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이중인격자다.

그렇게 나는 자본에 굴복한 ‘기레기’가 됐다.

by 박타미

언론사의 돈줄은 광고다. 아무리 뉴미디어 같은 새로운 플랫폼이 등장해도, 한 해 매출에서 광고가 차지하는 비중은 여전히 크다. 언론 광고는 기자와 홍보 담당자 간의 인맥으로 만들어진다. 그래서일까? 마이너 언론사일수록 기자의 취재력보다는 인맥으로 사람을 평가하기도 한다.


산업부는 광고와 직접적으로 얽힌 부서다. 출입처가 곧 광고주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산업부 기자들에게는 광고주를 관리하는 역할까지 주어진다. 만약 기업이 광고를 집행하지 않으면, 기자는 그 기업의 좋지 않은 면을 집중적으로 파헤쳐 거래를 시도한다. 기사를 내보낼지, 광고로 덮을지.


기업과 언론은 이렇게 관계를 맺는다. 어떤 기업을 비판하는 기사가 잘 나오지 않는 이유도, 그 기업이 언론사에 거액의 광고를 집행해왔기 때문이다. 덕분에(?) 언론사는 광고주의 나팔수가 된다. 기업이 언론을 통제하는 방식이기도 하다.


직접적으로 광고를 집행하지 않고 기사로 ‘퉁’치는 사례도 있다. 예를 들어보자. A사와 B사는 서로 경쟁사다. 정부가 새로운 정책을 펼치면 A사는 이익을 보고, B사는 손해를 본다. 이때 B사는 언론사에 광고를 집행하며 정부 정책을 비판하는 기사를 써달라고 요청한다. 언론사는 B사의 의도대로 정부를 비판한다. 이것이 기업의 ‘언론 플레이’다.


입사한 지 3개월도 안 되었을 때였다. 아직 신입 티를 벗지 못했을 무렵이다. 선배와 함께 출입처 한 곳을 방문했다. 무슨 일인지 자세히 설명도 듣지 못한 채, 그저 따라가기만 했다.


출입처에 도착하자 친절한 직원이 우리를 응접실로 안내했다. 그곳에는 양복 차림의 두 사람이 앉아 있었다. 겉으로는 티 나지 않아도, 한눈에 봐도 비싼 옷임을 알 수 있었다. 처음 본 사람들이었지만, 선배는 오랜만이라며 반갑게 인사했다. 곧 나는 두 사람과 명함을 교환했다. 그들은 해당 기업의 상무와 부장이었다.


부장은 서류 봉투를 건넸다. 복잡한 내용이 담겨 있었지만, 핵심은 정부 정책 때문에 자사에 불이익이 생길 수 있다는 주장과, 반대로 경쟁사는 그 정책 덕분에 혜택을 볼 수 있다는 내용이었다.


무엇이 옳고 그른지 쉽게 판단할 수는 없었다. 회사마다 처한 상황이 다르기 때문이다. 옳고 그름이 모호할 때는 서로의 입장을 균형 있게 다루는 것이 현명하다. 하지만 이번엔 달랐다.


미팅이 끝난 뒤 국장은 이 회사의 입장을 담은 기사를 쓰라고 지시했다. 그것도 인터넷판이 아닌 지면 전면 기사로. 그때만 해도 ‘이래도 될까?’라는 의문보다는 내 이름이 실린 기사가 종이신문에 나간다는 기대감이 더 컸다. 나중에 알았지만, 이 기사는 몇백만 원 후원으로 만들어진 기사였다. 언론사의 뒷광고는 이렇게 만들어진다.


시간이 흘러 입사 10개월 차가 됐다. 불과 몇 달 전 그 회사가 우려했던 정책이 실제로 시행되기 시작했다. 이는 곧 좋은 발제 거리이자 기삿감이기도 했다. 산업 구조가 바뀌기 때문이다. 곧바로 데스크에 기획 기사를 쓰고 싶다고 말했다. 그리고 4편짜리 연재 기사로 내보내기로 결정됐다.


취재 기획안을 제출했다. 서론에는 그간의 진행 상황을 짚고, 정책의 장단점을 분석한 뒤 전문가들의 의견을 담았다. 전형적인 다큐멘터리식 구조였다. 원칙은 지켰다. 누구의 편도 들지 않기로.


하지만 회사는 달랐다. 경쟁사의 나팔수처럼 오히려 정책 강화를 주장하고, 경쟁사가 시장을 지배해야 한다는 논조를 원했다. 그것도 내 이름으로. 불과 몇 달 전 내가 쓴 기사와는 180도 다른 내용이었다. 상식적으로 납득할 수 없었다.


나는 기사 작성을 거부했다. 몇 달 전 내 이름으로 쓴 기사와 지금 써야 하는 기사의 논조가 정반대라면, 누가 나를 믿을까. 내 이름이 달린 기사라면 그만큼 책임져야 한다. 기자는 다른 직업과 달리 ‘윤리’를 요구받는다.


하지만 기자도 결국 회사원이다. 위에서 시키면 할 수밖에 없다. 자고로 신문사는 군대 다음으로 위계질서가 뚜렷한 조직이다. 고집을 부리면 내 돈줄이 막힌다. 더 나은 세상을 만들고 싶다는 희망도 돈 앞에선 무너질 수밖에 없다는 현실이 씁쓸했다.


결국 사주(社主)가 원하는 대로 기사는 나갔고, 원치 않았던 어그로 덕분인지 조회 수는 급증했다. 그러나 자랑스럽지 않았다. 오히려 부끄러웠다.


그날 나는 기자가 아닌, 자본에 굴복해 휘둘리는 ‘기레기’가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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