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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수리 Apr 12. 2020

초대하지 않은 손님, 코로나

그러나 6.25 전쟁에도 사랑은 꽃피었다.

 답답한 마음을 풀어놓을 곳이 없어 결국은 글로나마 상황과 심정을 남겨놓고 싶어 끄적거린 글. 이제는 확진자도 줄어들고 있어 그런지 길거리에 마스크 쓴 사람들도 줄어드는 듯하다. 하지만 누군가도 인생의 중대사를 앞두고 불안한 마음이 가득할 테니 이럴 때일수록 더 조심해야 한다. 나 같은 경우는 인생 제2막, 결혼식을 앞두고 있었다. 작년 6월 예약한 결혼식에 문제가 생기지 않을까 노심초사한 것이 끝난 게 벌써 이 주 전이다.


처음에 예식일을 연기했다는 사람들을 보고 그저 남일이라고만 생각했다.


 하지만 이제와 보니 먼저 결혼한 사람들이 다행이라고 생각될 만큼 점점 상황이 심각해졌고 결국 내 일이 되었다. 하루가 멀다 하고 친지들의 안부 또는 위로 연락을 받고 나만 그런 줄 알았는데 재택을 하다 보니 엄마도 하루에 몇 번씩 그런 전화를 받더라. 엄마가 그 정도니 아빠는 오죽할까 싶더라.


 애초부터 우리는 일자를 변경할 생각이 없었다. 모든 것은 우리의 예식일 기준으로 준비되었기 때문에. 심지어 우리 플래너님은 나를 마지막으로 출산 휴가 예정이다. 이마저도 예식을 연기할 수 없는 상황으로 점점 맞춰 들어간다. 하긴 4월 예식을 예약하는 사람들도 있다는데 뭐. 사실 드레스샵, 헤어 메이크업샵뿐만 아니라 예식장 남은 일자와 시간을 조율해야 하는 피 말리는 상황을 최대한 피하고 싶었고, 4월이면 당장 출산을 앞두고 있는 플래너 대신 다른 분이 오시는 건 더더욱 원치 않았다. (결국 플래너님은 사고가 있어 예식장까진 못 오셨지만.) 어차피 취소한 이탈리아 신혼여행에 이어 이제는 1년 전부터 준비한 결혼식을 더 미뤄야 할 수도 있다니, 이미 털린 영혼에서 ‘어디까지 털려볼래?’라고 세상이 비웃기라도 하는 듯 이젠 정말 뭐라도 하나 더 터지면 멘탈이 부서질 것만 같았다.


 그러나 복병은 언제나 생각지 못한 곳에서 터진다. 여행과 밀접한 관련이 있는 남자 친구 회사는 무급휴직을 권했고, 내가 다니는 회사는 희망퇴직 공지가 떴고, 양가 부모님은 청첩장을 아예 돌리지 않으시는 등 첩첩산중이었다. 결혼을 한다는 나는 아직도 인생의 1부터 10까지 있다면 1도 제대로 보지 못하는 철부지 어린애였을 뿐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전생에 나라를 몇 번 팔아먹었으면 저에게 이런 일이 생길까요. 그냥 나는 사랑하는 사람을 만나 조촐하게나마 양가 부모님 의견을 따라 남들 하는 대로 결혼식 준비를 했을 뿐인데. 왜 남들 다 하는 결혼식이 이렇게나 어려운 건지 갑갑하고 짜증 나고 속상하고 이런 마음을 어디에 털어놓을 곳이 없었다.


 올해 중대사가 있는 사람은 갑갑하고 짜증 나고 속상하고 어디에 이런 마음을 털어놓을 곳 없는 건 똑같겠지. 나 말고도 출산을 앞둔 사람, 수능이나 중요한 시험을 앞두고 있는 사람, 취준생 등 앞으로 중요한 일을 앞둔 사람들은 다 같은 마음일 거란 생각이 들면 나만 힘든 소리 할 수 없다는 생각도 들었다. 내 친구는 심지어 결혼식에 오는 사람 모두가 목숨 걸고 오는 거라며 꼭 행복하라는 이야길 건넸다. (무섭게 왜 그래 나한테)


 사실 이때 결혼일자를 잡은 게 고의도 아닌데 결혼식에 대한 걱정하는 이야기도 신혼여행 꼭 가야 하냐고 (이탈리아에서 제주도로 변경했음에도) 물어보는 사람들까지. 멘탈 다스리는 것이 쉽지 않았지만 내 평생 친구, 신랑과 같이 이 역경을 헤쳐나가며 앞으로 이보다 더 심각한 일이 있을 때마다 이 시기를 생각하자는 이야길 끊임없이 했고, 우리의 혼인 서약에도 추가했다.


인생이 힘들 때면
코로나로 힘들었던 순간을 기억하고
함께 이겨내겠습니다.


 인생 2막을 준비하는 사람들이 모두 이 시기를 잘 견디고 앞으로 시련이 다가오면 이 시기를 기억하고 잘 이겨낼 수 있었으면 좋겠다. 부디 모두에게 이 힘든 시기가 무사히 지나가길 바라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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