 목적지에 도착해 있다.
타인에게 의존하기보다 자신과 벗하는 삶에 익숙해지기로 한 것이다. 어렸을 때 읽었던 자기 개발서의 한 구절이 떠오른다.
'혼자서 잘 지내는 사람이 둘이서도 잘 지낸다.'
곧 나는 50대로 진입하게 된다. 30대에서 40대를 건너오면서도 많이 성장했고, 인생에 대해서, 삶에 대해서 생각이 많이 바뀌었고 지금도 그러는 중이지만 다가오는 50대에는 좀 더 나 자신과 친해지고, 혼자의 시간을 보내는 것을 좀 더 편안하게 보낼 수 있는 내가 되어 보기로 한다.
나 스스로 많은 이들을 떠나 왔고 떠나보냈지만 결국 최후에 남겨질 이는 바로 나 자신임을 좀 더 절실하게 느껴가면서 지내보고 싶은 마음을 먹어보며 글을 마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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환상통 -바다에 지는 별-
두 사람이 한 사람처럼 좋았던 시간 이별 앞에 서니 다시 두 사람 한 사람같이 좋아하던 노래는 두 사람의 것도 되지 못 한채 허공에서 길을 잃었다.
당신이 묻어있는 그 노래는 한참을 미아로 떠돌았다. 툭툭 당신을 털어내고 맨 귀로 들으려 해도 갓 문신한 피부처럼 벌겋게 성나 있다
누군가의 달큰함이 묻은 그 노래가 다시 들려왔을 때 몇 겁의 다른 인연으로도 완쾌되지 않는 당신이라는 통증이 씀벅씀벅 올라온다.
나라는 존재가 사라지는 날 함께 사라질, 당신이라는 통증 그냥 이럭저럭 나랑 못 죽어져 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