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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수리 Jan 12. 2020

우리만 아는 결혼 이야기 : 부모님 인사

2. 엄마가 처음 만나는 내 남자 친구

진짜 결혼할 사람만 소개해줘.

결혼할 사람이 아니면 내 남자 친구는 보고 싶지 않다는 게 우리 엄마 철칙. 처음 남자 친구가 생겨 신이 난 목소리로 엄마에게 설명할 때도 엄마는 조건을 궁금해했지 그를 만나고 싶어 하진 않았다. 그래서 누군갈 만날 때마다 엄마에게 남자 친구가 생겼다고 쉽사리 얘기하지 못했다. 엄마가 먼저 “남자 친구 생겼어?”라고 물어보면 그제야 대답하는 식이었다. 결혼할 사람이면 어련히 데려올 테니 더 이상의 질문은 받지 않겠다는 나의 일방적 통보와 함께 30년 동안 엄마는 나의 남자 친구를 보지 못했다.


그런 내가 프로포즈를 받고 온 다음 날, 엄마에게 말했다. “엄마 나 남자 친구 생겼어.” 엄마의 놀란 표정을 아직도 잊지 못한다. “결혼할 거야?”라는 대답에 그렇다고 하니 그제야 궁금한 것들에 대해 하나씩 꺼내놓기 시작했다. 그리고 그와의 첫 만남, 엄마는 거의 말을 하지 않았다. ‘이 남자가 내 딸이랑 결혼을 한다고?’의 표정으로 그를 찬찬히 살펴보기도 하고, 아빠와 그의 대화를 경청했다. 그리고 그가 나를 대하는 행동 하나하나를 눈여겨보는 듯했다. 그렇게 그가 떠나고 나서 엄마는 다른 것 필요 없이 그가 나를 보는 눈빛과 대하는 행동에 좋아하는 마음이 가득 담겨있어 다행이라는 말을 했다.


그다음 만남부터 엄마의 원래 텐션으로 돌아와 말을 많이 하기 시작했고 남자 친구는 어머님이 저렇게 말씀이 많으신 분이었냐고 놀랄 정도. 만날 때마다 tmi를 뿌리는 것을 보면 이제 엄마도 그를 가족으로 받아들인 듯하다.


아빠가 서운해하시지 않았어?

우리 아빠는 말씀이 많지 않은 분이다. 보통 한국의 아버지들처럼 우리가 어렸을 땐 매일 야근하느라 자주 보지 못했고, 그럼에도 주말마다 우리에게 새로운 경험을 시켜주신다고 직접 4-5시간씩 운전을 해서 국내 여행을 시켜주시곤 했다. 그리고 고등학교에 들어왔을 때 아빠는 본의 아니게 우리 자매와 많이 멀어졌다. 그리고 그때부터 아빠의 말수가 더 줄어들었다.


그런 아빠가 나에게 했던 말은 “너가 좋아하는 사람 말고 너 좋아 죽겠다는 남자를 만나.”였다. 남자 친구 얘기가 나올 때마다 아빠는 잊지 말라는 듯 꼭 이 말씀을 하시곤 했다. 그리고 그가 인사 오던 날, 아빠는 사람이 참 차분하고 성실한 것 같네, 라는 말을 했고,  그와 함께 전셋집을 보러 다니던 어느 날에도 아빠는 그가 날 보며 좋아 죽겠어서 어쩔 줄 몰라한다며 나를 보며 웃었다.


아빠는 말씀을 많이 하시진 않지만 내가 결혼하겠다고 얘길 꺼낸 순간부터 나에게 더 자주 메시지를 보내곤 하신다. 그리고 집에 늦게 들어오는 날은 (또는 들어오지 않을 것 같은 날은) 집에 너무 늦게 들어오지 말라는 당부의 메시지를 보내곤 하신다. 글을 쓰다 보니 아빠가 보고 싶네. 좀 더 따스운 딸이 되어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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