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런 날이 있다. 깨똑 친구들 리스트를 손가락으로 스윽스윽 내려 보다가, 내 의도와는 관계없이 과거의 나와 함께했지만 지금은 소원해진 Ex-친구, Ex-동료, Ex-상사, Ex-고객 들의 근황을 알아버리게 되는 날.
그날도 생각없이 그녀는 핸드폰에서 모바일 메시지 어플 속 지인들의 근황을 이리저리 둘러보다가, 자주는 떠올리고 싶지 않은 첫 직장, 첫 상사의 이름을 마주쳤다.
체대, 학군단, 제약영업 출신의 그는 눈치가 빠르고 말을 뺀질나게 잘 했다. 특히 윗사람들과의 커뮤니케이션 스킬이 좋아 사업부가 전체 회식을 하는 날이면 임원들이 그 팀장 앞에서 깔깔 껄껄 배꼽잡고 웃기 바빴다. 주변에서는 그를 평가할 때 일에 있어 전략적, 논리적이거나 성실한 스타일이라 탁월한 실적을 보이고 능력있다 라기 보다는 운이 좋았다, 윗사람들 비위를 잘 맞추고 본인 포장을 잘 했다라는 이야기가 많았다.
23살의 그녀는 대학생이라면 한 번쯤 다 한다는 휴학도, 어학연수도 따로 하지 않은 대학시절을 보냈다. 빨리 사회에 나가 진짜 어른이 되고픈 마음이 컸다. 4학년 여름방학 동안 몰아쳐 취업 준비를 했고, 인턴으로 처음 입사를 하게 되었다. 누구보다 정직원 전환에 대한 간절함 또한 남달랐고 인턴평가에서 1.2등을 앞다투며 약속된 계약기간 보다 2개월 빨리 정직원이 되었다.
팀장인 ‘그’와 팀원인 ‘그녀’는 그렇게 만나게 된다.
다시 한 번 말하지만 그는 눈치가 빨랐다. 지금 교육중인 인턴들을 각 팀에 배치하게 될 거라는 정보를 듣자마자, 기존에 우호적인 관계를 맺고 있던 인사팀장 이나 인턴 교육에 참여한 교육자들, 임원들을 통해 평가 1,2등을 파악하여 밑 작업을 진행했다. 결국 우수인턴을 모두 본인 팀으로 배정받는 것으로 약속 받았다.
“팀장님은 좋으시겠어요~ 야무진 애들을 다 데려갔네!”
하지만 6개월이 지나고 1년이 지나자 신입직원을 1인분을 온전히 다 하는 ‘직원’ 만들기가 생각보다 쉽지 않다는 것을 다시 한 번 깨닫는다. 실제로 그는 팀원의 성장에는 크게 관심이 없었다. 팀이 만들어야 되는 성과, 실적, 그리고 그 결과가 나오지 않았을 때 팀원을 조지는 방법밖에 몰랐다.
“야, 니들 어제 밤샜냐?? 보여주기 식 일만 해서 뭐하냐~”
“야, 넌 도대체 뭐가 부족해서 안 되는거야.”
그러는 동안 인턴 평가에서 1,2등을 하던 그녀와 그녀의 동료는 영업부 직원이 되어 뒤에서 1,2등을 하고 있었다. 그녀는 옆 팀에서 다른 동기가 팀장님, 팀원들과 함께 책을 읽고 외부 강의를 들으러 다니는 것도, 애정 어린 피드백을 받는 것을 보며 부럽고 억울했다.
‘나도 잘 할 수 있는데… 잘 하는 방법을 누가 조금만 가르쳐 줬으면…’
사무실은 강남, 주거래처는 인천에 있었다. 아침에 삼성동에 출근했다가 뚜벅이로 짐과 노트북을 바리바리 들고 대중교통을 이용하며 거래처를 향해 가다가도 어느 날 갑자기 그가 화난 목소리로 ‘집합’을 외치면 터덜터덜 사무실로 다시 돌아와야 했다.
그녀는 수많은 날을 고민하다 용기 내어 옆 팀 동기에게 부탁했다. 나도 그 팀에서 하는 회의, 스터디에 그 팀장님과 팀원들이 하는 모습을 한 번만 제대로 보고 싶다고 말했다. 기회는 주어졌지만 그래봐야 이제 1년차 신입사원이 듣고 한 번에 따라갈 수 있는 수준은 아니었다.
(다음 화에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