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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박영목 Mar 30. 2019

디자인 진행은
경쾌한 스탭 밝기처럼

제4장 디자인진행요령(일반)_01

디자인 진행은 아무리 오래 기간 하여도 쉬워지지 않는다. 디자인을 방법을 알고 경험이 많아져도 디자인은 역시 하기 힘든 작업이다. 이는 디자인이 원래 다양한 속성을 동시에 만족시켜야 하며 창의적이어야 하기에 절대 쉬워지는 과정이 아니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러한 디자인의 본질적인 어려움이 아니라 디자인 프로젝트의 운영의 미숙이나 실수, 중요한 요소나 과정의 간과 등에 의한 어려움은 경험을 통하여 극복해 나갈 수 있다.

본 장에서는 디자인 진행 시에 생기는 이러한 어려움을 극복할 수 있는 일종의 팁, 요령, 주의점에 대하여 점검하고자 한다.


저는 격투기 중계 보는 것을 좋아합니다. 

때로는 경기가 너무 격렬하여 잔인한 느낌도 있지마는 선수들이 투지에 넘치는 격투 장면은 큰 감동을 줍니다. 그런데 격투기 중계를 보면 두 선수가 일정한 거리를 두고 서로 탐색하는 경우가 있습니다. 두 선수 간의 거리가 서로 주먹을 뻗어 주먹이 겨우 닿을 정도의 거리를 두고 잽으로 거리를 재며 공격의 기회를 노리는 것입니다. 

그러다가 기회가 생겼다 하면 번개 같이 접근하여 주먹을 날리곤 빠져나옵니다. 

보기는 쉬워 보이나 일반인이 실제로 가능할까 싶을 정도의 순발력입니다. 어릴 적에 친구들끼리 주먹다짐을 할 때(그러면 안 되는 것이지만)를 기억해보면 서로 멱살을 잡을 수 있을 정도로 가까운 거리에서 서로 아웅다웅하던 모습이 생각납니다. 그런데 서로 주먹을 뻗어 닫지도 않는 거리에서 어떻게 그렇게 자유자재로 공격을 하고 후퇴를 하며 상대의 공격을 좌우로 비켜가며 경기를 할 수 있을까요?


축구경기를 봐도 그렇습니다. 좋은 공격수나 수비수는 시야가 넓고 행동반경이 크다고 합니다. 아무도 없는 곳에 공이 떨어지는가 싶은데 어디선가 번개같이 나타나 볼을 받아 공격을 하거나 수비를 합니다.  

    

디자인 진행도 이와 마찬가지로 전후좌우 스텝을 원활하게 밟아가며 진행하는 것이 매우 중요합니다. 아니 디자인 진행의 가장 중요한 능력입니다.     



좌우 스텝이란?

디자인 진행에서의 좌우 스텝은 창의력과 현실성의 균형을 의미합니다. 

디자인은 현실화를 기반으로 창의적 결과를 만들어 내는 것이기 때문에 디자인 진행과정 속에 치밀하며 냉철한 현실의 이해를 위한 단계와 미친 듯이 창의력을 발휘하는 단계가 필요합니다. 

이 극단적으로 다른 단계를 잘 오가는 것을 좌우 스텝 밟기라고 합니다.     


전후 스텝이란?

전후 스텝이란 진도를 나아가는 것(전진 스텝)과 때로는 뒤로 돌아가서 자신이 가는 방향이 맞는지를 확인하는 것(후진 스텝)입니다. 

디자인 진행은 경우에 따라 짧게는 1개월부터 길게는 몇 년이 소요되는 경우도 있습니다. 이러한 긴 여정을 가자면 때로는 길을 잘못 들기도 하고 머뭇거리며 나가지 못할 때도 있습니다. 

전후 스텝을 잘 밟는다는 것은 진도를 나아갈 때 추진력 있게 잘 나아가고 경우에 따라서는 다시 뒤로 돌아가 전체적인 방향을 점검하는 것을 의미합니다.      



1. 좌우 스텝 밟기 – 현실화와 창의

언젠가 일본 도요타자동차의 콘셉트 디자인센터장의 강연을 들은 적이 있습니다. 

당시 미국 동부에 소재하는 콘셉트카 디자인센터는 그야말로 꿈의 일터였습니다. 엄청나게 넓은 디자인 스튜디오가 있고 그 스튜디오의 한 면은 전체가 유리인데 그밖에는 디자이너가 참고하는 실제 자동차들이 있었습니다. 

디자이너는 자신이 참고할 자동차를 요구하면 바로 자신의 자리에서 보이는 곳에 참고할 자동차를 가져다가 줍니다. 디자이너는 자신의 책상에서 이를 참고하며 일을 하고 있었습니다. 

그 외에도 각종 첨단 및 편의 시설은 그저 보는 것만으로도 부러울 뿐이었습니다. 


강연 중에 그는 왜 양산도 하지 않는 콘셉트 자동차를 최고의 디자이너와 최고의 환경에서 그 많은 예산을 들여가며 만드는지 아냐고 물었습니다. 그는 손바닥을 쭉 펴고 엄지손가락을 짚으며 “이것이 양산 자동차입니다.” 그리고는 새끼손가락을 짚으며 “이것이 콘셉트 자동차입니다.” 마지막으로 중지를 짚으며 “콘셉트 자동차는 이것(중지)을 만들기 위하여 만드는 것입니다”라고 하였습니다. 참으로 간단하고 명료한 설명이었습니다.



만일 중지까지밖에 생각하지 못하는 사람이면 검지가 양산 자동차가 될 것입니다. 그러나 약지까지 생각할 수 있는 사람은 중지에 해당하는 양산차를 만들 수 있을 것이라는 설명이었습니다. 콘셉트 자동차는 현재의 양산차를 보다 새롭게 발전시키기 위한 것이기에 가능한 독창적이며 창의적으로 만드는 것이었습니다.      

        




이와 같이 디자인을 진행하는 것은 위의 그림과 같이 창의와 현실이라는 돌이 놓여있는 징검다리를 건너는 것과 같습니다. 이 징검다리에 놓여있는 돌들이 디자인 프로세스 상의 주요한 이벤트들이겠지요. 돌 하나하나 건너뛰며 앞으로 나아가 강을 건너면 되는 것입니다. 

그런데 디자인이라는 강을 건너는 징검다리의 돌들은 조금 독특하게 놓여있습니다. 디자인은 차가운 냉철한 치밀한 논리적 이성과 뜨거운 미친듯한 폭발적인 감성적 창의라는 돌들이 번갈아 놓여있는 징검다리를 건너는 것과 같습니다. 


디자인은 어느 단계에서는 시장의 성장이나 사용하는 소비자의 인구통계학적 자료나 생산을 위한 엄격한 조건과 같이 매우 합리적이거나 논리적 객관적 자료를 다루어야 하는 단계가 있습니다. 한편으로는 미친듯한 창의력과 시인 같은 감수성을 폭발시켜야 하는 단계도 있습니다.      


따라서 디자인의 진행은 이 서로 극단적으로 다른 성격의 돌들을 밟으며 지날 때마다 얼마나 충실하게 그 단계의 상태가 되느냐가 중요합니다. 

창의적이어야 할 때는 미친 듯이 창의성을 발휘해야지 아냐 이건 안 될 거야 등의  생각은 도움이 되지 못합니다. 반대로 데이터를 치밀하게 수집하고 정교하게 분석해야 하는 시기에는 대충대충 하는 것이 아니라 엄밀한 방법에 의하여 냉철하게 분석하여 그 안에 숨어있는 쓸모 있는 정보를 추출해내야 합니다. 


디자이너가 이런 숫자 분석 따위는 필요 없다고 생각하거나 혹은 논리적이며 객관적 자세는 디자인 창의력에 방해가 된다고 생각하는 것은 크게 잘못된 생각입니다. 디자인은 논리와 창의 2가지를 번갈아 사용해야 하기 때문입니다.      


이와 같이 좋은 디자인이 나오기 위해서는 이 논리와 창의의 양극단을 가능한 끝까지 치닫고자 하는 자세가 정말로 중요합니다.      



2. 전후 스탭 밟기

다음으로는 전후 스텝입니다. 

전진 스텝은 밀고 나아가는 것을 의미합니다. 그리고 백스텝은 그 자리에서 오히려 뒤로 돌아가 일이 원하는 방향으로 전개되고 있는 건지 빼놓고 고려 못한 것이 있는 것인지를 검토하는 것입니다.      



전진 스텝이란

전진 스텝을 잘 밟지 못하여 생기는 전형적인 현상은 디자인 일정의 70% 이상을 조사나 콘셉트를 잡는데 써버리고 나머지 시간에 부랴부랴 디자인 형태를 찾는 경우입니다. 초기에 리서치와 방향을 잡는데 너무 많은 시간을 써버려 정작 디자인을 할 시간이 모자라는 것입니다. 

학생이나 디자인 초보는 디자인은 창의력이 중요하다고 생각하여 새로운 생각을 해내는데 거의 온 힘을 쏟아 붓기에 많은 시간과 에너지를 사용하게 됩니다. 


그러나 디자인 결과는 무형적 사고가 아닌 유형적 사물입니다. 

새로운 생각과 아이디어 콘셉트 등은 새로운 디자인 결과물을 위하여 존재하는 것이지 사고 그 자체를 위한 것이 아닙니다. 따라서 자꾸 앞으로 전진 전진하여 디자인 결과물을 내려고 하는 태도가 중요합니다. 

어떻게 하면 좋을까 하고 계속 궁리만 하고 있다면 좋은 결과를 낼 수가 없게 될 것입니다. 


이는 마치 호수에 동전이 빠졌는데 음 어떻게 하면 동전을 건질 수 있을까? 깊이는 얼마나 될까? 유속은? 물의 온도는? 등을 고민하며 내내 서서 동전을 꺼내지는 못하고 궁리만 하고 있는 것과 같습니다.     


반대로 전진 스텝을 너무 밟는 경우는 디자인 단계별로 꼭 확인하고 나가야 할 것들을 간과하고 무조건 서둘러 결과를 내려고 하는 경우입니다. “조명 디자인? 오 그래 내가 멋지게 해 주지”하고 성급하게 생각이 스치는? 것을 바로 완성작으로 만들어버리는 경우입니다. 

이 경우는 이미 있는 다른 디자인과 유사한 것을 만들어 내거나 디테일이 치밀하지 못하거나 안전에 대한 배려가 부족해지거나 나중에 전구 등을 교체할 때에 대한 배려가 부족해지거나 등의 문제가 틀림없이 드러나게 됩니다. 


디자인이 개념의 형상화이지만 개념을 정확하게 그리고 이제까지 없었던 새로운 그리고 완성도 높은 결과이어야 한다는 것을 잊고 있기에 생기는 현상입니다.      



후진 스텝이란

후진 스텝은 전체를 관망하는 태도를 가지는 것 혹은 객관적으로 현상을 분석하는 것을 의미합니다.


고등학생 때 화실에서 뎃상을 하면 잘 안 되는 때가 있습니다. 계속해서 그리고는 있지만 뭐가 잘 못 되었는지 답답하기 이를 데 없고 아닌 것 같고 할 때가 있습니다. 

이럴 때에는 어김없이 화실 선생님이 “야! 너 뒤에 가서 봐!”하십니다. 그러면 석고상의 머리에 라면을 볶아놓거나 눈에 다크서클이 심하게 그려져 있는 그림을 발견하곤 했었습니다. 


산을 올라갈 때에도 무턱대고 눈앞에 보이는 길을 따라 올라가다 보면 먼 길을 돌아가게 되거나 심지어 길을 잃는 경우도 생깁니다. 

항상 산 전체의 모습과 현재 방향이나 위치를 같이 생각해야 길도 잃지 않고 체력도 안배할 수 있으며, 앞의 함한 길에 마음의 대비도 할 수 있습니다.     


학생 때 공모전을 하게 되면, 자신의 작품은 틀림없이 대상감이라는 생각이 듭니다. 너무나 자랑스럽고 멋지고 완벽하여 “내 작품에 대상을 주지 않으면 이건 뭔가 문제가 있는 것이다.”라는 생각도 듭니다. 

그리고 같이 작품을 하고 있는 다른 학생의 작품을 보면 문제투성이에 완성도도 떨어져 보입니다. 그래서 친구에게 조언하다가 말싸움하는 경우도 있습니다. 

중요한 것은 친구의 입장에서 본다면 나의 작품도 내가 친구의 작품을 보듯이 문제투성이로 보일 수 가있을 것입니다. 

이것은 눈에 뭐가 씌었다고 하듯이 자신의 작품에서 자신이 보고 싶은 것만 보기 때문입니다.    

  

디자인 진행도 하다 보면 내가 지금 무엇이 잘못되었는지 모르겠는데 뭔가 갑갑하고 답이 잘 안 나오는 경우가 있습니다. 

이 경우는 더 진도를 나가려 하지 말고 그 자리에서 멈추어 뒤로 돌아가서 전체를 보아야 합니다. 

프로젝트의 목표가 무엇이었는지 그리고 지금 내가 하고 있는 일이 그 전체 중에 어디에 해당하는지 지금 하는 이 일이 전체의 결과에 얼마나 비중이 있는 것인지 등을 살펴보면 실마리가 풀리는 경우가 있습니다. 


반대로 지나친 백스텝은 진도를 나가지 못하고 자꾸 제자리에 맴돌게 하기도 합니다.     



3. 스텝을 옮길 때

지금까지의 설명을 듣고 아! 그렇구나 하고 이해하여도 실제로 디자인을 진행하다 보면 이 사실을 자주 잊어버리게 됩니다. 잊어버린다고 하는 것은 자신이 현재 창의성이 필요한 상태인지 논리적 객관적 태도가 필요한지 판단이 안 선다는 의미가 아닙니다. 

머리로는 알면서도 몸이 그 상태가 되지 않는다는 뜻입니다. 


즉 미친 듯이 창의력을 폭발시켜야 하는 상태인데 몸은 차가운 상태가 되어있는 상태입니다. 

이때의 증세는 ‘음... 왜 나는 새로운 생각이 안 나지? 음 이제까지의 조건이나 방향이 잘못됐을 리는 없는데 이렇게 해야 하나? 저렇게 해야 하나?’하고 머리로 궁리하고 있는 상태입니다. 새로운 것이 잘 안 나옵니다.

 

반대로 데이터들을 눈앞에 쌓아놓고 눈이 데이터를 정교하게 추적하고 있지 못하고 눈이 종이 위를 빙빙 맴도는 느낌이 날 때가 바로 그런 상태입니다.      


이렇게 되는 이유는 시장조사 등을 위하여 논리적이며 객관적이고 차가운 머리로 데이터 등을 분석하고 정보를 종합하는 일을 한동안 하다 보면 그러한 태도에 관성이 생겨 다음의 창의적 단계로 넘어가도 쉽게 정서가 흥기 되어 감성을 끌어올리는 상태가 되지 않기 때문입니다. 


또 새로운 정서에 넘쳐 흥기 되어 이런저런 생각을 막하는 단계에 한동안 빠져있다 보면 작고 빡빡하게 잔뜩 적혀있는 데이터를 심도 있게 분석하는 것이 쉽게 되지 않습니다.      


따라서 필요에 따라 전후좌우 스텝을 밟으려면 몸을 그 상태에 맞추어 변경해야 할 필요가 있습니다. 


저는 창의력을 필요로 할 때는 우선 청소나 정리를 깨끗하게 하고 가벼운 음악을 들으며 서성거리거나 가능한 마음을 가볍게 하려고 노력합니다. 

반대로 차가운 논리가 필요한 경우에는 마찬가지로 청소나 정리를 한 후에 스탠드 같은 국부조명을 켜고 녹차를 마시며 마음을 차분하게 가라앉히고 할 일을 차분하게 정리한 후에 일을 시작합니다. 


그리고 뭔가 진도가 잘 나가 않으면 마찬가지로 청소나 정리를 한 후에 마음을 가라앉히고 앞으로 나가려 하지 않고 뒤로 뒤로 빠져 원래의 목표가 무엇이었는지 지금 내가 왜 이 일을 하고 있는지 관조하는 마음으로 쳐다봅니다. 

그리고 할 일이 명확한데 머뭇거리고 있을 때나 어떻게 해야 할지 모르겠을 때는 역시 청소나 정리를 한 후에 아무 생각 없이 일단 진도를 쭈욱 빼봅니다. 


여기에서의 공통점은 일단 청소나 정리를 하는 것입니다. 이 청소나 정리가 저에게는 일종의 이제까지의 관성에 의하여 지속된 상태(좌측으로 가는 중이던 우측으로 가는 중이던)를 일단 멈추게 하는 장치입니다. 그다음에 가야 하는 상태로 마음을 작동시키거나 머리를 작동시켜 방향을 바꿉니다.     


 

디자인 진행은 이렇듯 좌우 전후의 스텝을 유연하게 밟으며 앞으로 나아가는 것과 같습니다. 


논리와 객관의 세계로 가는 좌측 스텝만 밟으면 딱딱해지고 창의의 세계로 가는 우측 스텝만 밟으면 허구해지고 전진 스텝만 밟으면 조급하고 부실해지며 백스텝만 밟으면 우유부단해집니다. 

전후좌우 스탭을 필요에 따라 가볍게 밟아가며 전체적으로는 목표를 향해 다가가는 능력을 갖추는 것이야말로 진정한 프로가 되기 위한 조건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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