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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박수필 May 01. 2022

박씨이동기 (상편)

이동은 3박자와 천운이 따라주어야 한댔다. 나의 이동도 그럴까.

지금은 한참 지난일이 되었지만, 2021년의 말엽에 있었던 사건을 두 편으로 구성한다. 상편은 이동을 결정하기로 했던 조건과 생각을 담는다. 하편은 이동을 한 뒤에 얻었던 교훈을 종합한다. 


일 같이 한번 안 할라요?

11월 어느 날이다. 부스터샷을 맞는 김에 백신휴가도 썼고, 들으면 괜찮을 교육이 있어서 고고하게 교육을 듣다가 아웃룩을 열어보겠단 괘씸한 생각이 들었다. 일 같이 하자는 제안이 와 있었다. 이동 포스트는 옆 조직, 같이 일하는 사람은 제안 준 사람, 기능부서들이 제대로 제품을 만들어 내는지 검증하는 역할.

하던 일이랑은 달랐고 학교다닐 때 학을 뗐던 일이라 다시 해야되나? 생각은 들었지만, 왜인지 올해는 일을 바꿔보고 싶다는 생각이 강했다. 


아래 글을 쓰던 시점이 이동 제안을 받고 혼란스러운 가운데 남겼던 글이다.   

     대체 어디서 어디로 간다는 거야?     지금 있는 조직 (a) 제안 준 조직 (b) 제안 준 조직이 신설조직이지만, 덩어리는 더 크다. 서비스 대상 고객도 확대됨.


전운이 감돌고

11월~12월은 12월에 임원인사를 하는 회사에는 잔인한 계절이다. 다들 마음이 떠서 일이 제대로 되지 않으며, 해야 될 일은 돌아간다. 농한기로 지내려면 그럴 수 있는 시간이지만, 내년 초 투입되는 프로젝트에 속해있다면 연말은 얄짤 없다. 하마평에 오르던 보스가 온다는 사실이 기정사실화, 기존 보스는 집에 가신다.


얼티메이텀

보스의 교체라는 변수가 새로 생겼다. 신임 보스가 오면 기존 사람을 내보내려 하지 않을 것이라는 인식이 지배적이었고. 입사한 지 6년 내 팀 이동만 있었지 부문단위의 이동은 없었던 나로서는 '잡히겠구나'라는 생각이 들었다. 


내가 이 조직에서 해볼 수 있는 일은 대체로 해 봤다는 생각이 들었다. 무엇보다 내년에도 "이런저런 레거시가 있어서 안돼.." 라는 제약으로 시스템과 씨름을 해야되는 상황이 싫었다. 지독하게 익숙한 맛, 떠나면 그리울지 아닐지 모를 맛이라면 이제는 새로운 일을 해 볼 때도 되었다.


협상할때 꽤 여러번 나오는, 최후통첩에 해당하는 것을 정리했다. 일단 조직은 옮긴다. 일을 바꾸는데 데이터 스러운 일을 한다. 회사에서 대단한 사람이 되는것을 여전히 포기하진 않지만, 조사,분석에 강점을 가진 사람이 된다. 그편이 내가 더 익숙하고 맞다고 느꼈다.


이쪽으로 커리어를 틀면, 정체성은 희미해지겠지만 희미해진 덕에 이동성은 올라간다. '현 직장이 커리어의 마지막이 아니'라는 조건을 만족시키면서 안전하게 일을 바꿔볼 수 있는 기회로 삼는다. 이동할 수 있을지 없을진 모르지만, 일단은 해 왔던 일을 anchor삼아서 영역을 확장한다.   

     그동안 이동은 안하고 뭐했대?
하려고 했지, 했는데 1) 갈 기회가 없었거나 2) 조직장이 콧방귀도 안 뀌었거나 3)별로 이동하고 싶지 않은 해도 있었다. 조직장은 한사코 '10년은 채워야 한다'며 커리어 면담을 마쳤다. 별로 이동하고 싶지 않은 해는 재무상태에 문제가 있거나, 내년엔 달라지겠다는 희망을 걸어봤던 해였다.


예쁜 뒷통수

'갈땐 가더라도 뒷통수는 예뻐야지'라는 사실은 알고있었다. 허나 이동이 그러하듯 물밑에서 진행되며 팀장이 가뜩이나 보스의 교체에 예민해져 있던 상태였다. 내가 굳이 그에게 '이동할수도 있다'며 불안을 심어주고 싶지는 않았다. 오늘 알게 된 이후로 뭔가 섭섭해 하는 눈치였지만, 여기선 좀 이기적으로 굴었다. deputy 보스도 마찬가지였겠지만, 피차 당신들도 물어본 적은 없었네요..라는 섭섭함으로 갈음한다. 아름답게 이별할 수도 있었겠지만, 애매한 이동 미수범이 되고싶진 않았다.


Things you will never lose

b조직의 다른 모듈에서 인력수요가 있어 그쪽과 경합중이라고 했다. 리더간 협의사항이라고 한다. 바뀌는 것은 리더와 일인데, 새로운 인력수요를 요청한 쪽과 일했던 경험이 썩 좋지 못했다. 오죽하면 '그 자와 일하는 건 괜찮냐?'고 주변사람들이 물었을까. 학을 뗀 것도 맞는데, 아는 문제고 풀어본 문제다. 또 틀리면 학습이 안 된 거다. 좀 다르게 풀어보면 될 거 같단 생각도 들었다.


어쨌든 조직을 옮긴다는 기초조건은 거의 완성되었다. 성사될 만한 조건의 거래다.


Worst Case Scenario

'이동 미수범'이 해봐야 겪을 일이란게, 신임 보스 치하에서의 1년이다. 카드가 두 장 정도 있다. "여차하면 퇴사하면 되지 뭐(aka 뭐라도 하겠죠 인간인데)", "의외로 잘 맞을수도?". 오늘 업무보고 했는데, 내가 굉장히 스트레스 받고 있다는 신체반응 (속쓰림 등)이 나타났지만 말은 맞다. 그걸 온몸으로 맞으면 위궤양 각인데, 어차피 회사에서 겪을 수 있는 일 중에 최악은 못버티고 내가 회사 때려치는 거다. 지금 연차에 관두면 뭐라도 하겠지.


그런데 무엇이 초조하게 만드는 걸까

인력 엑소더스가 일어났다. b조직은 올해 대폭 임원과 조직을 개편하면서, 조직내의 이동성 (a-b 및 기타)을 높이는 방향으로 설계했다. 그런데 생각보다 유출이 많다. 유입은 없다. 신임 원장 (a조직장) 입장에선 달가울 리 없다. 유출 6명, 채울 수 있는 방법은? 일단은 보류하자고 볼 수도 있겠단 생각이 든다.

물론, 유출로 거론된 인력들은 '이미 그렇게 되어서'  대부분 새로운 Job을 맡고있진 않다. 여기서 새로이 이동하겠다고 손을 드는 사람이 있다면? 신임 원장이 센터장 시절 트라우마를 겪은 이들이 조직을 이동하겠다며 손을 든다면? 얼추 된 것 같던 전출이야기는 이렇게 다시 미궁속으로 접어드는 국면이다. 이동이 이렇게 힘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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