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렸을 때부터 나란 사람은 어떤 사람인가에 대한 질문을 시작해서 내년이면 오십을 바라보는 지금도 같은 질문을 하면서 살고 있다. 하지만 오래 고민한 질문치 고는 이렇다 할 답을 찾지 못하고 그저 만나는 사람들 속의 다양한 내가 진정 나인지에 대한 생각으로 어지럽고, 혼란스럽기는 마찬가지인 시간을 보내고 있을 즈음 지인이 선물해 준 이 책을 읽게 되었다.
제목도 마음을 끌어당겼지만 표지그림도 무척이나 마음에 들었다. 스스로의 그림자에 손을 뻗는 여인의 그림이 참 인상적이다.
작가는 우연히 고등학교 친구들과 대학교 친구들이 함께 동석한 자리에서 자신에 대해 말하는 상황에 매우 어색함을 느끼게 된다. 십 대 시절을 함께 했던 친구들과 20대가 되어 만난 친구들 속에서의 자신 중 과연 진정한 '나'는 누 군인가라는 질문으로 작가는 글을 시작한다.
그 질문에 '진정한 나'란 존재는 허상이며 상대에 따라 다양한 모습의 자신이 곧 '나'라고 하고, 그렇게 다양하게 쪼개진 '나'(분인) 모두 자신이라고 결론을 내린다.
[나라는 존재는 외따로 고독하게 존재하지 않는다. 언제나 상호작용 속에 놓여 있다. 그렇다기보다 타자와의 상호작용 속에서만 존재한다.
타자를 필요로 하지 않는 '진정한 나'라는 개념은 인간을 격리시키는 감옥이다. 만약 그것을 믿는다면, '진정한 나'로 살아가려면 타자와의 관계는 최대한 단절시키는 게 좋다. 그러나 '최후의 변신'의 주인공처럼 결국 그렇게 해보면, '진정한 나'는 환상임을 통감할 뿐이다.]
나와 타인과의 관계에서 상호적으로 반응하며 보이는 다양한 모습의 '나'이며 긍정적이든, 부정적이든 그 본인의 반 이상은 상대 또는 타자 때문이라고 말한다. 다시 말해 지금의 '나'란 사람도 내 앞에 있는 사람도 서로에게 상호작용을 하며 서로를 만들어가는데 기여하고 있으며 그것에 대한 어느 정도의 책임이 있다는 뜻이다.
[지워버리고 싶고 그만 살고 싶은 것은 여러 개의 분인 중에 분인 하나임을 의식해야 한다. 잘못해서 개인 자체를 지워버리고 싶다거나 삶을 포기하고 싶다고 생각한다면 돌이킬 수 없는 일이 벌어지고 만다. (138p)]
돌이켜 보면 만남을 하고 돌아오는 길에 그들과 있을 때 나의 모습이 스스로 생각해도 바보 같다는 생각을 자주 했고, 그것은 곧 자괴감으로 이어졌다. 이 후로 이 책을 만나면서 생각의 전환점을 맞이하게 되었다.
[누군가와 함께 있을 때의 본인이 좋다는 사고방식은 반드시 한 번은 타자를 경유한다. 나를 사랑하기 위해서는 타자의 존재가 불가결하다는 역설이야말로 분 인주 의의 자기 긍정에서 가장 중요한 점이다.(156p)
그렇게 좋아하는 부인이 하나씩 늘어감다면, 우리는 그만큼 스스로에게 긍정적으로 바뀔 수 있다. 설령 부정하고 싶은 자기가 있다손 치더라도 자살이라는 형태로 자기 전체를 소멸시키려는 마음을 먹지 않고 어떻게든 잘 마무리 지을 수 있다.(157p)]
감정의 폭이 크고, 표현이 컸던 스스로를 비난하고, 미워했던 시간들에 대한 반성을 하게 되었다. 며칠 전 가족들과 집에서 배달음식을 시켜 회식을 즐겼다. 가족들과 함께 마음껏 웃고 떠들면서 서로에게 빡빡하게 굴었던 서로의 관계에 기름칠을 하고 다시 서로에게 부드러워지는 느낌을 받았다. 이것이 관계의 회복이라고 할 수 있겠지? 서로 주고받는 농담과 웃음들.. 참으로 행복했다.
아이들이 어리고 모든 가족 구성원들이 엄마인 나만 바라보고, 그 기대에 부응할 수밖에 없었던 숨 막히는 책임감과 분주함에 질식될 때면 외부에 나가 숨통을 텄고 때로는 위로와 회복을 경험했던 시간들이 생각났다.
좋은 경험들도 많았지만 그렇지 않은 경험들도 많았고 늘 필요 이상의 에너지와 시간 그리고 돈을 필요로 했고 그에 비해 돌아오는 것은 쓸데없는 참견과 충고들로 자신을 더욱 미워하기도 했었던 시간이었다. 이후로 자주 더 큰 갈증을 느꼈다. 나와 완벽하지는 않지만 '어느 정도의 소통과 교감을 할 수 있는 사람이 왜 없는 걸까?' 늘 짜증이 나고 화가 났다. 또 한편으로는 나의 마음을 보여주니 불에 덴 것처럼 화들짝 놀라 줄행랑치는 사람들을 볼 때마다 나는 마치 이 지구에는 맞지 않는 존재인 것 같은 좌절감마저 들었다.
하지만 이 책을 읽고, 가족들과의 만족스러운 관계에서 나는 이제야 비로소 답을 찾은 느낌이다. 결국은 내가 쏟아부을만한 곳에 내 마음과 시간을 써야만 그에 응당한 답을 얻을 수 있다는 느낌 말이다. 내 마음이 문제가 아니라 내 마음을 받아 줄 만한 대상의 마음의 크기의 문제가 많은 비중을 차지했다는 것을 책을 통해 깨닫게 되었다.
더 이상 상처를 받지 않아도 되고, 스스로를 몰아붙이지 않아도 되는 것이다.
내년이면 50세인 이 나이에 비로소 내가 어떤 사람인지, 어디에 있어야 하는지, 나는 어떤 사람들과 있어야 가장 평안하고, 안정적일 수 있는지를 알아 가고 있다.
그렇다. 길게 살고 볼 일이다. 스무 살, 서른 살이 되면 어른이 되었다고 생각했었던 터무니없는 시간들을 지나 조금 알 것 같은 50도 넘어가고, 60을 바라보게 될 때 나는 또 나를, 타인을, 세상을, 인생을 무엇이라고 깨달아 가고 있을까?
부정적이든, 긍정적이든 적어도 그 결과와 책임은 나 혼자만의 몫이 아니라는 사실만은 꼭 기억해 두기로 했다. 더 이상 스스로를 비난하지 않고, 수많은 상황에 그만큼 다양한 모습의 나를 사랑하고 안아 주며 나를, 타인을, 세상을 사랑하며 살아가야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