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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Hyoni Mar 20. 2022

눈물의 양파돈까스


 “3개월 수습기간동안, 회사에서 안 짤리고 무사히 지나가서 이번주에 가족들이랑 축하파티 하기로 했어요.”

 인사팀 막내 원정이 팀원들과의 점심식사에서 이야기를 꺼냈다.

원정은 입사 4개월차 신입사원이다. 차분하고 조용한 성격에 말도 천천히 하는 편이어서, 같은 20대 또래에 비해 훨씬 성숙한 느낌을 풍긴다.


 “3개월이 어떻게 지나갔는지 모르겠어요.. 시간이 왜 이렇게 빨리 지나가죠?”

원정에게 회사생활은 처음부터 멘붕(멘탈붕괴)의 연속이었다. 갓 입사한 원정을 빼고 모두가 바빴다. 원정에게는 인수인계서와 사수,팀장이 있지만 모든 일을 그들에게 의존할 수 없는 일이었다. 이제 막 시작한 직장생활은 완전히 새로운 세계였다. 하루에 한 번씩 멘탈이 털리는 일이 발생했다. 사수와 팀장은 ‘처음에는 원래 다 그런거야. 열심히 하면 나아질거야’ 위로했지만 그 때마다 원정은 근로계약서에서 본 험악한 문구가 떠올랐다.


- 3개월 간 수습기간을 거치며, 수습기간동안의 평가를 실시하여 XX등급 이하일 경우, “갑”은 “을의 채용을 취소할 수 있다.


 이러다 진짜 짤리는 건 아닌가 싶었다. 1년여간의 취업준비기간을 지나 어떻게 취업했는데! 살아남아야 했다. 편도로만 한시간 반이 걸리는 통근 시간이었지만 남들보다 일찍 출근하고, 늦게 퇴근했다. 매일 사수에게 오늘의 할 일에 대해서도 우선순위를 검토 받았다.


그렇게 하나 둘 익숙해지며 점차 멘붕이 다가오는 주기가 길어지고 있다고 생각할 즈음이었다.


 팬데믹 시대, 코로나와 오미크론으로 인해 인사팀 막내가 매일 챙겨야할 일이 하나 더 늘었는데 바로 코로나 확진자를 확인하고 안내하는 일이었다. 원정이 입사하고 오미크론 확진자가 급격히 늘어 하루에도 몇 명씩 확진자가 생겼고 전사 안내 메일도 하루에 몇 개씩 계속 보내야 했다. 원정은 확진된 직원에게 전화를 걸어 안부를 묻고, 확진증 제출을 안내한 후 격리기간이나 회사 방침에 대해 설명해 주곤 했다.


 “저 확진됬어요. 근데 PCR 검사 받으려면 3시간이나 기다려야 된다고 하고, 전 일하느라 바빠서 지금 그럴 시간은 없으니 그냥 확진 확인서는 안 낼게요. 그래도 되죠?”


 10년차는 더 된 차부장급 아저씨 직원으로부터 원정에게 메일이 왔다. 원정은 전화를 걸었다.


 “안녕하세요~ 코로나 확진 관련 안내 드리려고 연락드렸어요. 확진으로 확인받으신 자료는 제출해주시는게 원칙이어서요…”


원정의 말이 끝나기 무섭게 직원이 버럭 화를 내며 따지고 들었다.


 “아니 내가 지금 그래서 거짓말한다는거요? 바빠서 어짜피 아파도 쉬지 못한다니까는. 지금 인사팀이 나한테 해준게 뭐가있다고 이래? 확진됬다고 보고한 내가 바보지. 어짜피 일 해야되는데 더러워서 나 참. 그럼 안 걸린걸로 하던지 하쇼!”


 수화기 너머 핏대를 세우고 소리지르는 아저씨 직원은 욕만 안했다 뿐이지 삿대질에 욕한거나다름없는 말들을 뱉어냈다. 그리곤 원정을 난처하게 만들었다. 원정의 잘못은 없었다. 아프고, 코로나에 걸리고, 그럼에도 일 해야한다는 상황에 대한 화풀이 대상이 되었을 뿐.


 수화기를 내려놓은 원정은 당혹스러운 이 상황을 어떻게 해결해야 할 지 난처하기만 했다. 그 때, 옆에 있던 박팀장이 말을 걸었다.


 “무슨 일 있어? 얼굴이 왜그래?”


그 말을 듣자마자 왈칵 눈물이 쏟아져 나왔다. 눈물을 끅끅 참아보며 상황을 이야기 했지만 그래도 눈물이 멈추질 않았다. 그 얘기를 들은 박팀장은 화가 머리끝까지 났다.


 “아니 어따대고 화풀이야!? 원정, 신경쓰지 말고 이런 상황이 되면 말도 안되는 얘기 들어주지말고 바로 나한테 넘겨.”


박 팀장은 원정에게 온 메신저들을 쭉 읽더니 그 직원의 관리자인 임원에게 연락을 취했다.

‘원정님은 그 분의 부하 직원이 아닙니다. 부하직원에게도 그렇게 막 대하시면 안 되구요. 제대로 확인서 내시고, 사과해주시고, 다음에는 이런 일이 두 번 다시 없었으면 합니다.’



 박 팀장은 팀원 시절 자기가 겪었던 비슷한 상황들이 떠올랐다. 인사팀에서는 유난히 매니저급, 시니어 직원들과도 업무를 진행해야 하는 경우가 많았고, 어린 여직원이라 만만했는지 이걸 왜 해야 되냐며 따지고 들거나 불량한 아저씨들이 꼭 있었다. 마음의 생채기도 많이 나고 싸우면서도 심장이 벌렁벌렁 했는데, 임원급의 사업부장과도 부딪히게 되자 그 때 발벗고 나서주었던 인사실장님 생각이 났다. 바로 전화해서 “우리 박팀원씨에게 그렇게 하지 마십쇼” 말씀해주시던 모습에 참 많은 위로와 안도감을 얻었더랬다.



 그 날, 박팀장과 원정은 늦은 점심식사로 함께 양파돈까스를 먹었다.

원정은 놀란 마음을 추스리다 또다시 눈물이 났다. 눈믈의 양파돈까스를 먹다가 박 팀장의 이야기를 들었다.

“일도 사람도, 처음보다 그래도 요즘이 훨씬 나아졌지? 지금처럼 최선을 다하면 자연스럽게 결과들은 수확하게 될거야. 원정 뒤에는 내가 있고 팀이 있다. 원정은 우리팀, 회사, 업계에서 아주 멋진 인사전문가로 성장할거야. 쫄지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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