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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Hyoni Mar 12. 2022

뒷통수날리기 (下)


 그녀는 한참을 방황했다. 아무리 계단식으로 성장한다지만 일도 실력도 일년 넘게 제자리였다. 전자레인지에 한참 돌려 축 늘어진 인절미처럼 어느 날은 집에, 어느 날은 거래처 앞 룸까페에서 죽치고 누워있는 날이 늘었다. 팀장은 무섭기만 하고 세상은 더 무서웠다.


 그 사이 옆 팀 리더십 빵빵한 팀장님의 가르침에 따라 스펀지처럼 지식과 스킬을 쭉쭉 흡수하며 승승장구한, 잘나가는 ‘스타 동기’가 탄생했다. 그 동기는 사업부 전 직원 앞에 나가 발표를 하는 성공사례가 되어있었다. 그녀는 씁쓸한 미소를 애써 숨기며 동기를 축하해야했다. 그녀의 마음 속 자리잡은 검은 옹이구멍은 그렇게 몇 년간 깊어지고, 넓어지고 있었다.


 에이스라고 뽑아온 두 신입의 성과가 시원찮았던 그는 관계사에서 새로운 경력직들을 팀에 영입했다. 그 중 셈이 빠르고 친화력이 뛰어난, 그와 나이차이가 많이 나지 않는 여직원 ‘송’이 있었다. ‘송’은 오자마자 본인에게 유리한 좋은 영업 밭, 고객을 골라 그와 협상을 시작했다. 떨어진 팀 순위, 팀 성과를 맞추는게 우선이었던 그는 경험 많은 ‘송’을 밀어주기로 결심했다. 곧 나머지 직원들을 불러 이야기를 시작했다. 송에게 유리한 동선의 영업 밭을 주려면 이 팀원과 저 팀원, 그리고 그녀의 밭도 뺏어 주어야했다.


 헌데 생각보다 순순히 이야기가 잘 진행되지 않았다. ‘꼴찌의 자존심인가. 차 없이 뚜벅이로 영업을 다니면서 뭔 고집으로 그렇게 그 밭, 그 고객을 쥐고 가겠다고 하는지.’ 그녀는 계속 자신의 밭을 지키겠다 말했고 그런 그녀에게 그는 왕펀치를 날린다.


 “야, 넌 잘 하지도 못하면서 뭘 그렇게 고집을 부려? 너 그래봐야 이제 20대 초중반이야. 내가 봤을 때 이 일이랑 너가 잘 안 맞는 것 같은데 다른 일을 찾지 그래? 나 같으면 그냥 빨리 다른 일 찾아 보겠어.”


 그녀는 울컥 서러움과 분노가 올라와 얼굴이 초고추장만치 시뻘개졌다. 터져나오려는 눈물을 꾹꾹 눌러가며 잘 할 수 있다. 열심히 해보겠다 기회를 달라 말했다. 아쉽게도 ‘어떻게 해야 잘 할 수 있는지 좀 가르쳐주시면 안되요?? 그게 팀장의 의무 아닙니까!?’ 라고 따지지는 못했다.

 그날의 그녀는 '더이상 인절미처럼 늘어져 있을 때가 아니야. 앞으로 돌처럼 단단해질테야.' 다짐하고 또 다짐한다.

‘당신의 도움 없이도 어떻게든 내가 성과를 만들고 말겠어. 한 방 날려버리고 말거야!’



 같은 계절이 두 번쯤 지났을까. 그는 사내공모 및 사내 네트워크를 통해 이제까지 하던 일을 접고 새로운 일을 위해 관계사로 자리를 옮기게 된다.

 그가 떠날 때가 되서야 그녀는 기지개를 켰다. 변치 않을 인생 첫 팀장님인 그와는 지독히도 케미가 안 맞았다. 그래도 버텼다. 그녀는 그가 떠날즈음 서서히 자리를 잡아가기 시작해 큰 규모의 제품 주문, 서비스 계약을 하나 둘 성사시켰고 아래등수에서 벗어났다. 그리고 새로운 팀장을 만나 날개를 달았다.


 또 한번 같은 계절이 지나 그녀는 인사팀에서 일을 하고 있었다. 사내공모를 통해 내근직에 지원했고, 그녀를 유심히 보던 인사팀장은 그녀에게 인사팀에서 일해보지 않겠냐며 손 내밀었다. 어느덧 ‘사내공모’ 제도의 실무자가 되었고 해가 지날수록 일에서 더 큰 재미와 보람을 느꼈다. 동료평가에서도, 성과평가에서도 매년 A평가를 받는 우수직원이 되어있었다.


 그러던 어느 날, 사내공모 지원자 리스트에서 자격조건을 심사하던 그녀는 그의 이름을 보고 튀어나온 물고기 눈마냥 눈이 확 튀어나오는 느낌이었다.

 사내공모제도에는 룰이 있었다. 메뚜기처럼 철마다, 아무나 본인의 일을 바꿀 수 없었다. 적어도 2-3년 이상 본인업무에서 평균, 혹은 우수 이상의 업무를 받은 사람만이 새로운 성장의 기회를 잡을 수 있었다. 그는 조건에 안 맞는 지원자였다. 원칙대로 불합격 메일을 날렸다. 그러자 몇 년 만에 그로부터 핸드폰 전화가 울렸다.


“야, 잘 지냈냐? 내가 이상한 메일을 하나 받았는데 말이야~”


“안녕하세요, 네. 지원자격을 충족하지 않으셔서요. 이상한 메일이 아니라 불합격 통보메일이예요.”


“뭐!? 야 너가 담당 실무자라며~ 그냥 좀 넘어가자. 그거 거의 조건 되는거야! 되는걸로 만들자.”


“죄송합니다. 제가 그런 권한은 없어서요.” 뚝-

전화를 끊자 깨똑이왔다.


“야, 니가 지금 그럴 상황이 된다고 생각해? 내가 너 예전에 인사팀으로 가기 전에 뭐 어쩌고 저쩌고 했던거 다 말해버릴거야!!! 블라블라 왈왈…..”


 그녀는 무시했고 그 사실을 그대로 인사팀장에게 보고했다. 어떻게든 방법과 예외사항을 찾아 줄 수 있었지만 원칙대로 갔다. 결국 그는 공모에서 떨어졌다. 그러면서 계속 일이 잘 풀리지 않았는지 현재의 자리에서도, 과거의 자리에서도 만족하지 못하고 진심어린 관리자의 업무를 해내지 못하던 그는 결국 얼마 안 가 회사를 떠났다.


 입사 후 그를 만나고 N년간 남아있던 체증이 씻겨 내려가는 기분이었다. 그 날 그녀는 초록병을 들고 소박한 축배를 들었다.


‘쌤통이다! 한 방 날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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