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구로부터의 편지(마크 트웨인 저) 리뷰 1
책을 읽기 전에 이 책이 쓰이게 된 배경이 매우 흥미롭다. 작가인 마크 트웨인은 우리에게 잘 알려진 '톰 소여의 모험'과 '왕자와 거지' 그리고 '허클베리 핀의 모험'으로 유명해졌다. 그의 글은 항상 아내가 검수했었는데 이 책은 아내가 사망하면서 발간되었다는 것이다.
그전에는 독실한 기독교인 아내의 영향으로 다양한 주제의 글을 쓰지 못했다가 부인이 사망한 이후에 진정 작가가 쓰고 싶은 글을 쓰기 시작했고 그 책 중 하나가 이 책이다.
이 책의 내용은 천상에 있던 사탄이 지구로 내려오면서 신이 창조한 인간세계와 이 세계를 창조한 신에 대한 사탄의 주관적이며 다소 회의적인 시각의 글이 주를 이룬다.
글의 소제목도 따로 있지 않고 첫 번째부터 열한 번째 편지글로 구성되어 있다.
편지글들은 입이 방정인 사탄이 천사들에게 하나님의 험담을 했다가 잠시 우주로 귀양 보내졌고 이 후 지구로 떠나게 되면서 미카엘과 가브리엘 두 천사에게 사적인 내용을 편지글로 쓰는 형식이다.
첫 번째, 두 번째 편지에서는 인간이 하나님의 가장 사랑받는 존재라고 자부하면서도 서로를 얼마나 미워하는지를 말한다. 거기에 더해 인간들이 유색인종과 유대인을 증오하고 서로를 경쟁자로 여기는 행태가 사탄은 이해가 되지 않는다고 한다.
이에 더해 지구에서는 서로를 그렇게 증오하면서도 천국에 가서는 모든 나라가 하나가 되고 형제가 되어야 한다는 그들의 생각이 앞뒤가 맞지 않는다고 비꼰다. 틀린 말은 없다. 그래서 인간의 입장이 되어 이러한 비아냥이 묘하게 설득력이 있고 심지어 조금의 시원한 구석마저 있다.
세 번째 편지에서는 성경에 대해서 말을 하는데 성경은 주로 예전에 있었던 성경들, 여기저기 흩어져 있던 성경들을 모아서 만든 것이지, 순수한 '하나님의 말씀'이 아님을 강조한다.
그리고 이어 천지창조에 대한 하나님의 이해되지 않는 행태와 사람들이 진실이라고 믿고 있는 사실에 대해 반박하며 아담과 이브가 낙원에서 쫓겨나 그들만의 세상을 만들며 번창하는 가운데 타락한 인간들을 쓸어버리려 결심하는 하나님을 매우 속이 좁고, 객관성이 떨어지는 존재로 묘사한다.
인구는 금세 수백만을 헤아릴 만치 부쩍부쩍 늘었습니다. 그런데 하나님은 그것이 불만이었습니다. 굽어보니 영 버르장머리가 없다 싶었던 모양입니다. 못 돼먹기가 자기 자신에 비견할 만했습니다. 사실 인간은 신과 상당히 유사한 모방품이었습니다. (51쪽)
과거 나는 독실한 기독교인이었다가 무신론자가 되었으며 지금은 범신론자이다. 그런 입장에서 위의 표현은 틀리다고 생각하지는 않는다. 우리가 가지고 있는 -다소 선악의 판단이 가미된- 모든 감정과 모습들은 하나님이 가지고 계신 것과 동일하다고 생각하기에 작가의 저 표현에 반박할 수 없어서 웃음이 났다.
그저 고귀하고, 거룩한 하나님만을 상상했던 과거와는 달리 협소하고, 편협한 인간의 그 어떤 판단도 가미하지 않는다면 저렇게 표현될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던 것이다.
단지 사탄의 표현이 다소 경박하고, 과격하다는 것이 흠이자 매력이라고 할 수 있겠다.
이야기는 아담과 이브의 이야기에서 노아의 세대로 넘어가 방주를 준비하고, 비가 내리면서 방주 안에서의 상황들이 그려지는데 이 부분이 무척이나 세세하고 현실적으로 그려져 흥미롭고 재미난다.
여섯 번째 편지에서는 방주 이야기가 이어지는데 마지막까지 방주에 오르지 못한 파리에 대한 이야기가 등장한다.
어떤 일이든 우연이란 없고 모든 사건에는 하나님의 계획과 목적이 있다는 말씀!! 무수히 많은 병균들 중에 장티푸스가 빠졌는데 태초부터 예정된 운명을 따라, 그 집파리는 뒤에 남아 장티푸스로 죽은 시체를 찾아내서는 그 병균들을 다리에 붙여 영구적인 임무를 위해 신세계로 옮기는 임무를 수행하게 했다는 이야기는 정말 기발한 발상이 아닐 수가 없다.
이러한 세세한 계획부터 사람들이 상상조차 할 수 없는 거대한 계획을 가지고 하나님의 성격이 무엇인지 질문을 던진다.
"너희의 주이시며 신이신 나는, 질투하는 신이니라."(66쪽)
여러분 모두 동의하시겠지만, 이 말은 '나는 편협한 신이니라. 나는 속 좁은 신이라 사소한 일에도 잘 삐지느니라.'라는 뜻 아니겠습니까?
중략
말씀드렸죠? 질투가 핵심이라니까요. 하나님의 역사를 통틀어 질투라는 말은 현재하고 또 영원할 것입니다. 질투야말로 하나님의 성격의 피와 뼈 같은, 근본을 이루는 것입니다. 만약 그의 정제되지 않은 질투심을 조금이라도 건드리기만 하면, 아무리 사소한 것일지라도 하나님의 평정심과 판단력을 깨뜨리고 흐려놓을 수 있습니다. (67쪽)
사탄의 말과 성경에서의 말처럼 우리는 하나님의 피조물이고 모방품이라고 생각해 볼 때 위의 이야기는 매우 설득력이 있다. 우리의 그 어떤 모습도 하나님의 모습과 닮은 것이라고 한다면 유치한 '질투'라는 감정을 하나님이 없으리라는 말은 설득력이 없지 않은가?
우리는 그에게서 난 피조물이므로.
나는 닐 도날드 월시가 쓴 '신과 나눈 이야기'를 이 책을 읽기 전에 두 번이나 읽은 경험이 있다. 이 책은 비록 사탄이 하나님을 우스꽝스럽게 묘사하고, 비꼬긴 하지만 신과 나눈 이야기 안에는 실제 하나님이 스스로를 유머가 넘치는 성격도 당신의 본성 중 하나임을 이야기하는 부분이 나온다.
지금까지는 하나님이 인간을 창조하고 얼마 지나지 않은 성경 중에 구약서에 해당하는 부분이므로 아직은 하나님과 인간은 매우 밀접하게 연관되어 있다. 그러나 성경에서 만났던 하나님과 지금 이 책과 그전에 읽었던 책을 비교해 봤을 때 신은 오히려 매우 인간적이며 우리가 그의 일부임을 자연스럽게 받아들이게 되는 것 같아 즐겁다.
책이 다소 익살스럽고 가벼운 면이 있지만 이제까지 너무 당연하게 생각해 왔던 지구상의 부조리에 대해 이색적인 시각으로 바라보는 글이 신선하고 재미있었다.
책의 반 이상을 읽었지만 이후에도 여전히 깨방정스러운 글들이 기다려진다. 종교라는 장르로 신을 바라보는 것이 아니라, 사람과 부대끼는 상황에서 관찰되는 신만의 다양한 인성스러운 신성이 무척이나 친근하다.
신은 너무 높은 곳에, 인간사와는 거리가 먼 존재가 아니라 세상 속에서 인간의 희로애락 속에서 함께 하며 우리의 신 또한 희로애락으로 세상 속에 있다는 사실에 닿게 되니 그저 희화적인 요소로서 가볍기만한 글은 아니라는 생각이 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