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름 없는 거리를 걸으며

by 박율

이름 없는 거리를 걸었다.

낡은 벽돌은 오래되어 갈라지고,

벗겨진 페인트는

지워진 시간의 흔적을 흘리고 있었다.


바람은 골목을 누비며

잠든 이야기를 일깨우듯 속삭였고,

발끝에서 피어오르던 먼지는

아직 도착하지 못한 어딘가를 꿈꾸었다.


간판 없는 거리,

누구의 발자국도 깊게 새겨지지 않은 곳.

그러나 묘하게도,

모든 것이 나를 응시하며 말을 걸었다.


갈라진 인도는

내 걸음을 붙들고,

꺼진 가로등 아래,

오래전에 잃어버린 꿈들이

흐릿하게 되살아났다.


아무도 나를 부르지 않았지만,

이 거리에 머물렀다.

멈추고, 걸으며,

흩어진 나를 모았다.


이름이 없다는 이유로

잊히지 않으려는 듯

거리의 침묵은 나를 감쌌다.

그리고 나는

무언의 대화 속에서

이름을 되찾았다.


이전 02화꽃잎이 속삭인 비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