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수리 Jul 12. 2020

하늘을 바라보는 시간

기억하고 싶은 하늘색

오늘 하늘 좀 봐!

  퇴근하는 길, 비가 온다던 하늘은 맑았다. 게다가 분홍빛으로 물드는 구름까지.


 요새 나의 즐거움은 퇴근 후 역에서 나와 바라보는 일몰. 친정에 살 때도 서쪽으로 지는 해를 바라보며 퇴근하는 마음이 즐거웠다. 이전 회사는 출퇴근 시간이 빨라 정시 퇴근하면 퇴근하고 집에 도착할 때까지도 해가 떨어질 생각을 하지 않았다. 지금은 출퇴근이 늦은 편이라 정시 퇴근을 해도 여름이 아니면 캄캄해진 밤에 퇴근하는 편이고.


 하늘 보는 걸 좋아하게 된 건 이전 회사에서부터였다. 통창으로 되어있어 퇴근하는 길에 바라보는 창 밖이 매일 다른 하늘을 볼 수 있었던 것이 이유였다.

높은 빌딩에서도 통창이라 자주 바라봤던 하늘

 매일 다른 색의 하늘을 바라보며 그때는 참 많이 아팠고 참 많이 성장했다. 그리고 어쩌면 성장이라는 단어를 지독히 미워하게 된 것 같다. 그때를 생각하면 하늘 사진을 찍으면 고단했던 하루를 기억하는 것 같았다. 아이러니하게도 그 시절 쓰던 휴대폰을 백업했는데 백업 비밀번호를 잊어버려 그 시절 사진을 모두 날려먹었다. 그래서인가, 꼭 기억하고 싶은 사진만 남았다.

하늘 좀 봐! 라는 말에 돌아보니 불타는 듯한 빠알간 석양

 그때부터 하늘을 자주 바라봤다. 하늘색이 어떤지 오늘은 어떤 하루로 기억될지 등을 하늘과 함께 기록하는 날들도 늘어났다. 어느 날은 퇴근하는 길 남자 친구와 다퉜는데 “자기야 근데 지금 하늘이 너무 예뻐.”라는 말 한마디에 모든 화가 무너져내리기도 했다. 여행에서 바라본 하늘이 심장이 아릴 만큼 아름답고 맑고 흐리고 투명한 느낌이었다면 일상에서 바라본 하늘은 어느 날은 가로등보다도 밝은 보름달이 뜬 하늘 같고, 또 어떤 날은 여행지에서 본 그 어떤 하늘보다 맑고 투명하다.


 며칠 전 바라본 일몰은 이 순간을 기억하고 싶을 만큼 반짝였다. 신랑에게 알려주고 싶어서 찍어 보냈더니 우리 집에서 더 잘 보인단다. 전력 질주해서 신랑에게 뛰어들었다. 아마 언젠간 잊어버릴 수도 있겠지만 우리 둘의 첫 번째 보금자리에서 바라본 보름달이 떴던 하늘, 개기일식 보려다가 실명할 뻔했던 날, 퇴근하며 보던 분홍빛 하늘, 모두 나에겐 행복한 하늘로 기억될 것이다.


작가의 이전글 일주일 동안 미열로 자가 격리한 시간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