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의 겨울냄새가 생각나는 요즘이다. 말레이시아에 사는 동안 한 번도 생각나지 않던 한국의 겨울이 돌아갈 때가 되니 몹시 그립다. 친한 언니가 보내준 붕어빵 사진 한 장에 내 마음이 동해버린 탓인 거 같다.
이제 두 달 후면 한국으로 돌아간다. 얼마 남지 않았는데도 이곳에 더 있고 싶다는 미련이 들지 않는 걸 보니 이곳에서 정말 잘 지냈나 보다.
이곳에 도착하고부터 쭉 브런치를 써온 덕분인지 3년여의 시간이 어제 일처럼 생생하다. 아주 많은 일을 경험했고 내가 달라졌음을 느낀다. 사실 달라진 것인지 원래의 내가 이랬던 것인지 모르겠다. 중요한 건 내가 그동안 알고 지내던 나의 모습과 지금의 나는 많이 다르다는 거다.
만약 내가 영어를 배우려고 노력하지 않았다면, 한국에서 처럼 뒤에서 지켜보기만 하면서 지냈다면 전혀 알지 못했을 거다.
이곳에 오기 전부터 영어공부를 꼭 제대로 하고 말리다 다짐했었다. 나한테 영어는 두려움 그 자체였기 때문이다. 지금 생각해 보면 학교 다닐 때 열심히 아르바이트에서 외국 여행도 다녀오고 했으면 이렇게 까지 무서워하진 않았을 거 같다. 늘 같은 공부, 비슷한 사람, 비슷한 환경 속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외국을 미지의 세계로 보면서 감히 내가 갈 수 없는 곳이라 여겼다.
내가 의도하진 않았지만 해외에 살게 되었으니 이겨내고 싶었다. 더군다나 혼자 있는 것도 아니고 아이들이 함께 있으니 더 잘하고 싶었다. 애들 앞에서 영어 못해서 기죽어 있는 모습은 보여주고 싶지 않았다. 학원도 다니고 책도 보면서 외국친구들과의 대화도 많이 하려고 노력했다. 아직 만족할 만큼은 아니다. 내가 원하는 말을 제대로 다 할 순 없다.
그렇지만 예전에는 영어로 된 건 그게 무엇이던 피하기 바빴는데 이제는 귀를 쫑긋하고 이해해 보려고 애쓴다. 애니메이션 정도는 자막 없어도 충분히 즐길 수 있다. 외국인과의 만남도 무섭지 않고 언제든지 스몰토크 할 정도는 된다. 이 정도면 많이 늘었다고 말할 수는 있을 거 같다.
영어는 자신감이라는 말은 진짜였다. 아이의 학교생활을 도와주기 위해 자주 학교에 가서 사람들을 만날수록 영어가 늘었다. 이건 한국어머니회 대표와 한국어위원회 활동을 했던 게 큰 도움이 되었다. 물론 한국어머니회 대표는 내가 하고 싶어서 한 게 아니고 사다리로 뽑힌 거지만 대표가 된 이상 열심히 해야 했다. 한국어위원회는 내가 좋아서 했으니 그것 또한 최선을 다 했다.
1년 동안 이 두 가지 활동을 하면서 깨달은 게 있다.
나는 생각보다 외향적인 사람이고 전체 업무를 계획하는 걸 할 수 있으며 외국문화에 굉장히 호의적이다.
30년을 정확히 이 반대로 생각했다. 내성적이라 믿어서 새로운 만남도 별로 없었고 늘 뒤에서 다른 사람이 하는 것만 따라가면서도 별다른 생각이 없었다. 외국은 상상조차 해본 적이 없다.
사람들하고 만나는 게 더 편해질수록 영어도 늘었고 그럴수록 더 많은 외국엄마들과의 교류를 하고 싶었다.
첫째 아이가 외국친구들과 놀 때면 그 엄마들에게 스스럼없이 다가가 대화를 했고 영어모임에도 참여를 했다.
내가 전혀 알지 못했던 세상 이야기를 듣는 건 참 재미난 일이다. 사람 사는 게 비슷한 듯하면서도 다른 점이 많아서 영어모임은 언제나 대화가 활발하다.
원어민이 말하듯이 유창하게 영어를 하는 사람은 되지 못했다. 하지만 아쉬워하며 후회하기보단 지금까지 잘해왔다 나를 칭찬해주려 한다. 한국으로 돌아가는 것이 나에게는 또 다른 새로운 시작이기 때문이다.
새로운 시작 속에서 다시 한번 노력하면 된다. 그러면 더 달라진 나, 내가 원하던 모습을 한 나를 발견할지도 모른다.
100번째 글입니다. 말레이시아에 와서 있었던 일은 거의 전부 글로 쓴 거 같아요.
꾸준히 쓰는 게 쉽진 않았지만 덕분에 아이들이 이곳에서 얼마나 예쁘게 성장했는지 평생 기억할 수 있게 된 거 같아 기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