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꾸로 가는 남자’ 라는 프랑스 영화를 봤다.
소문난 바람둥이인 주인공은 언제나 자신만만하게 야한 농담을 던지며 여자들을 유혹하고 업무에 있어서도 마찬가지였다. 그러던 어느 날 우연히 길을 걷다 표지판에 부딪히는 사고를 겪고, 이후 현재의 성역할이 완전히 뒤바뀐, 여성들이 사회적으로 남성적 권력을 가지고 있는 세상을 만난다. 그리고 예전 남성중심의 사회에서 남성으로 생활할 때는 느낄 수 없던 상황들을 맞닥들이게 된다.
그 사회에서 남자 주인공은 좋아하는 여성의 마음에 들기 위해 가슴털을 미용해야 하며, 직장에서는 여성 상사가 멋진 스포츠카에서 내리며 남자주인공의 짐을 들어주겠다고 한다. “이리 줘요. 예쁜 허리 다치겠어요” 라는 말과 함께.
여자 주인공이 남자 주인공에게 시계 선물을 하고 싶다고 고르라고 하자, 남자 주인공은 원래 세계에서의 남성스타일의 시계를 고른다. 여주인공은 그 순간 아주 의아해하며 현재 우리 세계에서의 여성적인 스타일의 시계를 권유하면서 “그건 남성스러운 게 아닌데… 좀 더 남성스러운 걸 고르는 게 어때?” 라고 말하기도 한다.
성역할에 대한 고정관념, 성차별에 대해 내가 저 입장이었더라면… 이라고 반대로 생각해보자는 메시지를 “너희도 똑같이 경험해보니 어때?” 로 유쾌하고 유머러스하게 풀어내 꽤 재미있었다.
영화를 보며 한 사자성어가 떠올랐다.
“역지사지 (易地思之)“ , 다른 사람의 처지에서 생각하라는 뜻의 한자성어다.
역지사지의 마음으로 다른 사람을 배려하고 이해하라는 ‘말’은 참 쉽다. 마음도 먹어본다. 하지만 진심으로 끄덕이게 되는 역지사지를 실천하기가 어디 쉬울까?
팀장이 되어 새로운 팀원들을 맡고, 팀원들에게 새로운 역할을 맡기다 보면 답답함을 느끼고 싫은 소리도 하고싶지 않은 날이 온다.
‘아, 차라리 A에게 준 저 일, 내가 해버릴까?’
앞에서는 궁금한 것은 언제든 질문하라고 했지만 속에서는 ‘하나부터 열까지, 본인이 한번만 더 고민해보고, 검색이라도 해보고 물어봤으면 좋겠는데 정말 왜 이렇게밖에 못할까?’ 하고 답답해 하는 날도 온다.
최근, 작지만 나름의 깨달음을 준 역지사지 에피소드가 있었다.
일 년여 전 들었던 부동산 정규 강의를 한 달간 매주 하루, 일일 스탭으로 참여하고 들을 수 있는 기회가 생겼다. 부동산 공부를 열심히 해야겠다 작년부터 마음먹으며 부린이를 막 탈출해가는 상황이라 ‘잘 해봐야지! 강사분에게도 꼭 도움이 되어야지!’ 라는 신입사원의 마음, 인사팀 막내시절 교육장을 준비하던 설레는 마음으로 첫 강의 전날밤을 잠 못 이루며 뒤척였다.
스탭은 나 외에도 한 명이 더 있었고, 주말 중에 온전히 하루가 다 필요한 오전 9시부터 저녁 9시까지 이어지는 교육 일정이었는데 강사분이 이렇게 해달라 저렇게 해달라, 이게 필요하다 저게 필요하다 하는 이야기를 들으면서 문득 우리 팀 막내가 떠올랐다.
교육 장소도 커리큘럼도 교육내용도 모두 생경한 것이라 마이크 하나, 장비 하나가 작은 문제가 생겨도 땀을 뻘뻘 흘리게 되고 수강생들이 문의를 주어도 내가 바로 대답할 수 있는 것이 없었다. 물론 첫 날이기도 했고, 찰나처럼 지나간 하루였지만 주로 지시하던 입장에서 지시 받는 입장으로, 앞 일을 예측하고 어느정도 일을 조율하고 조절할 수 있던 상황에서 아무 정보도 사전 지식도 없는 한치 앞도 내다볼 줄 모르는 낯선 환경으로 입장이 바뀌고 나니 더욱 막내의 입장이 이해됬다.
‘막내도 이런 마음이었겠구나. 혹시라도 내 표정이나 말투에서 묻어난 속마음에 상처를 받았으면 어쩌나. ’
회사에서의 ‘팀장’ 뱃지를 떼고, 내 경력분야가 아닌 곳으로 가 manager 가 아닌 staff의 입장이 되어보니 모든 것이 새롭고 낯설었다.
가끔, 팀원들의 마음이나 태도가 잘 이해되지 않는 때면 새로운 영역에 새로운 도전을 통해 그들의 마음을 이해해보는 ‘역지사지’를 실천해 보는건 어떨까.
*역지사지를 구글링하니 재미있는 해석이 나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