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박작 Sep 15. 2015

좋은 음식은 마음으로 간다

로망스(2006)

좋은 음식은 살로 안 가고 마음으로 가거든요.


시장통의 어느 고깃집. 

누가 봐도 어울리지 않는 분위기의 두 남녀가 마주 앉아 국밥을 먹고 있습니다. 비루한 삶을 살고 있는 강력계 형사 형준(조재현)과 권세가의 며느리 윤희(김지수). 강력반 형사 형준에겐 어울리는 식당이지만 우아하고 아름다운 윤희에겐 좀 어울리지 않는 곳인데요, 너무나 배가 고팠던 형준은 윤희보다 먼저 숟가락을 들고는 게걸스럽게 국밥을 먹습니다. 그 모습을 본 윤희가 진심 어린 따뜻한 말 한마디를 합니다. 좋은 음식은 마음으로 간다고. 그러니 천천히 먹어야 한다고 말이죠. 형준은 밥을 먹다 말고 윤희를 멍하니 바라봅니다. 아마도 형준의 마음속에 윤희라는 이름의 '좋은 여자'가 각인되는 순간이었을 것입니다. 


영화 <로망스> 스틸컷




영화 <로망스>(감독 문승욱)는 강력반 형사 형준과 재벌가 며느리 윤희의 두려움 없는 사랑을 그리고 있습니다.  거물 정치인의 아내가 일개 형사와 바람이 났다! 그걸 알게 된 남편이 그들을 가만히 놔둘 리가 없습니다. 윤희는 남편에 의해 정신병원에 강제 수용되고 형준은 마약쟁이로 몰려 죽을 뻔하죠. 간신히 목숨을 건졌지만 형준은 윤희를 구하러 갈 결심을 하고 형준의 동생은 그를 극구 말립니다. 그러나 이미 사랑에 목숨을 건 형준은 정신병원에 강제로 감금된 윤희를 구출하러 가야 하는 이유에 대해서 아주 간결하게 대답합니다. 


"그 여자 처음 만나서 밥 먹었어. 웃었어. 나 그 여자 만나서 웃을래. 같이 밥 먹으면서 웃을래."


밥 한 끼 같이 먹었다고, 그래서 웃었다고, 그 여자와 사랑에 빠진 채 기꺼이 목숨까지 거는 형준의 사랑이 어쩌면 이해되지 않을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남녀 사이에 밥 한 번 먹는 일은 종종 예기치 않았던 사건의 시발점이 되기도 합니다. 어떤 여자와 밥을 먹는다는 것. 어떤 여자와 함께 웃었다는 것. 어쩌면 평범해 보일 수도 있는 그런 일들이 어떤 남자에게는 목숨을 걸고서라도 지켜주고 싶은 간절한 사랑이 되기도 합니다. 그리고 그때 그 여자와 먹은 음식은 정말로 살로 가지 않고 마음로 가는 것 아닐까요. 같이 밥 먹으면서 웃을 수 있는 것,  바로 그 지점부터 사랑은 시작되는 것이니까요. 



매거진의 이전글 삶의 본능에 굶주린 청춘의 식탁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