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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박영목 Mar 30. 2019

디자인전공 학생의 한계 :
끝을 모른다

제4장 디자인진행요령(일반)_02

학생들의 디자인 프로젝트를 지도하다 보면 가장 힘든 것이 있습니다. 

학생이 생각하는 디자인의 끝과 교수가 생각하는 끝이 다르다는 것입니다. 학생들은 보통 1학기 15주의 일정이 주어지면 10주 가까이 조사를 하고 콘셉트를 정합니다. 

그리고 스케치를 몇 장해 보고, 렌더링을 하거나 목업을 만들고 디자인이 완성되었다고 합니다. 

그러나 프로의 세계에서는 그 단계부터 비로써 디자인이 시작됩니다.      


처음에 회사에 입사했을 때의 일입니다. 당시에 저는 냉장고, 세탁기, 에어컨, 진공청소기 등을 담당하는 가전그룹에 배속되었습니다. 저는 일단 첫 프로젝트로 에어클리너의 부분변경 디자인을 맡게 되었습니다. 

그런데 대리님이 새로운 디자인을 시키는 것이 아니라 이미 있는 기존의 완제품들의 도면을 그리라고 하시는 것이었습니다. 

처음에는 새롭게 디자인을 하는 일이 아니라 흥미가 없었는데, 도면을 그리다 보니 이제까지 보이지 않았던 새로운 세계가 보이기 시작했습니다. 전에는 보이지 않았던 디테일 들이 보이는 것이었습니다. 전에 보던 세계는 큰 외곽과 특징만 보였다면 실물을 옆에 놓고 측정해가면 똑 같이 도면을 그리면서 보이는 세계는 1mm 이하의 세계가 보이는 것이었습니다. 

그 다음에 본격적으로 디자인을 시작하게 되었을 때는 자연스럽게 그 이전과는 달리 아주 세밀한 디테일까지 신경 쓰며 진행하게 되었습니다.     



이 책을 읽고 있는 여러분도 지금 책을 잠시 내려놓고 자신의 주변에 있는 사물들을 멀리서 보지 말고 아주 가까이서 살펴보기 바랍니다. 

의자이건 조명이건 노트북이건 상관없습니다. 

가까이서 찬찬히 살펴보면 제가 경험했던 것과 마찬가지로 이제까지 보이지 않던 세계가 보일 것입니다. 


그 작은 디테일한 형태들, 그 작은 색상, 명도, 채도, 재료의 질감 등의 차이를 만들어 내기 위하여 디자이너는 기본 디자인의 틀이나 형태가 완성된 이후에도 수백 장의 그림을 그리고 수십 개의 샘플을 만들고 제품에 인쇄되어있는 로고나 그래픽 하나를 완성시키기 위하여 수십수백 개의 그래픽 형식, 위치와 크기 색상 등을 검토합니다.


이런 프로의 입장에서 보면 학생작품들은 아직 디자인이 시작되지 않은 상태로 보일 것입니다.    

 

저는 처음에는 학생들이 나태하고 게을러서 디자인을 끝까지 진행하지 않는다고 생각했었습니다. 그래서 학기 초반부터 일정이나 진도를 강하게 밀어붙여 본 적도 있습니다. 

그러나 그럴 때마다 실패하여 상실하곤 하였었습니다. 조금 나아지는 정도가 끝내는 일정이 조금 빨라질 뿐이지 디자인의 완성도가 높아지는 것은 아니었습니다.


최근에 깨닫게 된 것은 학생들이 나태한 것이 아니라 자신들이 완성이라고 생각하는 그 뒤에 아직 가야 할 길이 많이 남아있다는 것을 알지 못한다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제가 처음에 회사에 입사하여 몇 개의 완제품을 복기한 후에야 어렴풋이 알게 된 것을 경험해보지 못한 학생들이 알 리가 없던 것이었습니다.  

   

따라서 디자인을 배우거나 초보인 디자이너들은 디자인 프로젝트를 처음부터 시작하는 것이 아니라 우선 디자인 과정의 뒤를 가보는 것이 큰 도움이 될 것입니다. 

자신이 디자인하고자 하는 디자인 대상물과 같은 완성된 제품 등을 선정하여(예를 들어 가구를 디자인한다면 이미 생산된 가구) 아주 작은 형태를 꼼꼼히 놓치지 말고 그대로 3D Modeling을 해본다거나, 완성된 제품의 색상이나 그래픽이나 질감이나 패턴 등을 바꾸며 달라지는 전체의 이미지를 경험해본다거나 하는 것은 너무나도 좋은 훈련이 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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