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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수리 Apr 06. 2020

코로나로 포장된 희망퇴직

사실 예견된 희망퇴직이었음에도 불구하고

 결혼식이 끝나고 돌아온 월요일, 그리고 금요일, 원치 않는 연차를 썼다. 사실 이탈리아에 있어야 할 시간이었지만 신혼 휴가를 일주일 미뤄줄 수 있다는 회사의 배려 아닌 배려를 받고 출근하려던 월요일은 사실 우리 팀의 마지막 회식 날이었다.


 코로나 19 바이러스 감염이 심해지고 우리 회사는 돌연 재택근무를 시작했다. 결혼식 드레스 가봉을 하러 갔다가 급 공지를 받고 다음 날부터 재택근무를 시작했다. 사실 결혼식을 앞두고 지하철 출퇴근으로 불안한 마음이 있었던 나는 감사한 마음이 들기도 했지만 한편 뜬금없이 재택근무를 결정한 회사를 의심하기 시작했다. 갑자기 이렇게 재택을 할리가 없는데 혹시 대표님이 자가 격리해야 하는 건가, 회사에 자가 격리하는 사람이 생긴 걸까 등등. 재택근무가 끝나고 복귀한 다음 날 출근하자마자 팀원들을 소집한 팀장님, 그리고 그 날 아침 희망퇴직 공고가 떴다. 버라이어티한 2020년이라는 말 밖에 나오지 않았다. (단, 재택근무는 본사에서 내려온 공지였다는 것이 담당부서 말씀.)


 이직한 지 1년 하고도 5개월, 전 회사보다 야근이 적고 사생활에 터치하지 않는 회사라 좋았다. 그럼에도 기본 커리어를 보장받지 못해 짜증 났고 욕하는 고객 상담에 진절머리가 났고 자기들 멋대로 하려는 협력사 때문에 때려치우고 싶기도 했다. 회사는 뭘 해도 회사라는 게 학계의 정설. 안 그래도 인수합병 후 서버팀 개발자가 줄줄이 퇴사하면서 지속적으로 개발 오류가  발생했고 그에 따른 운영 이슈 때문에 혹시 ‘여기 침몰하는 배가 아닐까.’라고 걱정했던 건 사실이지만 이건 내 시나리오에 없었는데.


 희망퇴직 공고가 뜨자마자 나보다 먼저 입사한 디자이너님이 제일 먼저 사표를 냈다. 가장 먼저 제출할 건 알았지만 이 팀이 만들어지기도 전부터 같이 했던 분이라 속상함이 컸다. 아니 우선 이렇게 만든 회사 임원진에게 화가 났다. 대체 뭘 믿고 사업 확장을 했으며, 실무자가 안된다고 한 사업을 밀어붙여놓고 회사 운영이 어려워졌다는 말 한마디로 임원 급여 삭감 공지도 없이 전 직원 대상 희망퇴직 공고를 내는 것이 어이없게만 느껴졌다.


 게다가 이 모든 결정이 코로나로 재택근무 공지가 시작된 후 일어난 일이라는 것. 본사에서 재택근무 요청이 내려왔을 때 오히려 잘됐다고 생각했을까. 모두가 힘든 코로나 시기에, 구직 시장도 얼어붙은 이 시기에 코로나로 포장해서 계속 적자가 난다는 이유로 지난 몇 년간 유지해온 브랜드 서비스를 포기하겠다는 중대 사항과 열심히 일해온 직원들을 재난에서 보호는 못해줄 망정 재택근무로 일일 업무 일지를 확인했다는 이야기까지. 결혼을 2주 앞두고 회사 직원분들의 이름까지 적어 들고 갔던 청첩장을 다시 집으로 가져가며 이 회사에 대해 없던 정도 모두 떨어졌다.


 희망퇴직 1차가 끝나자 팀원이 많이 남은 팀에는 압박을 하며 희망퇴직 2차 공지가 떴다. 하다 하다 별짓을 다한다 싶어 나도 2차에 사표내고 이 회사와 영영 이별하고 싶은 마음이 굴뚝같았다. 결혼이라는 상황만 아니었다면 냈을 법하단 얘길 하곤 했지만 실제 사표를 써야 하는 상황의 동료를 바라보며 어떤 말도 꺼내기가 어려웠다. 그리고 다가온 31일, 희망퇴직으로 사표를 작성한 동료들이 오전 근무만 하고 오후에는 모두 자리를 떠났다. 회사의 절반이 퇴사하고 나니 빈자리뿐만 아니라 내 마음속에 찾아온 헛헛한 기분은 설명할 수 없었다. 불과 2-3주 만에 일어난 이 모든 일에 대해 누군가는 손익 관계를 따졌겠지만 누군가는 동료를 강제로 잃었고 동시에 일에 대한 의욕을 잃었다.


 최근 드라마로 방영한 ‘이태원 클라쓰’에서 주인공이 말하는 장사꾼에게 중요한 사람과 신뢰는 우리 회사에는 소용없는 것일까. 결국 회사도 돈 되는 장사라는 것과 직원은 누군가의 포트폴리오의 한 글자라는 사실에 힘없는 회사원인 나는 굴복할 수밖에 없었겠지.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사람을 중요치 않는 직장에게 더 이상의 미련은 없다. 필요한 사람만 남겼다고 하지만 결국 서비스는 똑같은 오류만 반복하고 있으니 일할 맛 안나는 건 예전이나 지금이나 똑같은데 더 하기 싫은 것. 드라마에서 나온 말이라서가 아니라 아무리 자본주의라고 해도 결국 사람이 제일 중요하다고 다시 한번 깨닫는 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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