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어있어야 들어갈 자리가 있다.
기획하는 행사가 하나 있다. 지방선거 이후부터 준비하기 시작했고 다음주 론칭을 앞두고 있으니 3주만에 완성해야 하는 프로젝트다. 처음부터 끝까지 기획을 해야 해서, 빽빽하게 콘텐츠를 채우고 어떻게 흘러가야할지를 계획하느라 머리가 복잡했다. 하는 방법을 모르는 것도 아니었으니, 그저 시간에 쫒겼다. 지금도 그렇다. 초조하지만, 주말은 최대한 나의 것으로 쓰기 위해서 글을 남긴다.
기획을 할 때, 가득 채워야 한다는 생각이 강했다. 구조가 짜여 있어야 기획이 잘 된다는 생각이었는데, 퇴근하면서 머리를 식히기 위해 간 서점에서 의외의 아이디어를 만났다. 생각소스라는 책인데, 책이라고 한다면 응당 모든 내용이 쓰여있어야 한다고 생각했지만 이 책의 기획은 그렇지 않았다. 아래와 같이 여백이 많다. 독자가 참여할 여지를 준다.
가득 채워서 들어올 여지가 없었던 것은 아닌지 나의 기획을 돌아보게 된다. 사람들이 만들어주어야 완성되는 행사라면 모든 것을 기획하는 의미가 없다. 지금의 상황은 도와줄 사람이 없었다는 생각이 강했고,나 혼자 만들어가는 기획이었다. 불안한 마음에 가득 채우려고 했다. 그런데 굳이 그럴 필요가 없다는 걸 깨닫고 나니 한결 마음이 편하다.
내가 기획한 것은 뼈대가 되고, 행사가 시작되면 사람들이 만들어 간다. 나만 하는 기획은 없다. 언젠가 봤던 우화가 생각난다.
정해진 통에 큰 것을 먼저 채우고, 그 다음에 작은 것을 채워야 들어간다는 것. 그리고 마지막 커피 한잔 들어갈 여유는 항상 있다는 것.
불안할수록 기획에 잔가지와 장치가 들어간다. 그런 잔 술수는 누구나 안다. 정확하게 전달해야 하는 건 기획자의 스토리이지 잔가지가 아니다. 비어 있어야 다른 것이 들어갈 틈이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