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기력의 기간이 찾아왔다 -야망녀는 어디에
회사에서 보통의 ‘신규 프로젝트’들은 두근거림과 기대감, 옹골찬 계획 그리고 큰 목표와 함께 뜨겁게 시작되곤 한다.
새로운 인력을 비롯해 프로젝트 진행을 위한 여러 자원을 모으고, 때로는 열정을 갈아넣어가며, 때로는 동료들을 의지하고 다독여가며 성과를 만들어 내기 위해 수많은 날들을 고군분투 하곤 하는 것이다.
미나는 ‘신규 프로젝트’를 좋아했다. 청사진을 그려보고 목표를 향해 와다다 달리며 맛보는 몰입의 순간을 좋아했다. 회사에서 뿐만 아니라 취업, 이직, 결혼, 영어공부까지도 큰 터닝포인트들을 비롯한 사적인 수많은 일들 또한 미나가 스스로 만든 인생 신규 프로젝트의 PM이 되어 집중해서 이끌어 가고자 했다. 그렇게 하면 아주 작게라도 꼭 성과가 따라왔다.
미나의 이 방식은 3개월에서 6개월짜리 목표에 가장 효과적이었고, 그래서 언젠가부터는 꼭 이루고 싶은 일이 생기면 3개월을 무서우리만큼 그것에 파고들 수 있도록 주변환경을 정비했다. 짧은 기간동안 에너지와 열정을 활활 태우고 장렬히 전사(?)하는 것. 그리고 마지막에는 나름의 족적을 남기는 것. 그게 미나가 찾은, 자신에게 가장 잘 먹히는 ‘최선의 방식’이었다.
그래서 미나는 ‘임신’이라는 인생의 신규 프로젝트도 살면서 지금까지 겪어온 수많은 신규 프로젝트들과 비슷할 거라 생각했다.
하지만 그 생각은 정확하게 ‘천만의 말씀 만만의 콩떡’ 이었다.
임신은 다른 프로젝트들과 완벽히 달랐다. 본인이 아무리 용을 쓰고 노력한들 내가 원하는 시간에 뱃속에서 내가 원하는 만큼 아기를 키워낼 수 없으며, 아무리 미리 예습하고 선행학습을 한들 내 몸의 컨디션을 떨어뜨릴 요소들은 예측불가한 상태로 계속해서 발생했다.
입덧, 두통, 쏟아지는 잠, 피곤함, 생각지도 못했던 부위의 간지러움, 꼬리뼈를 비롯한 온몸의 통증, 아기를 품으며 생긴 몸의 모든 변화는 강렬하게 “엄마 아무것도 하지말고 그냥 쉬어!!” 를 외치고 있었다.
그렇게 미나에게도 무기력의 기간, ‘생산적’이란 단어와는 거리가 멀어진 삶의 기간이 찾아왔다. 임신 전에는 하루하루 시간이 그렇게 빨리 갈 수 없었는데, 평일이건 주말이건 오피스 출근이건 재택이건 이놈의 몸뚱아리는 시간을 더디게 가게 했다. 뭔가를 하고 움직이자니 몸이 너무 힘들고, 몸을 가만히 뉘이고 있자니 시간이 안 가고 고통이 더 생생히 느껴졌다.
바빠야만 에너지가 솟는 미나였는데, 내 맘대로 바쁘질 못하니 우울해져 갔다. 남편은 옆에서 이 기회에 제발 좀 쉬는 연습도 하라며 미나에게 타이르듯 말하다가, 이 방법이 잘 먹히지 않자 ‘지금 인생에서 가장 큰 성과를 만들고 있는 순간이니 에너지를 거기에 잘 집중하자’며 새로운 어프로치로 미나에게 이야기하기 시작했다. 미나도 미처 모르게 몸은 아기를 키우기 위해 쉴새없이 바쁘게 돌아가고 있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