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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SealintheSea Apr 09. 2024

퇴사여행 18. 중년의 유럽 배낭여행을 끝내며

암스테르담에서의 에필로그, 찾고 싶던 것은 찾았는지.

이번 약 4주간의 여행 중 가장 힘을 준 곳이라면 역시 아이슬란드 캠핑카 일주이긴 했다. 그곳이 너무 추운데 그 앞은 프랑스 남부를 갈 생각을 하다 보니 옷이 20도 이상을 커버해야 했는데 아무래도 제대로 된 옷은 가지고 다니지 못한 것 같다. 맨날 똑같은 겉옷만 걸치고 다니는 게 이런 여행에서는 사실은 정상적이란 걸, 여행이 끝날 때 즈음에야 깨닫는다. 매일 다른 옷으로 바꿔 입는 건 사진 찍을 용도나 직장 생활할 때 필요한 거지, 가볍게 나서야 하는 배낭여행에서 여러 벌을 어떻게 갈아입겠는가?

이번 유럽 여행의 티켓이 암스테르담 인-아웃이기에 마지막 일정으로 암스테르담이 남았다. 그동안 예약하려던 모든 도시들 중 가장 숙소 비용이 비쌌기에, 처음에는 도심에서 한 시간 정도 떨어진 한인 민박을 예약했는데 아이슬란드 여행 도중 마음을 바꾸어 도심의 혼성 도미토리로 예약했다. 출발 전에는 유럽에 출몰한다는 베드벅의 공포가 있었는데, 아우 몰라. 괜찮겠지... 한번 시내 다녀올 때마다 기차를 한 시간씩 타고 다니고 싶진 않았다. 나는 출퇴근을 하는 게 아니라고!

도착한 네덜란드의 암스테르담은 최근에 발급받은 체크카드로 교통카드가 되었다. 놀라워라! 아주 쉬이 시내에 진입했는데, 6인실 도미토리는 거의 배에 선원들이 지내는 곳 마냥 좁고 쓸 만한 게 아무것도 없었다. 짐 둘 데가 없어 침대 안에 짐을 다 풀어놓고는 체크아웃 때까지 그렇게 지냈다. 180이 안 되는 나도 침대 바깥으로 발이 삐져나왔는데 키가 큰 유럽인들은 어떻게 지내는지 모르겠다. 어쨌든 숙소가 그런 거면 그런 거지 뭐.

암스테르담에서는 힘을 빼고 지내려고 나름은 노력했지만, 그래도 하루에 2만보씩은 꾸준히 걸어 다니며 도시 구석구석 사람 사는 곳들을 보려고 했다. 호스텔 앞에 붙여진 무료 투어도 신청해서 오전 동안 역사 산책도 했는데, 역시 도시는 잘 아는 사람의 설명을 들으면 또 맛이 난다. 이 뻘밭 같은 곳에 어떻게 사람이 모였는지, 집은 왜 기울어졌는지, 옛날 집들 앞의 다양한 모양과 색상의 부조는 왜 생긴 건지, 동인도회사는 어떻게 성장했고 어떤 잘못된 일을 저질렀는지까지... 이곳에서 철학을 공부하고 있다는 활기찬 청년은 아주 쉴 새 없이 떠들어대었고, 모조리 이해했는지는 모르겠지만 투어는 매우 유익했다. 특히 농담할 때가 아주 쥐약이야...

날씨가 매우 좋았기 때문에 마지막 날엔 큰 맘을 먹고 1일  자전거를 빌렸다. 원래는 반나절만 탈까 생각했는데 많은 대여 업체의 옵션이 3시간 또는 24시간인데 가격은 크게 차이가 안 나길래 그냥 하루 자전거를 빌려 길을 나섰다. 그러나 기어도 없는 자전거를 타고 왕복 60킬로를 달리겠다는 생각은 매우 잘못되었음을 달리지 몇 분 지나지 않아 깨달았다. 원래 시행착오가 여러 번 있는 법이지 뭐.

아침엔 남쪽의 튤립 축제가 있는 쿠겐호프라는 곳으로 가려고 했는데, 거리는 거의 30km인데 1시간 반이면 간다고 구글이 알려 줘서 호기롭게 출발했지만 거센 바람으로 도저히 나아가지 않아 20km 정도 달려가다 돌아와야 했다. 오후엔 북쪽의 풍차가 있다는 잔세스칸스라는 마을로 향했지만 역시 속도가 나질 않았고 좀 더 가면 뭔가 몸이 고장 날 것 같이 아파서 목표를 7km 정도 남겨 두고 돌아왔다.

물론 두 군데 모두 가지 못한 건 너무 아쉬운 일이다. 그래도 뭐 어때... 다 꼭 이루지 않아도 길이 너무 좋았는걸. 언제나 산 꼭대기에 올라야만 되고, 무언가를 완수해야만 하고, 그러려고 여행을 한 건 아니니까. 봄날의 네덜란드의 경치는 정말 아름다웠고, 자전거를 타고 움직인 그 순간들은 행복했으니.

이번 여행에서 나는 무엇을 얻으려고 했을까를 다시 생각한다. 퇴사 후 잘 살 거라는 용기일까, 이후 겪게 될 현실적인 일들로부터의 도피일까. 글도 열심히 잘 쓰고 싶었고, 여행하며 더욱 건강해지고 싶었는데 뭔가 생각한 만큼은 안 된 상태로 돌아간다. 하지만 뭐 어때. 인생은  생각한 대로는 살아지지 않지만, 그래도 좋은 순간들에 머무르려는 노력이 필요하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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