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 번째 이야기
북한산에 이어 동아리 선후배들과 청계산을 줄기차게 다니던 중 선배가 한 달에 한 번 정도는 서울 밖에 있는 곳으로 가면 어떻겠냐 하고 묻는다. 다른 산을 가고 싶은 맘은 굴뚝이었지만 솔직히 아는 것이 없으니 못간 것인데 하늘같은 선배님이 먼저 말을 꺼내주시니 좋아죽을 지경이었다. 그렇게 해서 광교산, 호명산, 천마산, 설악산, 용문산 등 하나하나 이름을 대면 알만한 산들을 오르기 시작했다.
설악산은 뜻밖의 도전이었다. 17km 정도의 거리를 하루에 걷는다는 것이 쉽지 않았기 때문이다. 설악산에 한 번 가보자는 이야기가 나오고 뭔가 죽이 맞았는지 일사천리로 산행이 진행되었다. 동아리 선후배와 함께 버스를 타고 오색에 있는 여관(이름도 기억나질 않으니...)에서 저녁을 먹은 후 잠을 청하였다. 다음 날 새벽에 일어나 아침을 먹고 4시 30분경 산행을 시작해서 12시간 이상을 걸었다. 하루종일 내리는 비에 설악의 절경은 볼 수 없었지만 하얀 운무 사이로 멀리 금강산도 백두산도 마음 껏 상상할 수 있었다. ^^
그 후에 찐하게 한 산행이 지리산 종주였다. 12월 17~18일에 서너 명이 가자고 해서 시작된 지리산 종주가 한명씩 일이 있어 빠지더니 나 혼자 남았다.
혼자가 되니 모든 것이 난관이었다. 교통편, 숙소, 먹는 것을 비롯한 준비물 제대로 아는 것이 하나도 없었기 때문이다.
지리산을 가기로 맘을 먹고 돌아봤을 때 내가 갖고 있는 장비라고는 등산화와 모자 그리고 25리터 용량의 작은 배낭 밖에 없었다. 그것도 처음에는 아내가 골라 주었다. 젊은 시절 산에 적지 않게 다녔기에 아무래도 나보다는 선수였기 때문이다. ^^
첫 등산화는 캠프라인의 아이리스라는 제품으로 오프라인에서 21만원 정도였지만 온라인 쇼핑몰에서 13만 원 가량 했던 것 같다. 아이리스는 첫 등산화인데다 잘 만들었는지 지금도 신고 있다. 그동안 아웃솔을 두 번 교체했다.
그리고 지리산 종주를 위해 두 번째로 등산화를 구입하게 되는데 캠프라인의 애니스톰 베타였다. 이건 신발이 발목 위로 올라오는 중등산화였다. 장거리를 걷기 위해서는 발목이 꺾이는 것을 막기 위해 중등산화가 필요하다는 이야기에 구입을 했는데, 애니스톰과는 가끔 걸었던 백두대간, 불수사도북, 오지산행 등 험한 산행을 함께 하고 있다.
다행인지 겨울에 태어난 나는 아내가 생일선물 이야기를 하기에 얼른 배낭 이야기를 했다. ^^ 그렇게 해서 갖게 된 것이 도이터 air contact 65 였다. 도이터 배낭은 튼튼해서 좋지만 다른 브랜드에 비해 무거운 것이 흠이다. 어쨌든 세계 3대 배낭 메이커는 사람마다 의견이 다르지만 미스테리 랜치(Mystery Ranch), 오스프리(Osprey), 그레고리(Gregory)라고 생각을 한다. 오스프리와는 인연이 닿아 6개를 사용해보았으나 나머지는 아직... 어쨌든 가격 하나는 끝장이다. ^^
버너는 설악산에 갈 때 하나 구입했지만 코펠이 문제였다. 지리산을 가기 위해 적지 않은 비용이 이미 들었는데 티타늄 제품으로 코펠을 구입하기에는 부담이었기 때문이다. 그래서 구입은 포기하고 집에 사용하지 않는 양은냄비를 여차하면 쓰레기통에 버리고 올 생각으로 챙겼다. 장갑, 비니, 스틱을 구입하니 얼추 구색은 갖추게 되었다.
겉보기에 구색은 갖추었지만 지리산에 대해 아는 것은 여전히 아무 것도 없었다. 지리산에 관한 경험은 중학교 수학여행으로 화엄사에 가본 것이 전부였기 때문이다. 먹을 것은 무엇을 가져가야 하는지, 코스는 어떻게 해야 하는지, 교통편은 어떻게 해야 하는지....
하나하나 검색하고 물어봐서 준비를 했다.
교통편은 용산역에서 밤 10시 45분 기차를 타고 구례구역에 새벽 3시 경에 도착하여 택시를 타고 성삼재로 이동하면 되었다. 택시비는 4만원인데 혼자인 경우에는 합승을 하면 만원만 내면 된다.
먹을 것은 불고기를 끼니별로 먹을 양을 비닐에 나누어 담고, 햇반 2개, 김치, 초코렛바, 라면 1개를 챙기는 것으로 충분했다. 문제는 물이었다. 평소에도 물을 많이 먹는 나는 미련하게도 1.8리터 물을 세 개나 챙겼다. 지리산은 다른 곳과 달리 물을 충분히 구할 수 있기에 곰탱이 같은 미련한 짓을 한 것이다. 지리산은 곳곳에 물을 구할 수 있기에 물병 하나만 가져가도 되고, 겨울이라 샘물이나 약수가 얼어서 사용할 수 없다고 하더라도 각 대피소마다 물을 팔고, 이외에도 햇반, 초코렛을 팔기 때문에 많이 챙겨갈 필요가 없다. 장터목 대피소에서는 원두커피도... ^^
하여간 물을 그렇게 많이 가져간 것은 미련함의 극치였다.
산행코스는 성삼재, 노고단고개, 돼지령, 삼도봉, 토끼봉, 명선봉, 연하천대피소, 형제봉, 벽소령대피소, 덕평봉, 칠선봉, 영신봉, 세석대피소(1박), 촛대봉, 연하봉, 장터목대피소, 제석봉, 통천문, 천왕봉, 중산리로 잡았다.
그리고 지리산 종주로 검색을 해서 나오는 어느 여자 분에게 메일을 보냈다. 그 분 블로그에서 산행뿐만 아니라 마라톤 풀코스를 달리는 것을 보고 메일을 보낸 것인데, 하여간 6,70킬로를 걸으며 산속에서 잠을 자고 하는 것이 당시에는 사람으로 보이질 않았다. ^^
요즘은 뜸하지만 가끔 블로그에서 덧글로 안부를 묻곤 했다. 당시 지도, 준비물, 주의하여야할 점 등을 알려주었다.
그 때만해도 백두대간 종주를 할 생각이었기에 함께 메일로 질문을 하였는데 답이 오기를....(개인의 프라이버시에 관한 이야기가 없어 지도를 제외한 메일 내용을 옮긴다.) 낯선 이가 뜬금없이 메일을 보내 묻는데 친절하고 자세하게 설명을 적어보내주었다.
먼저, 백두대간을 계획하셨다니 추카드립니다.
시작이 반이니까요...^^
산을 시작하신지 얼마 안되셨다지만 그 정도의 열정과 산행실력이시면 충분 가능하리라 믿어요.
뭐~ 제가 속한 익스트림 산악회에선 한번에 6,70km를 빼기 때문에 6개월에 종주 가능합니다만(저는 8개월 걸렸어요) 홀로 하신다면 이런 종주 추천안합니다.
밤낮없이 걸어야 하기에, 밤엔 아름다운 우리 산하를 제대로 못봐요.
물론 횟수 거듭할수록 야간산행의 진정한 맛은 알게 되지만...^^
홀로 비박장비 메고 1박 2일로 가시는 것도 좋구요.
교통편이 여의치 않으심 대간종주 관광버스 이용하셔도 유용하실 겁니다.
경비면이나 시간면에서... (인터넷 정보 많으실 겁니다.)
북진을 하실건가봐요?
북진은 천왕봉부터지만, 아마 곧 신대간코스라 해서 해남부터 시작한다는 말도 있지만, 아직 대중화는 안된 것 같구요.
허접하지만 지리산(중산리 ∼ 성삼재) 안내 잠깐 해 드릴게요.
거리 참고할 지도에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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빨간 실선이 코스입니다.
시간은 일반적인 속도보다 쫌 느리게 표시 된 거구요.
아마 길 잃을 일은 100% 없을 겁니다.
지리종주코스는 워낙 길안내가 잘 되어 있거든요.
구간별 시간은 위 지도 참고 하시되...
7, 80% 더 빠르실 겁니다.
뱀사골 대피소에서 성삼재 쪽 가다 노루목이 나옵니다.
여기서 반야봉을 오르게 되면 1km(왕복2km)가 더 추가되지만, 반야봉은 생략하셔도 무방합니다.
12월 셋째 주면 눈발이 제법 있겠는데요.
겨울양말 여벌 1켤레와 바람막이, 오버쟈켓 웜셔츠 여벌, 아이젠, 스패츠는 필수구요.
산장이 많으니 버너코펠 가져가셔도 되지만, 배낭 무게 걱정되시면 행동식과 도시락으로 대체하심이 좋을 듯 하네요.
식수대가 자주 있기는 하지만 행동식보다 더 중요시 할게 '물' 입니다. 특히 종주시에는...
대간종주 블로그들 많을테니 여러 블로그 참조 하시고, 모쪼록 겨울장비 잘 챙기셔서 뜻있고 멋진 종주 나들이 되시길 바래요.
(__)(^^)
언제나 기억해야 할 네 가지는 결코 포기하지 말고, 배움을 중단하지 말며, 남의 흉을 보지 말 것이며, 좋은 친구는 멋진 삶의 필수조건 이라는 사실.. (메일 말미의 이 글은 그냥.. ^^)
이렇게 준비를 하다 알게 된 것이 J3 클럽, 감마로드 산악회 등 태극종주, 환종주 같은 장거리 산행을 하는 산악회였다. 메일 내용에도 있듯이 수십 킬로미터를 걷는 것이 기본이다. 장거리를 걸어야 잘하는 산행인 것은 아니니까 그냥 감탄하는 정도로 그치고 부러워할 필요는 없다. ^^
어쨌든 이 때부터 장거리 산행에 대해서 관심을 가지게 되었고 그 중 불수사도북(불암산, 수락산, 사패산, 도봉산, 북한산) 종주를 알게 되어 이것이 고어텍스와의 인연으로 이어진다.
또 이야기는 삼천포로... 지리산 종주이야기는 다음으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