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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수리 Oct 13. 2019

스스로가 싫어지는 날

잃어버리는 건 익숙하지 않다.

어렸을 때부터 내 꺼라는 소유욕이 남달랐던 나는 잃어버리는 것에 익숙하지 않다. 잃어버린 걸 깨닳았을 때는 나 스스로에게 화가 나 견딜 수 없을 정도. 그런 내가 이번에 뜯지도 않은 새 화장품 2개를 택배 박스와 함께 버렸다.


처음에 하나를 잃어버렸다는 사실을 깨닳았을 땐 세트로 샀는데 초록색 박스는 있는데 파란색 박스를 딴데다 뒀을리가 없지.. 하고 어딘가 쓸려들어가 내가 못찾는 거라 생각했다. 세트로 3만원, 15,000원을 어디에 둔 거지, 하고 내 방을 뒤집어 엎고는 이내 쓸려서 버린 것 같다는 생각에 미쳤을 때는 내  스스로가 한심해서 견딜 수가 없었다.


두 번째는 동생이 면세점에서 사다준 베이스 필수템이었다. 심지어 제품도 2개나 들어있는 박스인데 같이 사온 다른 제품이 서랍에 잘 들어있는 걸 보고 이것도 어딘가 쓸려들어갔나, 하고 생각하다 전에 잃어버린 제품과 구입한 날짜를 찾아봤다. 이것도 같이 버렸나보다, 라는 생각이 들자 이제는 참을 수가 없었다. 남자친구와 만나기로 했는데 지금 누굴 만날 기분이 아니었다. 집에 들어가 엉엉 울면서 화장품을 찾아내야 이 허탈하고 한심한 기분을 털어낼 수 있을 것만 같았지만, 집에 돌아가면 내가 정신을 어디에 두고 뜯지도 않은 새 제품을 버렸다는 사실을 마주할 자신이 없었다. 멘붕에 빠져있는 나를 끄집어 낸 건 결국 남자친구였다. (이쯤되면 내 남자친구는 정말 극한직업 인정.)


엄마도 아빠도 동생도 남자친구도 다들 방 어딘가 잘 넣어두고 못 찾는 거라 위로했다. 남자친구와 스트레스 팡팡 풀고 집에 들어와 다 뒤집었다. 없었다. 그래 버렸다고 생각해야 포기가 편해. 라고 마음 먹으려 했지만 여전히 잃어버리는 건 익숙하지 않다. 쓰지도 못하고 버렸다는 건 돈이 너무 아까웠고, 대체 무슨 생각으로 그걸 버렸지? 하는 스스로에게 한심하다는 생각에 자꾸 닿아 쓰라리고 아픈 상처를 낸다. 탁탁 털어내고 잊으면 그만인데 다시 사야하는 제품이라 화가 난다. 이러다 진짜 어디서 나타나면 울면서 소리칠 것 같다. “너 나한테 왜그랬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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