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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바다에 지는 별 Apr 22. 2021

구원의 호소 없이 살아내는 인간의 용기

시지프 신화-자살과 무의미한 인생을 위로하다


 "정말로 진지한 철학적 문제는 오직 하나, 그것은 바로 자살이다.  인생이 굳이 살 만한 가치가 있는 것인지 아닌지를 판단하는 것, 그것은 철학의 근본적 질문에 대답하는 것이다. 그 외에 세계가 3차원인지, 이성(理性)의 범주가 아홉 개인지 열두 개인지의 문제는 다음이다.  이런 문제들은 장난이다.  우선적으로 답해야 할 문제가 아닌 것이다."

까뮈는 책의 첫머리에서 자살(自殺, suicide)은 인생에 진지한 물음이고, 그 어떤 질문보다 우선적으로 답을 해야 한다고 말하고 있었다.

그리고 그가 말한 것처럼 나는 오랫동안 조용히 죽음 또는 자살을 마음속으로 준비했었다.

어린 나이였지만 삶이란 것이 무척이나 외롭고, 우울했다. 기댈 곳 없는 삶이 높은 산처럼 엄두가 안 나는 것이라는 생각을 자주 했고, 사춘기 때는 자살을 한 두 번 실행에 옮긴 적도 있었다.

그것은 나이가 먹어가는 것에 비례하는 무게에 잠식당한 채 허깨비처럼 지금을 살았고 내 인생의 부당함에 이를 갈았다. 하여 까뮈의 말처럼 나는 자살로 세상에게 복수하고 싶은 유혹과 매일 싸우며 살았다.

나는 지금도 자살하지 않을 이유를 찾는 것이 시급한 상황에 있고 마침 '시지프 신화'를 만난 것을 운명이라고 하면 너무 거창할지 모르지만 나는 책을 다 읽은 지 일주일이 지났지만 그 영향권의 중심에 있다.

사람들은 말했다.  뭘 그런 일로 죽음까지 생각하냐고... 다 그렇게 산다고.. 그러니까 그냥 살라고.
하지만 그들의 말은 내게 구체적인 답이 되지 못했고, 일상적이게 죽음과 가까워지려는 나를 돌려세우지는 못 했다.

그런 나에게 까뮈는 말한다.

자살은 살아갈 만한 가치가 없다는 것을 고백하는 것이며 삶을 지속하는 수많은 이유 중 하나가 습관이라고 말한다.  그 습관화된 삶을 그만두는 자살이라는 것은

삶의 심오한 의미의 전적인 부재,
부산스러운 일상의 어이없음(나는 이 대목에서 웃음이 났다.),
고통의 무용함을 본능적으로나마 알아차렸다는 것을 전제한다고 말했다.

이 글에서 까뮈가 얼마나 죽음에 대해 구체적이고, 진지하게 마주했는지를 깊이 공감하며 '철학'이라는 높은 벽과 거리감을 극복하고 책에 빠져 들었다.

하지만 여전히 까뮈가 말했던 '부조리'에 대한 명쾌한 답을 찾기는 쉽지 않았다. 어렴풋이 책을 읽는 내내 죽지 않을 이유, 삶의 유의미를 찾고자 하는 것 자체도 부조리요, 삶 자체가 '부조리'라는 의미로 받아들였다.

그 부조리를 인정하고, 헛된 희망과 기대를 가지지 않기, 그저 있는 그대로의 부조리를 살아내라는 그의 말에 나는 눈물이 났다.

진정 삶이라는 부조리와 자살을 생각하지 않을 수 없는 지금의 삶에서 희망과 기대, 꿈이라는 것 자체만으로 슬픔이 시작된다는 그의 말이 그저 머릿속 연산으로 나온 말이 아닌, 가슴에서 나온 말임을 확신하게 되면서 그는 도대체 어떤 삶을 살았기에 이리도 죽음과 삶에 대해 진솔하게 쓸 수 있었을지 매우 궁금해졌다.

1913년에 태어난 까뮈. 그의 아버지 고아원에서 자랐고 성인이 되어 결혼해 살다가 전쟁에 징집되어 사망했다. 이후  까뮈의 어머니가 청소부로 일하면서 어렵게 살았다고 한다.

어머니는 내성적인 성격이었고 외삼촌은 지능이 낮은 청각장애인으로 집안의 분위기가 그리 밝지는 않았으리라.  집안의 어려운 경제적 사정에도 까뮈는 학교에서 장학금을 지원받아 공부를 할 수 있었다. 그리고 대학에서 장 그르니에 교수를 만났고 이때 처음 결핵이 발병한다.  

글을 쓰고, 다양한 사회활동과 강의에, 연극까지 그는 열정을 다해 살지만 결핵은 계속 그의 발목을 잡는다.  교수가 되기 위한 시험도 결국 결핵으로 인해 포기할 수밖에 없었다.  

결국 지병으로 교수는 되지 못했어도 꾸준히 책을 쓰고, 연극을 하며, 다양한 계층의 사람들과 어울려 정치와 사회에 적극적인 참여로 열정을 다해 자신의 삶을 살아낸다.

그는 결코 글과 책에 숨지 않았고, 적극적으로 시대의 한가운데에서 살았고, 호전과 재발을 반복했던 지병으로 인해 자신의 인생이 우회하는 것에 대해 결코 좌절하지 않았다.

열정 가득 하지만 그에 따라주지 않는 건강상의 문제로 평생 까뮈의 인생을 통해 '부조리'를 깊이 경험했고, 그 경험으로 이 책은 5년의 긴 시간을 통해 완성된다. 까뮈의 인생으로 쓰인 책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닌 것이다.


급작스러운 죽음이 닥쳐 짧은 생을 살았던 그였지만 그 누구보다 자신의 부조리를 향해 격렬하게 반항하며 자신에게 주어진 양의 인생을 끝까지 살아 낸  까뮈의  '우월한 성실함'은 감동으로 다가왔다.

끊임없이 뾰족한 산에 돌을 밀어 올리는 형벌을 받은 시지프의 삶과 무척이나 닮은 까뮈의 인생, 그리고 나의 인생.  


그의 운명은 그의 것이고, 그의 바위도 그의 것이다.  이와 마찬가지로, 부조리한 인간이 그의 고통을 조용히 바라보면 모든 우상은 입을 다물게 된다.


우리는 그가 짊어져야 하는 무게와 늘 다시 만난다.  하지만 시지프는 신을 부정하고 바위를 들어 올리는 우월한 성실함을 가르쳐 준다.

반복되는 일상을 마주할 수 있는 용기, 자신의 반복되는 일상의 버거움과 견디지 못할 정도의 부조리함을 알면서도 자발적으로 그 부조리의 쳇바퀴 안으로 자신을 밀어 넣을 수 있는 인간의 고집스러움을 까뮈는 우월한 성실함이라고 말했다.

먹고살기 위해 기계처럼 일어나 출근하고, 마주하는 다양한 부조리의 반복 속에 영혼을 가출시켜서라도 자신을 지켜내다 퇴근하고, 잠들고, 다시 출근하고, 다시 영혼의 힘을 빼고, 다시 퇴근........

그러나 중년이 되어도, 퇴직의 시간이 다가와도 그렇게 열심히 부조리를 참아내며 살아왔으나 터무니없는 결과물을 마주하게 되는 날이 온다 해도 인생의 무의미함과 허무에 잠식당하지 않고 고집스러운 성실함으로 나의 양적인 삶을 다 살아내는 것이 우월함이라 말해주는 까뮈에게 큰 위로와 이승에서의  빚을 진 느낌이다.

누군가가 그랬다.
모든 예술과 종교는 생활, 삶에서 시작되었고, 철학도 그중 하나라고.

이 모든 분야가 나의 삶과 분리되어 상관이 없었으나 삶을 살아낼수록 삶의 고통과 고민들을 그림에서 해독하며, 철학에서 답을 찾아보게 되는 일이 이번 독서에서 매우 새로운 경험이어서 가슴이 뛰었다.

오래전 제주도의 '빛의 벙커'에서 만났던 그림쟁이 크림트에서 이번에는 철학 친구, 까뮈를 내 인생의 길동무로 맞이한 이 기회가 참으로 감사하다. 다음에는 어떤 부류의 길동무를 맞이하게 될는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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