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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수리 Jan 18. 2019

새로운 자리에서 써내려가는 일기

달라보이지만 결국 같은 자리

꽤 오랫동안 글을 쓰지 않았다. 무슨 이야기부터 시작해야할지 모르겠어서 시작할 엄두가 나지 않았다. 이 이야기를 적어볼까, 하고 생각하다가도 쉽사리 실행에 옮겨지지 않았다. 나에게 글이란 어렵지 않은 것이다가도 어려운 것이었다.


이직을 하고 첫 번째 월급을 받았다. 묘했다. 일하다보면 월급날이었던 3년 동안의 시간이 무색할만큼 묘한 기분이 들었다. 내가 맞지 않는 옷을 입었나? 라는 생각이 들던 어느 날이었다. 이직했다는 이야길 아는 나의 지인들은 “회사 어때? 적응은 좀 했어?”라는 이야기로 대화를 시작하려고 했다. 그 때마다 내가 할 수 있는 말은 “신규 사업 준비 중이라 내가 할 수 있는 일이 없어. 그냥 없는 일을 만들어서 하고 있는 것 같아.”라는 말이었다. 솔직히 매번 그 말을 하기 귀찮았지만 그렇다고 응, 그럭저럭- 이라는 말은 거짓말이기도 하고 그렇게 대답하고 싶지도 않았다. 쓸데없는 데서 정직해지고 그래.


신규 사업인데다 나 역시 새로운 직무를 맡았고 팀이 완전체로 꾸려지지 않아 소속감도 없고 보람도 없는 한 달이었다. 내가 여기서 뭐 하고 있는거지? 라는 생각도 들었다. 그래도 막상 일 시작하면 이 시간이 그리워질 거라며 월급 루팡 빵야빵야 하기도 했다. 왜 다들 그러고 싶을 때 있잖아요? 나만 그래?


불행인지 다행인지 일이 들어오고 있다. 서비스 오픈일이 얼마 남지 않았다는 이야기다. 하루 연차를 내서 그 동안 가지 못했던 병원 투어를 하며 비염이 아니라 감기고, 잘못된 식습관으로 위염이 도졌고, 피부가 뒤집어져 염증 주사를 맞았다. 역시 나는 백수일 때가 최고 행복했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리고 외로웠다. 회사에서 하하호호 웃는 다른 팀 사람들을 보며 전회사 사람들이 너무 보고 싶었다. 하지만 그런 생각도 잠깐.


벌써 입사하고 이 자리에 앉은지 3개월을 꽉 채웠다. 다음 주부터는 새로운 팀장님을 맞이하게 되었고, 본격적인 업무가 시작될 예정이다. 3개월동안 전적으로 준비하진 않았지만 오히려 마음의 준비를 단단히 하게 되었다. 퇴근 후에는 회사 일에 대해 생각하지 않는 방법도 나름대로 터득했고, 그 동안 좁고 깊게 생각하던 것에서 벗어나 넓게 숲을 보는 법을 배워가는 중이다. 나~ 돌아갈래! 라고 외치던 몇 주 전이랑은 다른 느낌으로 그 몇 주 자리에 앉았다고 이제는 여기가 더 익숙한 내 자리가 되었다. 결국 다르지만 같은 자리에 앉아 또 다른 커리어를 쌓아가는 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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