침묵으로 지켜 낸 사랑

지구로부터의 편지 리뷰 2 (마크 트웨인 저)

by 바다에 지는 별

일곱 번째 편지에서는 각종 균을 창조해서 가난하고 불쌍한 사람들을 괴롭히고, 병들어 죽게 만드는 하나님을 비난하는 이야기이다.


노아의 맏아들 셈의 뱃속에는 십이지장충이 우글우글했습니다. 그것은 하나님이 인간을 괴롭히기 위해 고심참담한 노력의 결과였습니다. 그토록 철저하고도 폭넓은 연구라니, 실로 놀랍다 말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앞서 저는, 하나님이 인간의 각 부위별로 거기에 적합한 각각의 도구들을 고안해 냈다고 말씀드렸습니다. 어느 부위 하나 빼먹은 곳이 없습니다. 수많은 가난한 사람들은 맨발로 살아가야 합니다. 신발을 살 여유가 없으니까요. 바로 그 지점에서 하나님은 주요한 기회를 보았습니다. 말이 난 김에 하는 소리지만, 하나님은 언제나 가난한 사람들을 주의해서 살펴보십니다. 이 고약한 질병의 열에 아홉은 가난한 사람들을 염두에 두고 만들어진 것입니다. 부자들을 공격하는 질병은 그 나머지들뿐입니다. 제가 경솔하게 말하고 있다고 생각하진 마세요. 전혀 그렇지 않습니다. 하나님이 만든 수없이 많은 고문 도구들은 특히 가난한 사람들을 괴롭히기 위해 만들었다는 사실은 분명한 사실입니다. (78쪽)

글을 읽는 내내 단호하고 확신에 찬 어조에 기가 막혀 웃음이 났다. 물론 모든 내용들을 부정하지는 않지만 이렇게 악의에 가득 찬 내용들은 과히 악마스럽다는 생각마저 든다.


하찮은 인간의 좁은 소견으로 하나님의 뜻을 모두 이해하기란 어렵지만 과연 질병을 한 종족과 부류에 국한되어 해석하는 것이 과연 옳은 일일까를 생각해 본다. 다양한 지식을 가지고 있지 않아 하나하나 반박할 수는 없지만 병균 하나로도 그것을 발견하는 사람이 따로 있고, 질환에 대해 이겨낼 수 있는 방법을 고안하는 사람이 따로 있을 것이다. 이렇듯 하나의 병균으로서도 우리는 상생하는 관계이다. 균이나 질병 하나라도 우리는 서로를 돕는 네트워크가 생기는 것이다. 이것을 불순한 의도를 가지고 하나님에게 모두 책임전가하려 하는 행태가 진정 악마의 속성에 걸맞다는 생각이 들었다. 뒤이어 하나님이 세상에 선물로 준 성에 대한 이야기가 시작된다.


하나님의 총아 중의 하나인 솔로몬이란 작자는 칠백 명의 마누라와 삼백 명의 첩을 거느렸습니다. 비록 열다섯 명의 전문가가 옆에서 도움을 주었지만, 죽으려고 작정을 하지 않는 한 하루에 젊은 여자 둘 이상을 만족시킬 수는 없었겠지요.

하나님은 모든 피조물에게 기질에 따라서 각자 다른 성욕을 주었고, 그중 인간은 신체 구조상 명백히 제한과 제약이 없도록 만들었으면서 왜 간음하지 말고, 일부일처로 제약을 하는 것인지 강하게 반발하고 있다.

그러면서도 위의 글처럼 성경에는 성에 대해 너무도 편향되고 모순되는 상황에 대해 불만을 토로한다.


성경의 구약과 같은 과거 시대를 논할 만큼의 능력은 없고 지금 우리가 살고 있는 지구에는 다양한 인종들이 각자의 성문화를 가지고 살아가고 있다. 그것은 곧 성이 그저 욕구를 해소하고 분출하는 성관계에 국한되지 않고 성으로 인해 파생되는 많은 사회적인 관계까지의 연관성으로 이해해야 하지 않을까 생각해 본다.


하나님이 정해 놓았든, 도덕적으로 암묵적인 도리가 되었든 성은 성관계로만 끝나는 것이 아니라고 이해하고 있다. 간음이라는 단어 자체도 어찌 보면 인종이나 국가마다 다른 의미로 해석이 될 것이고 그에 파생되는 효력이 되었든, 문제가 되었든 그 결과는 많은 차이가 있다고 생각한다.

그런 의미에서 위의 주제는 매우 협소한 의미로 왜곡에 가까운 불만이 아닐까라는 생각을 해 보게 되었다.


대홍수 시대에 하나님이 어떻게 했는지 기억하실 겁니다. 수없이 많은 어린아이들이 그때 물에 빠져 죽었습니다. 그 아이들이 어떤 잘못도 저지르지 않았다는 것을 하나님도 알았습니다. 대신 아이들의 부모와 친지들이 잘못을 저질렀지요. 하지만 그걸로 충분합니다. (114쪽)


이에 이어 구약과 신약에서 이뤄지는 잔인하고 공정하지 않은 명령들에 대해 나열하고 있고, 사람들의 잔인한 전쟁보다 더 잔인한 하나님과 위선적인 성직자에 대해 비난하며 머리글 없이 시작했 듯, 맺음 글 없이 이야기는 끝이 난다. (심지어 오타도 수두룩 하다.)

이 책은 앞 글에서도 밝혔듯 사실을 가미한 픽션이다. 사실이란 것도 엄밀히 따지면 주관적이긴 하지만 말이다.


책을 읽는 내내 악마와 작가가 교차로 출현하는 듯했다. 아는 사람이 무섭다고 했는가? 아내가 살아 있을 때는 같이 종교활동을 하면서 얼마나 많은 성경을 읽고, 설교를 들었겠는가? 그가 듣고 아는 만큼 조목조목 따져가며 비판하는 그의 열정이 화산의 폭발력을 상상하게 만든다. 그 열정으로 이 책이 탄생했으니 역시 읽는 내내 그의 분노에 가까운 폭발력이 느껴졌다.


이 책은 그의 아내가 사망하고 난 후 1904년경에 나왔다고 한다. 그의 나이 73세 즈음이다. 어떻게 그렇게 강한 반발심을 가지고 오랫동안 인내할 수 있었을까? 그것은 아마도 그의 아내가 사망한 후 이 책이 쓰인 사실을 근거해 서 본다면 그가 아내의 종교와 아내를 존중하는 마음 때문이지 않았을까?


그리고 아내가 사망한 후 1년 뒤에 이 책을 펴냈고, 이후 1년 후에 마크 트웨인은 사망했다. 본인의 자서전에서도 종교와 하나님에 대한 부정적인 평가와 비난을 해대던 그가 하나님과 맞닥뜨리게 되었던 것이다. 그는 하나님에게 충분한 해명을 듣고 그 해명에 공감을 하고 있을지 궁금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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