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 작가님의 글을 읽는 내내 심한 감정이입으로 콧등이 시큰거렸다.
육아에 대한 글이었는데
아이아빠의 외국 생활로 거의 혼자 육아를 전담했던
그 때의 일들이 겹쳐졌기 때문이다.
주변에 도와줄 식구들 하나없이 혼자서 아이를 키운다는 건 어마어마한 불안감과 두려움의 양대산맥에 홀로 버려진 기분이었다.
첫 아이를 아무런 경험없이 키운다는 건
내 고래힘줄처럼 질기고 강한 정신력조차도 힘겨운 육아에서는 쪽도 못쓰고 픽픽~~!! 쓰러졌다.
그 중 하나는
하루종일 아이 언어로 얘기하다보면
진정 말다운 말을 내뱉을 수 있는 사람이 절실하게 그리워졌던 일이다.
아이와 나간 놀이터에서 같은 동지들을 만나면
초면인데도 별의 별 얘기를 다 쏟아내는 낯선 나를 발견하고는 깜짝 놀란다.
그런식으로라도 나는 어른의 언어로 소통하고픈 욕망을 한꺼번에 분출하기도 하였다.
그리고
그 좁아터진 집에서 어디를 가도 나의 사적인 공간이나 시간은 찾아볼 수 없어
최대한 화장실의 공간을 이용하려 해도
아이는 곧 울음을 터트렸고
나는 볼 일도 문을 열고서 볼 수 밖에 없었다.
그렇게 지쳐갈 즈음이면
아이가 낮잠 자는 시간을 틈타
건넌방에 문을 닫고 들어가 이어폰의 음량을 최대한으로 올려 세상에서 나를 격리하였다.
식사도 그렇다.
밥도 아이가 이유식을 하면서 밥과 간식, 우유를 번갈아 가면서 주다보면 나는 하루 한끼 챙겨먹기가 힘들었고 자주 위장병에 시달리기 일쑤였다.
아이가 아플라치면 아이는 내 배와 등에서 떨어지는 시간이 세상 끝나는 것인 것 마냥 울어대는 통에 나는 머리감는 건 고사하고
양치한번 하기조차 포기해야 했다.
잠도, 밥도 ,휴식도 찾아먹지 못한 3일정도 넘어가는 날이 되면
내 정신력과 자신감은 바닥을 치고
강력한 모성애도 바닥난다.
그리고 시작되는 아이와의 전쟁..
아이도 울고 나도 포효한다..
그렇게 나는 정신줄을 놓고 아이는 문밖에서 악다구니를 쓰고 나는 방안에서 운다.
그 시간조차도 아이가 숨 넘어가게 우는 소리에 10분을 넘기지 못한다.
그리고 퉁퉁 부은 눈으로 잠근 문을 열고 나와
문에 매달려서 눈물, 콧물 범벅이 된 아이를 안는다.
다시 엄마로 무장되는 시간이 된것이다.
이런 시간을 무수히 반복하면서
아이는 자랐고 나도 자랐다.
그렇게 한 사람으로서 모든 권리와 욕구를 철저히 희생하고 굽이굽이 내 한계를 넘고 또 넘으면서 나는 여자에서 엄마가 되었다.
지금의 핏덩이 엄마에서 십대의 엄마가 되어보니 세상과 사람이 달리 보인다.
전철이나 버스,길거리에서 꼬물거리는 아가는 내 첫 아이의 모습과 겹쳐져
더 애틋하게 사랑스러워 보였고
그 아가를 안고 있는 새내기 엄마는
나와같은 수많은 불면의 밤으로 나가떨어질 날들이 보여서 안쓰럽고 안쓰러웠다.
누군가의 엄마로 살아간다는 건
끊임없이 자신의 한계를 넘는 것이다.
그렇게 한계를 넘고 넘다보면 마음은 부드러워지고
세상살이의 어려움에는 내공이 생겨
어떠한 어려움으로 막다른 골목에 몰려도
적어도 겁부터 집어 먹지 않게 되었고
그러다 보니 상황도 정확하게 볼 수 있는 여유도 생겼다.
'여자는 약하지만 엄마는 강하다.'는 말이 괜히 나오는 말이 아니었던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