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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SealintheSea Mar 20. 2024

퇴사여행 3. 아비뇽에서 나를 축복하는 방법을 찾기.

프랑스여행기 3. 믿음에 대하여.

아비뇽은 남쪽 프랑스에서도 굉장히 독특한 역사적 지위를 가지고 있는데, 그건 바로 아비뇽 유수라고 불리는 교황의 거처가 옮겨 온 사건으로 인해 교황청이 남게 된 일이다. 사실 그 외에도 많은 역사적 사실을 머금고 있는 도시이겠으나 해당 사건이 워낙 중세의 거대한 쐐기를 박은 일 중 하나이고, 실제로 남아 있는 건축물의 규모도 다른 것들에 비해 압도적이기 때문에 교황청을 빼놓고는 이 도시를 설명하기가 어렵긴 하다.


모든 유럽의 도시들이 마찬가지이겠지만, 성당과 교회 건축을 빼먹고는 도시들을 논하기가 어렵다. 오래된 도시의 중앙에는 항상 종교 시설들이 있었고, 거대한 약탈과 파괴가 있지 않은 이상 그 건물들은 천 년은 우스울 만큼 오랫동안 남아 우리를 굽어 본다. 삶에 대한 구원과 위로는 종교를 가지지 않아도 그 마음과 염원을 느낄 수 있다.


공유 자전거 시스템이 있어 관광 안내소의 가이드를 따라 자전거를 빌려 보았다. 고요하게 흐르는 론 강을 따라 꽃들과 허브 향이 나는 바람에 몸을 맡기자, 비로소 마음속에서 이런 순간을 간절히 원했었구나 하는 깨달음이 찾아왔다. 봄이 오고 있었고, 플라타너스 씨앗이 공기 중에 흩날리고, 석양이 오래된 도시를 부드럽게 감싸고 있었다. 도시는 방문한 이들에게 축복을 내리고, 나도 이 아름다운 도시에 축복을 내리고 싶은 마음이 드는 그런 순간들. 인생의 여러 갈림길에서 방황하다가도 미소를 지으며 순간에 머무를 수 있는, 천국의 일부와도 같은.


퇴사 이후 마흔의 삶에 대한 불안은 여전히 존재한다. 안정적이라던 것은 더 이상 없지만, 그래서 믿음이란 것이 더욱 필요한 시간이다. 불완전한 나에게서 완전한 신으로의 믿음이 아니라, 불완전한 나를 인정하고 그래도 순간순간에 머무르며 스스로를 긍정하기. 결국 구원은 스스로에게 바치는 일이라고, 아직은 믿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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