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기 돈 아니라고
박수필은 귀찮음이 강해 일정을 잘 세우지는 않지만, 한번 세웠다 하면 군더더기 없이 일정이 떨어지는 것을 선호한다. 시간은 소중하고, 정해진 시간에 정해진 액티비티를 하면 된다는 생각에서다. 자연스럽게 생긴 여유보다는 계획된 여유가 익숙하다.
그런데 유독 회사에는 쓸데없는 일이 자꾸 생긴다. 그래서 일 할 시간과 실제로 무엇을 하지는 않더라도 "사유할 시간"을 빼앗아 간다. 회사의 스케줄은 갈수록 가난해지고 누군가의 야근을 종용하며 유난히 "뒤로 늘어지는 것"에 관대한 것 같다.
쓸데 없는 일의 대표적인 사례로 각종 "정례화된" 조직 활성화 활동을 꼽을 수 있다. 기업문화 조직 언저리에서 일을 하므로, 그 가치를 부인하는 바는 아니지만, 정례화된 조직 활성화 활동은 간혹 비극 그 자체다. 업데이트할 일이 없어도 "때가 되어서" 업데이트를 해야 하고, 저번엔 이걸 했으니 레퍼토리를 바꿔야 하고 등등 각종 귀찮은 행실이 뒤따르며 간혹 이것을 위해 예산도 태우고 회의도 한다.
대체 이게 매달 할 이유는 있는 건가 싶을 정도의 Monthly Update는 형식이 의미를 지배해 버린 케이스의 일들인데, 여기서 의미론을 들이밀면 할 말이 없어진다. "왜 해요?" "그럼 안 할거야?" "아 해야죠"
회사원의 시간은 정해져 있다. 주요 덕목은 정한 시간 안에 일을 처리하는 일이다. 그래야 직원은 회사가 아닌 다음을 도모할 수 있는 시간을 쥘 수 있다. 하물며 본인을, 가정을 챙길 수 있다. 항상 그들에게는 이런 시간이 부족한데, 쓸데 없는 일이 자꾸 생겨나면 곤란하다. 일하기 바쁜데, 쓸데없는 것으로 보이는 일이 생기고, 늘어난다.
일종의 확대된 대리인 비용이라고 생각한다. 조직이 커질수록 사람간의 결속은 느슨해 지고, 관리인은 뭐라도 해야 한다는 유혹을 받는다. "우리 사이 이래도 괜찮은 거죠?" 묻고 싶은데 시간은 없고, 그러한 질문에 답하기 위한 구조체를 만든다. 그것이 정례화된 월간 업데이트가 되겠다. 소유주 또는 경영자는 안 하는 것보다 나으니 대리인에게 월례회의를 주문한다.
정확히는 그걸 주문한 건 아니고, "달마다 무슨 일이 일어나고 있는지를 모두가 알았으면 좋겠다." 정도의 니즈였을 것이다. 그러나 우리의 충실한 대리인은 본인의 일을 잘 마쳐야 본인에게 보장된 미래가 있을 것이므로 쓸데 없는 것을 '잘' 하려고까지 한다. 한번의 정례화된 월간 회의를 위한 코스트는 따라서 아래의 내용을 포함한다.
담당자가 준비에 소요하는 시간 + 담당자의 요청으로 서포트를 하는 사람들의 시간 + 사람들을 모아서 실제로 회의를 진행하는 시간 + 회의에서 나온 이슈를 해결하는 시간
"회의에서 나온 이슈"가 백미인데, 사실상 말 하기 위해서 말 하는 것일 확률이 매우 높고, 진짜 이슈는 아니고 "말 안 하면 멍청해 보일까봐" 제기하는 이슈다.
따져보면 비싼 시간급여를 주고 하는 행동이다. 가끔 '실제로 회의한 시간'만 비용으로 계산하는데, 준비하는 시간과 그동안 일을 못했을 기회비용도 생각해야 한다. 소유주가, 혹은 경영자가 이것을 원한 걸까? 알 길이 없다만 박수필이 짖어도 월례회의는 계속 될 것이다. 이사람들이 시간과 돈 귀한 줄 모르고 말야. 시간 빈곤에서 벗어날 길이 없다. 아니다, 이것도 급여에 포함인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