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마음의 집, 예술

나에게 예술이란

by 박윤경

“엄마, 나 집 가고 싶어” 딸은 집에 있으면서도 집에 가고 싶다고 한다. “무슨 말이야?” 처음에는 되물었다. 앞뒤 없는 딸의 말이 무슨 말인지 답답했다. 아이는 “집 가고 싶어.”라고 반복할 뿐이었다. 시험을 앞두고 있거나 중요한 평가가 있는 날엔 SNS 가족 방에 딸은 또 한마디 날린다. “나 집 가고 싶어.” 모처럼 마음 편히 쉬는 날은 덧붙인다. “집이 제일 좋아.” 이제는 안다. 딸의 이야기는 고단하다는 말이다. 그러니 쉬고 싶다는 말이다. 이제 되묻지 않는다. 대신 두 팔을 넓게 벌리고, “이리 와”하고 꼭 안아준다.


사람도 물건도 한 번에 고장 나지 않는다. 전구가 완전히 나가기 전 끔벅끔벅하듯, 내 두 눈도 끔벅끔벅 느려졌다. 건전지 교체할 때를 알리는 경고음처럼 내 목구멍에서도 이유 없는 쉰 소리가 났다. 용량을 초과한 냉장고 문틈이 벌어지듯 머리 뚜껑이 열려 하얀 김을 내뿜었다. 고장 난 수도꼭지처럼 하염없이 눈물이 흘렀다. 50년 가까운 세월 잔고장 한번 없던 몸뚱이라 믿었다. 여기저기 고장을 예고하는 경고음이 울렸지만, 설마 하며 무시했다. 그러던 어느 날 나는 완전히 멈췄다. 불이 꺼져 눈앞이 컴컴했다. 배터리는 방전되어 액체 괴물처럼 바닥에 들러붙었다. 머리는 완전히 열려 내용물을 뱉어냈다. 눈물샘은 써도 써도 비워지지 않는 요술 항아리 같았다.


일으켜 세우기 위해 다양한 노력을 했다. 건강 검진, 요가, pt와 골프, 아무것도 안 하기, 다양한 공부와 모임, 목적 없는 글쓰기와 이색적인 리추얼 활동까지. 영상을 찍으며 노래를 부르고 나누기까지 했다. 어떤 노력에도 나는 꼼짝하지 않았다. 이제 끝이구나, 싶었다. 잘 살고 싶었던 마음을 포기하기 직전 기적처럼 그림을 만났다. 매일 밤 하루를 돌아보며 기억하고 싶은 순간을 그리고, 그때의 마음을 기록하기 시작했다. 예상과 달리 나의 하루에는 기억하고 싶은 행복하고 고마운 순간이 많았다. 그 깨달음이 차곡차곡 쌓이기 시작하면서 마음이 먼저 움직였다. 그리고 마음이 몸을 일으켜 세웠다. 작은 일상의 순간을 기록한 손바닥만 한 그림 한 점과 짧은 글이 나에게는 딸이 얘기하는 집이었다.


image0111.jpg 신일아 / My Love Is Always There


그림 속 여행자는 집으로 돌아오고 있다. 어느 날 빨간 대문을 열고 나와 작은 배를 타고 긴 여행을 떠났다. 어딘가에서, 누군가를 만나고, 무언가를 하고 다시 집으로 돌아오고 있다. 작은 터널을 지나 저 빨간 문을 스르륵 말고 들어가면 여느 날과 비슷한 풍경, 보글보글 온기와 군침 돌게 하는 음식 냄새를 품은 저녁 식사와 사랑하는 가족이 기다리고 있다는 걸 안다. 집 떠나 마음에 품어온 이야기를 어디서부터 어떻게 전할지 정리하느라 머릿속이 분주하다. 돌아와 이야기보따리를 풀어놓을 집이 있어서 걱정 없이 떠날 수 있고, 안심하고 돌아올 수 있다. 신일아 작가의 이 작품 제목처럼 사랑은 결국 집에 머문다.


우리는 매일 집을 떠난다. 학교로, 직장으로, 여행지로, 또 다른 목적지로. 그리고 때가 되면 돌아온다. 어쩌면 온전한 내 모습으로 돌아오기 위해, 안락한 집의 모습을 지키기 위해 부지런히 떠나는지도 모르겠다. 그림을 그리고 글을 쓰는, 나의 예술하는 시간은 안전이 보장된 내 마음의 집이었다. 매일 밤 그리고 썼다. 무슨 일이 있어도 그리고 쓰는 시간을 지켰다. 꾸준히 나를 표현해 남기면서 어딜 가든, 누구를 만나든, 무얼 하든 안도감과 자신감을 잃지 않았다. 우리는 돌아오기 위해 집을 떠나듯 예술을 하기 위해 일상을 산다. 신실히 살아낸 일상은 예술의 소재가 되어 나를 안심시키고, 그 안도감으로 다시 일상으로 떠날 수 있다. 언제든 돌아올 수 있는 안전이 보장된 예술은 한결같이 우리의 사랑이 머무는 그곳, 내 딸이 얘기하는 집이다.




나에게 보내는 질문 :

돌아오는 날이 기다려졌던 여행 이야기해 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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