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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 아무래도 이 일이 안 맞는 것 같아
희망퇴직이 끝나고 회사에서 새로운 일을 받았다. 사실 새롭다기보다 이미 그 업무는 지난 3월부터 나를 심리적으로 갉아먹고 있었던 업무에서 추가된 것이지만. 우리 서비스는 앱마켓 별로 구독 서비스를 진행하고 있는데 앱 마켓별 매출 보고를 진행하고 계약된 업체와 정산을 진행하는 업무였다. 나는 경영학 전공임에도 (!) 숫자와는 친하지 않아 내심 이 일을 맡지 않으려고 다방면으로 노력했지만 희망퇴직이 뜬 마당에 나 말고는 이 일을 할 사람이 없다는 이유로 결국 내 업무가 되었다.
신혼 여행을 가서도 매출 보고를 하느라 신랑 혼자 잠을 재우고 나는 식탁에 앉아 업무를 하느라 새벽 4시까지 잠들지 못했다. 처음 하는 업무에다 기존에 하던 업무도 정신없이 뚫고 오던 기간이라 이걸 어떻게 해야할지 파악할 시간조차 없었다. 결혼이고 뭐고 나는 사실 그 때 회사에 대한 스트레스로 몸과 마음이 지친 상태였다. 그렇게 새벽 4시까지 정리했던 업무는 신혼 여행을 다녀오고 실 입금액과 오차범위가 크게 나타났다. 알고보니 인수 인계 받았던 내용이 모두 잘못되어있었고 애초에 서비스 시작할 때 설정했던 기준시도 잘못되어있었던 것이다. 그 때부터 나는 지급 보고서, 정산 내역서에 적힌 데이터와의 전쟁을 시작했다. 업체에서 주는 지급 보고서를 뜯어보고 다양하게 표를 짜보기도 했지만 여전히 나는 그 전쟁에서 벗어나지 못했다.
그런 와중에 요율도 정해지지 않았는데 계약 업체와의 정산을 진행하라는 지시가 떨어졌다. 게다가 이 정산을 위해 필요한 기본 데이터에 대해 수집한 적이 없다는 관련 부서. 서비스 오픈 전부터 정산에 필요한 데이터 구축을 얘기했건만 결국 떠안는 사람만 피보는 것이라는 걸.. 나만 알고 있었던 걸까. 어쩌면 그래서 맡기 싫어 도망다녔을지도. 게다가 누군가는 이 일을 해야하고 마치 내 일이 아니라는 듯 얘기하는 윗 사람들에게는 더더욱 이 일을 못하겠다는 말을 꺼낼 수 없었다. 이 업무를 맡은 이후로 나는 퇴사 생각을 자주 했고 다시 지각 아닌 지각이 많아졌다. (예를 들면 출근 시간 정각에 지문 찍기)
브런치에 업무에 대한 불만을 글로 털어내지 않겠다고 다짐했지만 이따금 솟구치는 불만을 회사의 동료에게 털어놔도 결국 그도 다른 스트레스를 받고 있었기에 그 때 뿐이었고 어느 새 회사에서도 불만을 얘기하기엔 애매한 위치가 되어있었다. 그렇다고 부모님께 털어놓으니 이 시기에 회사에 다니는 것만으로도 다행이라는 생각으로 딴 생각 말고 그 자리를 지키라는 대답이 돌아왔다. 취업 시장이 꽁꽁 얼어붙었다는 친구들의 증언이 있기도 했고 나도 체감하고 있어 딴 생각 말고 마음 붙여 다녀보자 마음 먹었건만.
결혼을 일주일 앞두고 희망퇴직 관련 면담을 요청했을 때 나에게 연애 상담을 해주겠다던 상사, 그리고 내가 기대하던 추후 사업은 결국 돈이 되지 않아 사업 방향에서 접을 예정이라는 이야기와 함께(사실 제대로 시작한 적도 없었던 것인데 지금은 이익을 내고 있다. 멍청이들.) “OO님, 지금 회사에서 제일 안전한 위치 아니야? 결혼하잖아, 돈 벌어야지.” 라고 말하던 사람. 본인도 기혼이면서 이제 기혼이 되는 사람에게 그 말이 무기가 될 수 있다는 걸 이 사람은 모르는걸까, 아니면 알고도 무기로 사용한 걸까. 어느 방향이든 그 사람과 이 곳에 대한 눈꼽만큼의 정도 깔끔하게 닦아냈던 순간. 모든 직장인이 성취감과 커리어에 대한 기대로 출근하지는 않겠지만 그 순간 이후 이 업무로 월급받는 내 자신이 싫어졌다. 아, 진짜 배부른 소린 거 안다.
이제 문제는 업체에 보냈던 정산서에 대한 피드백이 오고 금액을 맞춰보던 차에 정산 내역서 내 수치가 살짝 다른 부분들을 발견한 것이다. 그 순간부터 이런 실수를 한 내 자신이 싫어진다. 난 왜 이 모양일까, 이런 실수가 생기면 나는 내가 했던 모든 업무들에 대한 믿음이 사라지고 이전에 작성한 문서를 다시 보는 것에 두려움을 느끼기 시작한다. 사실 서비스를 오픈하면서 CMS 아니 하다못해 어드민도 없이 운영을 진행하는 것 자체가 실로 어이없었다. 그리고 데이터를 수기로 봐야하는 나는 이 업무를 제대로 해낼 수 없는 부품 같은 것이다. 삐그덕 거리다가 결국 빠져버릴, 작은 나사 같은 것.
아이디어가 떠오르지 않을 때마다 버릇처럼 하던 “나 아무래도 이 일이랑 진짜 안맞는 것 같아.” 라는 말은 알고보니 지금 나에게 제일 잘 맞는 말이었다. 정말, 내 정신을 갉아먹는 이 업무를 내려놓고 싶다. 하지만 나는 월요일에 다시 그 정산 내역서를 보고 수치를 수정하고 그에 대한 사과와 함께 보고를 마쳐야겠지. 그게 지금 이 회사에서 나의 역할일테니까. 부디 주말에는 이 일에 대해 잊고 지냈으면 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