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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수리 Jan 19. 2020

지금은 결혼 준비 중

3. 결혼 준비만 8개월 차

 결혼을 준비하려는 친구들에게 꼭 하는 말, 결혼 준비는 최대 6개월, 꼭 해야 하는 예식장이나 드레스샵 등의 희망사항이 없다면 4개월 동안 빡세게 준비해도 무리 없다고 얘기할 정도. (물론 사람마다 다릅니다. 사람 바이 사람, 케이스 바이 케이스!)


벌써 결혼 준비 8개월 차, 이제 준비는 그만하고 신혼집 들어가서 꿀잠이나 자고 싶다는 생각이 간절해진다.


 처음에 날짜를 정했을 때도 너무 먼 미래라는 생각이 들긴 했다. 다만 우리가 만난 기간이 짧으니 사계절을 겪어보며 연애도 즐기고 싶은 마음도 있었다. 하지만 준비를 해나갈수록 우리의 준비 기간은 이미 충분했다는 생각이 드는 요즘.


 사실 결혼식을 완벽하게 준비하고 싶어서 기간을 길게 잡은 건 아니었다. 프로포즈 받았을 때 날짜를 정하다 보니 가을이 제일 최적이었는데 왜인지 내 생일 근처에 결혼기념일이 있는 건 내가 괜히 싫었던 것이다. 5월의 신부 같은 로망은 애초에 없었다. 양가 가족들의 기념일, 제사 등을 제외하고 남은 일자들을 추려보니 그나마 다음 해 봄이 나왔다. 날짜를 결정하고 식장을 보러 갔을 때는 이미 골든타임은 예약이 마감되었다는 사실.. 무려 9개월 전에 그렇게 다들 발 빠르게 준비한다는 사실에 결혼율이 감소했다는 말이 무색하다는 생각이 들더라. 하지만 지금 와서 생각해보면 그들도 나와 같은 마음이겠지 하는 생각이 들어 조금은 위안이 된다.


 지난 8개월 동안 꽤 열심히 준비했다고 생각했는데 체크리스트를 보다 보면 뭐야 이것밖에 없네.라는 말이 절로 나온다. 예를 들면 드레스. 처음엔 드레스샵을 고르러 간다. 플래너마다 다르고 직접 예약하는 것마다 다르기 때문에 이건 케바케라는 내용을 먼저 알린다. 우리 플래너는 세 개의 샵을 가보고 그중 한 개를 고르면 스튜디오 촬영용 드레스 3벌, 결혼식(본식) 드레스 1벌을 대여할 수 있다고 했다. 결혼식이나 촬영이 많은 주말에는 샵을 웬만하면 잘 가지 않는다고 해서 평일에 반차를 쓰고 드레스 샵 투어를 했다. 샵을 고르고 나면 스튜디오 촬영에 입을 드레스 가봉 날이 있다. 그리고 나면 결혼식 3-40일 전에 결혼식에 입을 드레스 가봉을 한다.


 예비 신랑 예복 맞춤 때도 비슷한 과정을 겪었다. 박람회에서 계약한 후 처음엔 상담을 받으러 가서 계약 후 바로 체촌을 했다. 그다음은 가봉을 위해 또 방문, 마지막은 완성된 예복을 픽업하면서 스튜디오 촬영 날 입을 턱시도를 대여하러 근처 대여샵으로 이동했다. 그리고 스튜디오 촬영 날 대여하고 반납하고.


 이런 식으로 최소 2번의 방문이 있어야만 체크리스트 중 하나를 완성할 수 있는데 평범한 회사원에게 이런 최소 2번의 방문이 생각보다 쉽지 않았다. 주말에 상담 예약을 잡은 경우엔 데이트라고 생각하고 갔지만 진이 빠져서 데이트는커녕 ‘내가 이걸 지금 제대로 한 건가.’ 싶기도 했고. 평일에 연차를 쓰고 예복 샵과 드레스샵을 오전/오후로 나누어 방문하기도 했는데 이게 생각보다 체력 소모가 꽤 컸다. 그렇게 나름대로 열심히 준비한 것들이 체크리스트에서는 하나의 항목으로만 나오는 게 조금은 억울하지만 (대체 왜?) 이제 결혼식 준비도 얼추 끝나가고 결혼 이후에 살 집에 대해서도 퍼즐이 맞춰지고 있어 그래도 뭔가 하긴 했구나. 싶은 생각이 든다.


 반대로 결혼일자가 먼 미래여서 좋았던 점은 나의 가족과 할 수 있는 시간이 많았던 것이다.

메리지 블루(Marriage Blue), 결혼을 앞둔 남녀들이 겪는 심리적인 불안감과 우울함. 나 역시 그 시간을 겪었다. 처음엔 내가 사랑하는 사람을 만나 결혼을 약속하고 기쁜 일이라고 생각했는데 막상 30년 가까이 살아온 가족과 헤어질 생각을 하니까 새삼 우울해졌다. 괜히 가족이랑 떨어지기 싫고 그래서 친구들 약속 대신 집에 있는 시간을 만들기도 했다. 원래는 방에 들어가면 잘 나오지 않았는데 메리지블루가 온 뒤부터는 괜히 한 30분이라도 거실에 앉아 아빠, 엄마 그리고 동생과 이야길 나누기도 했다. 결혼 전 마지막으로 함께 같이 먹는 크리스마스 케이크, 새해 보신각 종소리 듣기 등 작년에 결혼했다면 소중한 줄 몰랐던 시간이 있었다. 물론 결혼하고 나서는 새 식구와 함께 할 수도 있고, 새 식구를 데리고 갈 수도 있지만 의미부여를 하는 나 같은 존재에게는 꽤 소중한 시간이었다.


 새로운 가족을 만들기 전, 우리 가족이 함께 할 수 있는 것들을 찾아 추억을 만드는 것도 새삼스레 소중해지는 시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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