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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Hyoni Feb 20. 2022

박 팀원은 어쩌다 박 팀장이 되었을까

또각또각 걸으면 소리 나는 구두에 세련된 정장, 단발머리를 찰랑이며 한 손에는 노트북, 한 손에는 핸드폰을 들고 ‘나 잘나가요’ 향을 풍기는 임원, 수억 혹은 수십억대 연봉자.
 드라마에서 나오는 능력 있는 회사원들처럼, 박 인턴은 성공적인 커리어우먼이 되리라 부푼 꿈을 가득 안고 사회생활을 시작했다.


새침데기 같은 첫인상과는 달리 그녀는 보기보다 남들 앞에 나서는 것, 큰 목소리를 내는 것을 꽤나 좋아했고 학창시절 내내 반장 선거에 나갔다. 투표용지에서 본인의 이름이 하나씩 나올 때면 가슴이 쿵쾅거렸다. 수업시간마다 “차렷, 경례!” 를 외치며 숙제를 모으고 정리해 교무실에 제출하는 일 외에도 교실 청소, 환경미화, 축제 준비, 스승의 날이나 담임 선생님의 생일 파티 이벤트를 챙기는 일까지 본인이 나서서 무언가를 하면 칭찬과 인정이 되돌아왔다. 어린 시절부터 남들에게 칭찬받는 맛, 인정받는 맛에 일찍이 눈 그녀는 칭찬과 인정을 획득하는 방법 중 하나로 ‘장’의 자리를 맡는 것이 자랑스럽고 좋았다. 


박 인턴이 박 사원이 되어 맞닥뜨린 사회생활은 녹록치 않았다. 더 이상 학창시절처럼 그녀를 칭찬하고 인정하는 선생님도, 학부모도, 학우들도 없었다. 사회는 나와 비슷한 또래의 고만고만한 경험을 가진 사람들하고만 경쟁할 수 있는 곳이 아니었다. 단순히 일 뿐만이 아니었다. 훨씬 경험이 많고 노하우가 쌓인 베테랑들에게 언제든 잡아 먹혀도 이상하지 않은 ‘회사, 시장’이라는 레드오션에서 살아남아 다시 인정의 맛을 보겠다고 부단히 애를 썼다. 


그렇게 아등바등 애쓰는 동안 장이 되고, 임원이 되고, 리더가 되겠다던 입사 시절의 야심찬 꿈은 잊혀졌다. 게다가 팀원으로 보낸 지난 세월 동안, ‘팀장’, ‘관리자’라는 자리에 대한 주변의 마음가짐과 인식도 참 많이 바뀌어 있었다. 전에는 백이면 백 팀장이 되고 임원이 되겠다 꿈을 품고 일하던 직원들이 이제는 팀장을 ‘줘도 굳이 하고싶지 않은 보직’ 쯤으로 이야기하는 경우가 늘었다. 급여 인상의 기쁨은 금새 잊혀지고 사람 관리의 고통이 찾아온다나 뭐라나.

“팀장들 일 하는거 보면 굳이… 팀장이 되고 싶다는 생각은 안 들어요.”

“회사에만 충성해서 얻는 게 뭔가요? 저는 제 삶이 더 중요해요. 그냥 딱 이정도로 일하고 사람 스트레스 받고 싶지 않아요.”


사실 박 팀원에게 일은 단순히 돈을 버는 수단, 나의 노동력과 시간을 돈과 교환하는 행위만은 아니었다. 삶에서 그녀의 존재감을 확장하고, 인정받고, 성취의 기쁨을 얻기 위한 과정이었다.
하지만 그런 박 팀원에게도 눈뜨면 회사에 출근하기가 병원가기보다 더 싫던 나날이 많이 있었다. 여러 이해관계자들과 싸우면서 얼굴을 붉히고 욕먹을 때, 상사에게 자존심 상하는 모욕적인 말을 들을 때면 이 일이 나와 맞지않나. 일을 때려치워야 하는 건가 고민했다. 


무척 다행히도, 이런 어려운 시기마다 마법처럼 나타난 귀인들은 박 팀원에게 이렇게 말했다. 
 “너는 훌륭한 여성 리더가 될 거야.”
 “여성리더들을 위한 리더십 개발 프로그램에 한 번 참여해보면 어때?”
 “네가 팀장이라고 생각하고 팀장에게 오는 이메일들에 먼저 답을 써보고 팀장의 일을 해봐. 그러면 어느새 네가 그 팀장 자리에 있을걸?”

당시 일반 팀원이었음에도 기라성 같은 경력의 여성 리더들과 함께 배움의 기회를 가져보라고 격려해 준 A님과 참여의 기회를 준 B 코치님,
나이, 성별, 근무 연한과 관계없이 역량을 발휘할 기회에 대해 상상할 수 있게 해준 C대표님 외에도 수많은 귀인들의 한마디 한마디가 박 팀원을 ‘장’의 자리로 이끌었다. 


‘보스의 탄생’이라는 책에서는 관리자가 된다는 것에 대해 이렇게 말한다. ‘우리가 자립하고 결혼하고 은퇴하는 등의 일처럼, 관리자가 된다는 것은 삶의 전환과정이다. 책임은 항상 권한을 초과하며, 그럼에도 유능한 관리자들은 책임을 다할 수 있는 방법을 찾는다’고.


내 일, 내 업무의 성과에서 벗어나 팀원들의 업무와 팀원들의 능력을 개발해야 된다는 책임은 분명 가볍지 않다. 하지만 그만큼 직원들이 삶의 대부분의 시간을 보내는 직장에서, 업무를 통해 직원들의 삶에 긍정적인 영향을 줄 수 있다는 데서 오는 만족감은 그보다 더 클 것이다.



당신의 한 마디가 또다른 박 팀원을 박 팀장으로 만들 수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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