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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수리 Mar 22. 2020

모녀의 미묘한 신경전

내쫓기는 것인가 내 발로 나가는 것인가

엄마랑 또 싸웠어


 결혼식 12일 전, 나는 엄마랑 또 싸웠다. 신혼집이 생기고 나서부터 유독 자주 있는 싸움이다. 퇴근하고 집에 돌아오면 짐 정리 좀 하라고 성화를 부리는 엄마에게 짜증을 부렸다. 짐 좀 늦게 가져가면 안 되냐, 좀 맡아주면 안 되냐고 짜증을 부렸더니 엄마가 너는 사는 동안 방이 있었으니까 짐에 치여사는 게 어떤 건지 모른다며 되려 화를 냈다.


 나에게 이 싸움의 발단은 출생의 비밀(?)부터 어린 시절을 꼬박 담아낸 앨범을 가져가라는 엄마의 한 마디였다. 엄마가 만들어 준 앨범을 몽땅 가져가라는 말에 서운함이 묻어났고 결국 짜증을 냈다. 저건 좀 엄마가 갖고 있으면 안 되냐? 짐을 떠맡기려는 게 아니라 엄마가 만든 나에 대한 추억을 갖고 가라는 게 내심 서운했다. 그런데 엄마는 이게 그저 짐으로 보였던 모양이다. (아니면 엄마가 손수 만들었으니 이제 너가 가져가란 말인가.)


 그렇게 서로 짜증을 내고 나니 엄마가 밉고 하루빨리 집을 나가야겠단 생각이 들었다. 화풀이 대신 방에 보이는 물건 중 가족 물건과 섞여있던 물건부터 하나씩 정리하기 시작했다. 엄마가 미리 정리한 신발부터 가방, 모자, 가전제품, 책 등등 아직 남은 서랍이 많은데 벌써 한 짐이 나왔다. 이럴 거면 그냥 차라리 날 잡고 용달차를 부르는 게 더 빠를 것 같은데.


 대부분의 모녀관계가 그렇듯 내가 생각하기에 엄마와 나는 애증의 관계라 생각한다. 한 때 엄마의 치마폭에서 그만 나오고 싶어 “나는 착한 딸을 그만 두기로 했다.”라는 책을 사서 읽고 엄마에게 큰 서운함을 안겨주기도 했고, 같이 여행 갔을 땐 매일 두세 차례는 싸워서 가이드 아저씨가 그만 좀 싸우라고 했을 정도. 결혼 준비하며 내가 제일 많이 했던 말이 “엄마가~” 였을 정도니 할 말 다했다. 서른둘, 아직도 엄마 치마폭에 싸여 독립을 꿈꾸는 딸.


 오늘도 화를 내며 책꽂이를 정리하는 나, 그리고 그런 나를 도와주는 엄마. 이제 정말 이 보금자리에서 떠나 독립할 때가 오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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