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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수리 May 16. 2020

허기진 마음을 채워주세요

‘다정한 구원’이 위로의 손길을 건네듯

 지난 글에서 얘기했듯이 귀찮음을 이겨내고 출퇴근길 가방에 넣을 책을 신중히 선택했다. 며칠 전 신랑의 얼굴을 찬찬히 쳐다보다 갑자기 조금 텅 빈 기분을 느꼈다. 그날 밤 신랑이 어쩔 줄 몰라할 정도로 나도 모르게 한참 눈물을 쏟았다. 마치 결혼식 전 날처럼.


 신랑은 내가 혼란스러운 기분 때문에 울었을 거라는 걸 바로 알아차렸다. 울면서 그 와중에 했던 이야기들이 최근 나에게 혼란스러움을 가져다준 일들임을 알기 때문이었겠지. 그것만으로도 고마웠다. 누군가 내 기분을 이해해준다는 것은 기적 같은 일인 것을 알기 때문에.


 그 혼란스러운 감정 중 하나는 나 자신이 텅 빈 것 같다는 기분이었다. 전날 요즘 별다른 취미가 없다는 것을 깨닫고 쓴 글 때문인 듯했다. 다양한 취미가 나를 대변하듯 취미 생활을 정신없이 즐겼던 예전과는 다르게 쉴 시간이 생기면 소파나 침대에 눕는 게 당연해진 모습이 내심 싫은데도 이겨낼 재간이 없었다. 친구에게 상담하니 결혼이라는 큰 산을 넘어서 후련하고 시원, 섭섭한 기분이 아닐까라는 대답이 돌아왔다. 1년 동안 온갖 스펙타클한 인생의 주인공으로 살다가 msg 다 빠지고 건강식이 되었다는 적절한 비유와 함께.


언니, 마치 그런 거지,
결혼식을 잘 마무리하고 나니까
언니 인생이 msg 빠진 건강식이 된 거야.


 결혼을 해서가 아니라 결혼식이라는 단 하루의 날을 향해 경주마처럼 달리다가 목적을 이루고 나니 어쩔 줄 모르는 거겠지. 사실 이 모든 건 신랑이 제일 먼저 꿰뚫어 보고 걱정했었다. 결혼식을 끝낸 뒤 내가 혼란스러워할까 걱정된다고. (이렇게 쓰고 보니 팔불출이지만 결혼 참 잘한 것 같네.)


 그 허기진 마음을 달래고 싶어 야금야금 사두었던 책들을 하나씩 들춰봤다. 여행의 이유는 아껴둔 만큼 가장 먼저 읽었고, 그다음은 다정한 구원이 눈에 들어왔다. ‘교토에 다녀왔습니다.’라는 베스트셀러로 처음 접한 임경선 작가님은 자신의 여행 이야기를 통해 사람들에게 따스한 위로를 건네는 느낌이었다. 책을 꺼내 들고 보니 이 책도 그런 서평을 읽고 구입했던 기억이 든다. 그렇게 책장 속에 아껴둔 책을 지하철에서 아껴 읽었다. 책이 끝났을 때, 다정한 구원도 역시나 내가 생각했던 그런 위로가 다가왔다. 리스본에 가본 적 없는 나도 그 공간에 있는 듯한 기분을 느낄 정도로 말이다.


 본인이 유년시절 부모님과 함께 살았던 리스본에서 이제는 곁에 없는 부모님을 찾아 위로받고, 그만한 나이의 딸과 함께 자신의 추억에 또 다른 추억을 더하는 그녀의 여행. 읽는 내내 내가 만약 그런 여행을 떠난다면 어디가 좋을지 고민하게 됐다. 부모님과는 아니지만 다시 가고 싶은 곳이 있냐고 묻는다면 짧지만 좋았던 기억이 남은 캐나다 토론토를 제일 먼저 떠올린다. 2005년 1월 무릎까지 쌓인 눈을 뚫고 엔젤을 만들던 그때 그 순간으로 돌아갈 수 없겠지만 그때의 나를 다시 스쳐 지나갈 수 있을 것 같아.

2005년. 눈이 무릎까지 쌓여있던 토론토 어느 산

 허기진 마음을 달래는 법은 생각보다 가까이 있을 것이다. 우선은 2020년이 벌써 5개월이나 지났지만 목표를 세워보기로 한다. 매년 연례행사처럼 하던 목표 세우기를 하지 못했으니! (작심삼일이라도 좋아.) 내가 올해를 시작하며 목표를 세웠던 것이 있었나, 하는 생각이 들게끔 했던 책. 작년에 미처 하지 못한 나의 꿈이 꿈틀꿈틀 거리는 느낌.


 오랜만이다 이런 느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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