첫 번째 이야기
글재주가 없으니 재미는 없겠지만 산행하며 보고 느낀 제 이야기 적어봅니다. ^^
사실 난 산행을 시작한지 얼마 되지 않았다. 대학 아니 그 이전부터 산행을 즐겨온 친구들도 있는데 그에 비하면 난 햇병아리에 불과하다. 사람들에게 산행을 시작하는 목적은 건강, 자연, 친구 등 여러 가지가 있겠지만 내게 있어서는 술과 친구였다.
사람들을 만나기 좋아하는 나는 대학 다니며 만난 동아리 친구들이 부르면 부르는대로 나가기 일쑤였고, 한 번 나가면 새벽녘까지 마시는 경우가 태반이었다. 일 때문도 아니고 지 좋아서 마시고 새벽에 들어와 누워있는 꼴을 좋아할 사람이 없는 것도 당연하지만 어쩌다 한 번도 아니니 집에서 듣는 소리가 좋을 수가 없다.
하지만 나이가 들어가며 술이 나를 이기기 시작했고, 심한 경우 3박 4일 머리가 띵한 상태로 있게 되어 맑은 일상이 되질 못하였다.
그래서 생각해낸 것이 산행이었다. 일상이 힘든 평일에 친구를 만나 술을 먹는 것도 좋지만 그보다는 주말에 친구를 만나 산행을 하고 점심 먹으며 반주 한 잔하면 좋겠다는 생각이 든 것이다. 친구도 만나고, 건강도 챙기고, 반주가 온주가 되도록 퍼마시지만 않으면 집에서 눈치도 안주니 얼마나 좋은지... ^^
그렇게 동아리 친구들과 산행을 시작해서 매주 북한산을 올랐다. 구기동에서, 우이동에서, 불광동에서, 북한산성입구에서 산행을 하는 사이 산행의 즐거움이 더해졌다. 같은 곳을 오르는데도 비오고 눈오고 바람부니 그 때마다 달랐다.
친구들뿐만 아니라 식구들도 같이 했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어 아내에게 권해봤지만 이미 대학 다니던 시절 어지간한 산은 다 가보았기에 이젠 별로 맘에 내키지 않는다는 것과 아이가 어리니 돌봐야 하는 것 때문에 시간도 없다는 것이다. 돌이켜보면 두 번째 이유가 컸다.
집안일, 아이를 돌보는 일은 남자가 함께 한다고 하더라도 남자가 할 수 없는 것(어쩌면 하지 않는 것일 수도 있겠지만)이 있었다. 더구나 딸아이라 나하고 코드가 맞지 않는 부분도 있었다. 아들 녀석이라면 산으로 끌고 다녔을 텐데....
딸아이하고는 롯데월드를 주무대로 하여 많은 시간을 보냈다. 그 때는 아내가 토요일에도 출근하기에 딸아이와 노는 것은 내몫이었고 연간 회원권을 끊어 토요일이 멀다하고 개장시간 맞춰 들어가서는 후름라이드를 시작으로 접시, 회전목마 등으로 오전을 보내고 민속박물관 한 바퀴 돌아본 다음 장터에서 국밥 먹고 집으로 돌아왔던 기억이 차고 넘친다. 이 때 내가 먹고 싶었던 것을 다 먹여봐서 그런지 딸아이가 도가니탕, 장터국밥, 내장탕을 망설이지 않고 먹는다. ^^ 추어탕도 먹였어야 하는데...
딸아이가 지금도 그 때 이야기를 하는 것을 보면 그 시간을 잘 보냈다는 생각을 하게 된다.
실제로 식구들과 산행은 아니지만 둘레길을 두 번 걸은 적 있는데 결국은 둘 다 기권하더니 선언하기를, 산에 가도 좋은데 함께 가자는 소리 하지 말고, 어느 산을 언제 가서 언제 오는지를 알려달라는 것과 외국의 산과 암벽을 타지 말라고 한다. 그래서 식구들과 산을 가는 것은 포기할 수 밖에 없다.
그저 시간이 흘러 생각이 달라지기를 기다리고 있다. ^^
북한산은 북한산성입구에서 중흥사를 거쳐 대남문으로 올라갔다 내려오는 코스가 제일 좋았고 지금도 좋다. 편안한 길이 길게 이어져 걸으면서 친구들과 이야기할 수 있기 때문이다. 거리는 대략 5킬로가 조금 넘고, 왕복이면 11킬로 조금 안 된다.
하지만 북한산 산행에 변화가 생겼다. 함께 산행을 하던 친구들이 케냐로, 제주도로, 주말 근무로 함께 산행을 할 수 없게 된 것이다. ^^
주말에 친구들을 만나 북한산을 걸으며 사는 이야기하고, 내려와서 막걸리 한 잔 하는 것이 또 하나의 사는 재미였는데 일상이 달라지며 산행이 어긋난 것이다.
그래도 다행인지 산행은 동아리 선후배들과 청계산을 오르는 것으로 이어졌고, 북한산이 청계산으로 바뀌어 산행을 할 수 있었다. 아마 청계산을 80번 이상을 오른 것으로 기억한다. 옛골에서, 원터골에서, 양재동 트럭터미널에서, 과천에서...
그 중 제일 좋았던 코스는 양재동 트럭터미널에서 시작하여 옥녀봉, 매바위, 매봉, 만경대, 이수봉, 국사봉을 거쳐 판교에 있는 한국학 중앙연구원이 있는 곳으로 내려가는 것이었다.
지금은 양재 추모공원 입구로 바뀐 트럭터미널에서 옥녀봉을 향해가는 이유 중 하나는 산림욕을 할 수 있기 때문이다. 옥녀봉에서 밤나무골로 가는 길 양 옆으로 빼곡하게 뻗어있는 소나무 등 침엽수에서 뿜어 나오는 피톤치드(phytoncide)는 내 맘과 몸을 맑고 차분하게 해주었다. 길도 편하기에 둘이 걸으며 산책하는 기분으로 숲의 기운을 맘껏 즐길 수 있어 추천하는 곳이다. 그리고 원터골에서 올라오는 길과 만나기 전 진달래 능선도 참 좋다. 양 옆으로 늘어서있는 진달래의 봄향기는 멀리 영취산이니 황매산을 가지 않아도 부러움이 없다.
또 옥녀봉 가는 길에 보면 입맞춤길이 있다. 이유는 찾아봐도 나오질 않으니 모르겠지만 어느 분의 블로그에서 본 글이 있어 옮겨본다.
옥녀봉을 지나 원터고개를 넘는 동안 줄곧 그 젊은 연인의 뒤를 따라 걷다가
매봉에 이르러서야 서로 길이 갈려 헤어지게 되었다.
고개 돌려 젊은이들의 얼굴을 힐끗 쳐다보니 20대를 갓 넘긴 나이로 앳돼보였다.
서로 쳐다보며 까르르 소리 내어 웃는 모습이 밝기 그지없었다.
매봉에서 길마재를 거쳐 원터골로 내려오고 난 뒤에도
산길에서 진하게 입맞춤하던 그들의 싱그러운 모습이 머릿속에서 지워지지 않았다.
쉬잇! 청계산을 오르는 사람들이여.
<입맞춤길> 옆을 지나칠 때면 잠시 말을 끊고 걸음을 멈춰
그 곳에서 입 맞추는 연인들을 방해하지 말지어다.
[출처] 쉬잇!~ (청계산 입맞춤길)|작성자 비오
그리고 이어지는 1468개의 계단은 청계산의 또 하나의 명물이다. 오르는 내내 번뇌 하나씩을 발끝으로 털어버리면 아침 햇살 영롱한 매바위에 이르면 가벼워진 내 몸과 마음을 느낄 수 있다. 어느 날인가 매바위에서 떠오르는 아침 해를 보겠다고 오른 적이 있다. 지리산 천왕봉에서 바라보는, 설악산 대청봉에서 동해바다를 떠오르는 용암처럼 빨간 태양과는 비교할 수 없겠지만 아쉬움을 달래기는 충분하다. 매봉 전망대에서 서울 구경 잠깐하고 혈읍재 방향으로 간다.
사람이 많아 시장을 방불케 하므로 얼른 움직이는 것이 좋다. ^^
망경대와 석기봉을 지나 이수봉으로 간다. 망경대에서 바라보는 과천, 대공원이 좋다고 하지만 난 별무신통(別無神通)이다. 그냥 이수봉을 향해 간다.
잠시 내리막이었다가 오르면 과천에서 오는 길과 만나 이수봉으로 간다. 이수봉도 그냥 통과다. 이수봉 정상석 뒤에서 막거리를 파시는 분 탓에 어떻게 해도 이수봉은 그림이 나오질 않는다. 그것이 아니더라도 엄청난 사람들 덕분에 정상석 부여잡고 사진 한 장 찍기가 어렵고 어려워 답답할 뿐이다. 그러니 얼른 국사봉을 향해 걷는 것이 좋다.
국사봉 가는 길은 힘이 든다. 오래 걷기도 했지만 내려갔다 다시 올라가기가 험한 것도 아닌데 여간 힘에 부치는 것이 아니다. 지금이야 그 정도는 아니지만 첨에는 그랬다. ^^
국사봉에서는 눈에 들어오는 세상보다 산행의 마지막 고비를 올라섰다는 기쁨이 가슴에 차오르기에 좋았다.
국사봉에서 판교로 내려가는 길은 조금은 가파른 흙길이다. 정확히는 흙먼지길이고, 비가 오면 진흙탕길이다. 조심하지 않으면 엉덩방아를.... ^^
그렇게 내려와서 여름에는 콩국수를, 다른 때는 청국장을 막걸리 한 잔과 함께 먹었다.
한국학 중앙연구원이 좋은 이유 중 하나는 버스 종점이고 강남으로, 잠실로, 을지로로 가는 버스가 다 있다는 것이다. 분당을 돈다는 것은 흠이지만 산행 후 보태진 막걸리 한 잔에 잠시 눈을 감았다 뜨면 다 지나가기에 문제는 없다. ^^
그렇게 선후배들과 청계산을 수십 번 간 뒤에 다시 일로, 건강으로, 자전거로 청계산 산행도 힘들게..... 그리곤 혼자 산행을 하기 시작했다.
청계산을 다니면서는 새로운 것도 많았다. 지리산, 설악산, 오대산, 호명산 등 서울 밖의 산을 걷게 되었고, 산행장비에 대해서 알아가기 시작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