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갑분싸

갑자기 분뇨를 싸지르다

by 영지

나는 영이 경주에서 만팔천 원이나 주고 사온 찰보리빵을 니가 왜 먹었냐고 소리쳤을 때에야 내가 찰보리빵을 좋아한다는 걸 알았고 그걸 깨달았을 땐 상자 속 빵 두 줄 중 반 줄을 해치운 후에 책상에서 필타를 하고 있었다. 김혜진의 목화맨션은 내게 글을 다시 쓰고 싶다고 생각하게끔 했고 어디선가 미소된장국 냄새가 난다고 생각하며 점심에 먹은 돈카츠와 미소된장국 그리고 어쩐지 매운 게 먹고 싶어 첫끼였지만 가장 매운맛으로 주문했던 카레를 생각했다. 브런치를 쓰는 지금 그것이 덜 마른 옷에서 나는 특유의 쉰내와 구린내라는 것을, 그것이 입고 있는 수면바지에서 풍겨져 나오고 있다는 것을 알았다. 내일은 일터에 가야 하고 팡 덕에 그만둔다는 문자를 보낸 나는 여덟 번의 출근만 더 하면 된다고 생각하며 가기 싫은 마음을 달랬다.

동기들과 시나리오 스터디를 하기로 했다.

한 가지를 오래 못하는 내가 일 벌이기 만큼은 잘한다는 것이 adhd에 기반한 나의 지론이었다. 스터디장이 된 팡과 나는 매주 번갈아가며 메일링에 싣는 레터 형식의 글을 쓰자고 했고 나는 25일부터 내달 22일까지 총 세 편의 글을 쓰게 될 것이었다.

어제는 수와 두 시간가량 통화를 했고 그런 대화를 나누었다. 두 가지 중에 어떤 한 가지에 집중하고 싶을 때 사실 무엇을 선택하기보단 이것도 저것도 해도 되고 중간 그 어느쯤에 위치해도 된다고. 집중을 해야지! 하며 판단이 서기까지도 다 경험을 해봐야 아는 것 같다고 말이다.

그것이 자연스럽게 되는 일인 거 같다는 이야기를 나눌 때까지 나는 수가 하는 말을 빠짐없이 메모장에 받아 적었다.

잘해야 된다는 생각은 주기적으로 찾아왔고 나는 그것 또한 나의 adhd적 면모라고, 어쩜 이토록 치밀하고 세세한 병력이 있는지 생각했다. 그것이 발휘되는 순간 나는 조증 삽화가 찾아오기도 하고 심장이 쿵쿵 뛰며 이것이 공황인지 조증인지 혹은 무기력으로 인한 혈압 문제인지 판단할 수 없었다. 그럼에도 비상약은 먹지 않았다. 이것이 처음이 아니라는 것도 까먹지 않았다.

내겐 앞으로 몇 번의 쿵쿵거림이 찾아올 것이며 그것이 잦아들 때까지 나는 어떻게 매번 대처해야 하는 것인지 알 수 없다. 알 수 없다, 알 수 없어 읊조리는 나는 정말로 뭐가 뭔지 알 수가 없어져서 지금 내가 올라탄 삶의 궤도가 어느 쯤에 위치하고 있는 것인지도 알 수가 없었고 올해가 한 주도 채 남지 않았다는 사실도 받아들일 수가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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