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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박수필 Jul 16. 2022

스스로를 지키기

불휘기픈남간 바라메 아니묄쎄


최근에 만난 후배의 사연에서 용비어천가 생각이 났다. 했던 멘트는 다음과 같은데, 낮간지럽긴 하다.

"뿌리깊은 나무는 바람에 흔들리지 아니하니 꽃 좋고 열매 많으니. 산에 있는 나무는 기후의 영향을 받죠, 그런데 산은 영향을 안 받아요. 산이 되십시요."


조직문화는 기후와도 같다. Atmosphere, Climate라는 단어를 직접적으로 쓰지는 않지만, 사람이 모이는 곳에는 특유의 분위기가 있다. 그 분위기는 사람을 압도하기도 하고, 적응하게도 만든다. 높은 산에 올라가면 공기가 부족해져서 숨을 쉬기가 힘들지만, 며칠 지내다 보면 적응하는 것이 고산병이다. 사람은 기후에 적응한다. 조직문화도 그렇다.


후배는 내가 있었던 조직에 합류했다. 조직장이 바뀌면서 이전의 문화와는 판이해졌고, 그 과정에서 오는 스트레스도 있는 모양이었다. 가장 가까운 팀 리더와의 갈등도 있었지만 그것이 전부는 아니라고 생각했다. 여태 내가 겪었던 조직의 분위기와 문화는 슬프게도 윗물이 맑아야 아랫물도 맑을 수 있었고, 리더십 지휘계통의 어느 한쪽만 문제가 생기더라도 문제는 전가되어 실무자에 오게 마련이었다.


후배는 본인의 시간에 대한 주도권을 갖길 원했다. 그리고 그것이 바뀐 조직문화에서 유지하기 힘들어진 것에 스트레스를 느꼈다. 최소한의 공간을 갖고, 예측 가능한 일상을 보내고 싶은 마음도 있지만 일을 잘 해나가고, '조직 생활'을 잘 하는 사람으로 남기 원했기에 그 사이에서 갈등하고 있었다. 


(조직)문화에 대응하는 개인의 힘은 생각보다 미약하다. 내가 아니라고 움직여 보아야, 셋 이상이 그렇게 움직이면 그것이 문화가 된다. 부당한 문화는 내가 싫다고 해서 바뀌지 않고, 계속 문화에 젖어들어 내가 가진 정체성을 흐리고 나를 고통스럽게 한다. 


그러다 어느순간 본인을 놓고 적응하게 될 것인데, 회사원이 정체성의 전부가 아닌 사람에게야 괜찮지만, 만일 회사원이 본인의 정체성의 대부분 혹은 전부라면 조직문화의 병폐는 사람을 상하게 만든다. (정신적으로, 그리고 신체의 반응으로 나타난다.) 하여, 스스로를 지키는 것이 중요한 일이 되겠다.


뿌리깊은 나무가 되는 것은 스스로가 단단해 지는 것이고, 산이 되는 일은 직장인이 아닌 여러 정체성을 갖는 일이 되겠다. 대부분의 회사일은 지나가게 마련이다. 우리가 겪고 마주하는 일도 그렇다. 지나가는 일에 정체성을 흔들릴 만큼 고통을 받는 일이 적기를 바랄 따름이다. 나에게도 그렇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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