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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윤달원 Jan 01. 2021

부관 - 조건과 기한

판례로 하는 이야기 


대법원 2020. 12. 24. 선고 2019다293098 판결

보조금 수령을 부관으로 하는 임금지급약정에 관한 사건



[적어보는 글]


법률행위의 부관(Nebenbestimmung)이란 법률행위의 일반적 효과를 제한하기 위하여, 당사자의 의사에 의하여, 법률행위와 동시에, 그 법률행위의 내용으로 부가시킨 약관을 말한다(김상용/전경운, 민법총칙, 2018, 705면). 법률행위의 부관에는 조건(Bedingung), 기한(Befristung), 부담(Auflage)이 있다. 이 중 우리 민법은 조건과 기한에 관해서만 일반적 규정을 두고 있고, 부담에 관해서는 부담부 증여(제561조), 부담부 유증(제1088조)과 같이 특별규정을 두고 있다.


조건이란 일반적으로 법률행위의 효력 발생 또는 소멸을 장래의 불확실한 사실의 성취 여부에 의존케 하는 법률행위의 부관이며, 기한이란 당사자의 의사표시에 의하여 법률행위의 효력의 발생, 소멸 또는 채무의 이행을 장래 실현되거나 또는 도래할 것이 확실한 사실에 의존케 하는 부관을 의미한다.


조건과 기한의 가장 큰 차이점은 조건의 경우 조건으로 정한 사실이 발생할 수도 있고, 발생하지 않을 수도 있지만, 기한의 경우는 기한으로 정해진 사실이 반드시 도래, 즉 발생해야 한다는 것이다. 다만 그 시기가 정해졌느냐의 여부에 따라 확정기한과 불확정기한으로 나누어진다.


이 사건에서는 "피고가 보조금을 지급받으면"이라는 문구가 조건과 기한 중 어느 것으로 이해해야 하는지, 또 근로계약을 체결하면서 "피고가 보조금을 지급받으면"과 같은 부관을 붙일 수가 있는가 하는 것이 문제가 되었다.



1. 먼저 "보조금을 지급받으면"이 조건인지 기한인지에 관하여....


이 사건에서 "보조금을 지급받으면"이란 문구가 조건으로 이해한다면 보조금을 지급받지 못하면 조건이 성취되지 않은 것으로 급여를 지급하지 않아도 된다. 하지만 기한으로 이해한다면 기한은 반드시 도래하여야 하기 때문에 급여를 지급해야 한다는 것이다. 이 사안처럼 불확정기간의 경우 그것이 도래하지 않는다면 도래하지 않기로 확정된 때 또는 상당한 기간이 경과한 때에 기한이 도래한 것으로 보아야 한다.


이에 관하여 원심인 고등법에서는 조건으로 이해하였지만, 대법원은 기한으로 이해하였다.

즉 원심은 ‘피고가 보조금을 지급받으면’이라는 부관은 그 사실이 발생하지 않으면 피고의 월 250만 원의 임금지급 의무도 발생하지 않는다는 의미로서 조건에 해당하고, 그 부관이 근로기준법 등에 반하여 무효라고 할 수 없다고 판단하였다.


하지만 대법원은 아래와 같이 불확정기한으로 판결하였다.

부관이 붙은 법률행위의 경우에, 부관에 표시된 사실이 발생하지 아니하면 채무를 이행하지 아니하여도 된다고 보는 것이 타당한 경우에는 조건으로 보아야 하고, 표시된 사실이 발생한 때에는 물론이고 반대로 발생하지 아니하는 것이 확정된 때에도 그 채무를 이행하여야 한다고 보는 것이 타당한 경우에는 표시된 사실의 발생 여부가 확정되는 것을 불확정기한으로 정한 것으로 보아야 한다. 그리고 이미 부담하고 있는 채무의 변제에 관하여 일정한 사실이 부관으로 붙여진 경우에는, 특별한 사정이 없는 한 그것은 변제기를 유예한 것으로서 그 사실이 발생한 때 또는 발생하지 아니하는 것 으로 확정된 때에 기한이 도래한다(대법원 2003. 8. 19. 선고 2003다24215 판결, 대법원 2015. 10. 15. 선고 2014다53158 판결 등 참조).


그리고 계약의 해석과 관련하여 원칙적인 이야기를....

한편 법률행위의 해석은 당사자가 그 표시행위에 부여한 객관적인 의미를 명백하게 확정하는 것으로서, 당사자 사이에 법률행위의 해석을 둘러싸고 이견이 있어 당사자의 의사해석이 문제 되는 경우에는 법률행위의 내용, 그러한 법률행위가 이루어진 동기와 경위, 법률행위에 의하여 달성하려는 목적, 당사자의 진정한 의사 등을 종합적으로 고찰하여 논리와 경험칙에 따라 합리적으로 해석하여야 한다(대법원 2011. 12. 27. 선고 2011다5134 판결, 대법원 2015. 10. 15. 선고 2014다53158 판결 등 참조).



2. 그 다음은 근로계약을 체결하면서 이와 같은 부관을 붙일 수 있는가 하는 것이 문제가 되었다.


대법원은 근로기준법 제43조 제1항과 제2항과 제15조 제1항을 근거로 이 사건에 붙인 "피고가 보조금을 지급받으면"이란 문구를 불확정기한으로, 그리고 이 부관은 근로기준법을 위반한 것으로 250만 원의 지급약정은 유효지만 "피고인이 보조금을 지급받으면"이란 그 문구는 무효인 것으로 판결하였다.



[참고조문]


* 근로기준법 제15조(이 법을 위반한 근로계약) ① 이 법에서 정하는 기준에 미치지 못하는 근로조건을 정한 근로계약은 그 부분에 한정하여 무효로 한다. <개정 2020. 5. 26.>

② 제1항에 따라 무효로 된 부분은 이 법에서 정한 기준에 따른다.

* 제43조(임금 지급) ① 임금은 통화(通貨)로 직접 근로자에게 그 전액을 지급하여야 한다. 다만, 법령 또는 단체협약에 특별한 규정이 있는 경우에는 임금의 일부를 공제하거나 통화 이외의 것으로 지급할 수 있다.

② 임금은 매월 1회 이상 일정한 날짜를 정하여 지급하여야 한다. 다만, 임시로 지급하는 임금, 수당, 그 밖에 이에 준하는 것 또는 대통령령으로 정하는 임금에 대하여는 그러하지 아니하다.

* 민법 제147조(조건성취의 효과) ① 정지조건있는 법률행위는 조건이 성취한 때로부터 그 효력이 생긴다.

② 해제조건있는 법률행위는 조건이 성취한 때로부터 그 효력을 잃는다.

③ 당사자가 조건성취의 효력을 그 성취전에 소급하게 할 의사를 표시한 때에는 그 의사에 의한다.

* 민법 제152조(기한도래의 효과) ① 시기있는 법률행위는 기한이 도래한 때로부터 그 효력이 생긴다.

② 종기있는 법률행위는 기한이 도래한 때로부터 그 효력을 잃는다.



[사실관계]


가. 피고(OO문화원)는 지방문화원진흥법에 따라 설립된 법인으로서 관할 지방자치단체인 서울 특별시 OO구(이하 ‘OO구’라 한다)로부터 보조금을 받아 왔고, 그 보조금 항목 중에 는 피고 직원 인건비가 포함되어 있다. 그런데 OO구는 2015. 7.경 피고의 대표자 선정 절차에 문제가 있다는 등의 이유로 피고에 대한 보조금 교부를 중단하였다.


나. 피고의 당시 원장이었던 甲은 2015. 10.경 원고 乙에게 피고의 사무국장으로 일 할 것을 제안하면서 “피고의 사무국장 급여 250만 원은 나라에서 나온다. OO구청과의 문제가 끝나면 사무국장 급여 예산이 바로 집행된다. 지금은 당장 급여를 지급할 수 없다. 그러나 조금만 참으면 문화원 자금 사정이 나아지니 그 때 밀린 급여를 지급 하겠다. 당분간은 사무국장으로 일을 할 수 있도록 교통비 또는 국장활동비 명목으로 월 100만 원만 지급하겠다.”라는 취지로 말하였고, 원고는 甲의 제안을 받아들였 다.


다. 이에 피고는 2015. 10. 5. 원고를 피고의 사무국장으로 임명하였고, 그 때부터 2017. 7. 31.까지 원고에게 임금으로 매월 100만 원(다만 2015. 11.경까지는 매월 50만 원)을 지급하였다. 한편 피고는 보조금을 다시 지급받으면 원고에게 나머지 월 250만 원의 임금을 지급하겠다고 하였으나, 피고가 원고에게 그 돈을 실제 지급한 바 없다.



[원심] 서울고등법원 2019. 11. 12. 선고 2018나2071008 판결


피고가 강북구로부터 보조금을 지급받으면 원고에게 나머지 월 250만 원의 임금을 지급하겠다고 약정하였다고 판단한 후 ‘피고가 보조금을 지급받으면’이라는 부관은 그 사실이 발생하지 않으면 피고의 월 250만 원의 임금지급 의무도 발생하지 않는다는 의미로서 조건에 해당하고, 그 부관이 근로기준법 등에 반하여 무효라고 할 수 없다고 판단하였다.


나아가 위 부관에서 정한 조건의 성취 여부에 관한 원고의 주장, 증명이 없다는 이유로, 원고의 청구 중 월 250만 원의 임금 청구 부분을 기각하였다.



[대법원] 원심판결 중 원고 패소 부분 파기, 환송


가. 조건부 임금지급약정인지 여부


1) 부관이 붙은 법률행위의 경우에, 부관에 표시된 사실이 발생하지 아니하면 채무를 이행하지 아니하여도 된다고 보는 것이 타당한 경우에는 조건으로 보아야 하고, 표시된 사실이 발생한 때에는 물론이고 반대로 발생하지 아니하는 것이 확정된 때에도 그 채무를 이행하여야 한다고 보는 것이 타당한 경우에는 표시된 사실의 발생 여부가 확정되는 것을 불확정기한으로 정한 것으로 보아야 한다. 그리고 이미 부담하고 있는 채무의 변제에 관하여 일정한 사실이 부관으로 붙여진 경우에는, 특별한 사정이 없는 한 그것은 변제기를 유예한 것으로서 그 사실이 발생한 때 또는 발생하지 아니하는 것 으로 확정된 때에 기한이 도래한다(대법원 2003. 8. 19. 선고 2003다24215 판결, 대법원 2015. 10. 15. 선고 2014다53158 판결 등 참조).


한편 법률행위의 해석은 당사자가 그 표시행위에 부여한 객관적인 의미를 명백하게 확정하는 것으로서, 당사자 사이에 법률행위의 해석을 둘러싸고 이견이 있어 당사자의 의사해석이 문제 되는 경우에는 법률행위의 내용, 그러한 법률행위가 이루어진 동기와 경위, 법률행위에 의하여 달성하려는 목적, 당사자의 진정한 의사 등을 종합적으로 고찰하여 논리와 경험칙에 따라 합리적으로 해석하여야 한다(대법원 2011. 12. 27. 선고 2011다5134 판결, 대법원 2015. 10. 15. 선고 2014다53158 판결 등 참조).


2) 앞에서 본 사실관계를 위와 같은 법리에 비추어 살펴본다.


가) 원고가 피고의 사무국장으로서 피고에게 근로를 제공한 이상 피고에 대해 임금 채권을 가지는데, 피고가 원고를 채용할 때 원고에게 ‘보조금을 다시 지급받으면 그 때 밀린 급여 또는 나머지 월 250만 원을 지급하겠다’는 취지로 설명했던 반면, 기록상 원고가 ‘피고가 보조금을 받지 못하면 원고에게 월 250만 원의 임금을 지급하지 않아도 좋다’는 취지의 의사를 표시하였다고 볼 만한 뚜렷한 사정이 없다.


나) 또한 OO구가 피고에게 보조금 교부를 중단한 사유가 피고의 대표자 선정 절차의 문제에서 비롯된 것으로 보이므로, 피고가 보조금을 받을 수 있는지 여부는 주로 피고의 성의나 노력에 의해 좌우된다고 할 수 있다.


다) 반면 원심이 들고 있는 보조금 편성, 집행 방법이나 피고의 재정 상황에 관한 사정만으로는 원, 피고의 의사가 ‘피고가 보조금을 지급받지 못하면 원고에게 약정 임금을 지급하지 않아도 된다’는 것이라고 보기 어렵다.


라) 결국 ‘피고가 보조금을 지급받으면’이라는 사유는, 피고가 보조금을 지급받지 못하면 원고에게 약정 임금을 지급하지 않아도 된다는 정지조건이라기보다는 피고의 보조금 수령이라는 사유가 발생하는 때는 물론이고 상당한 기간 내에 그 사유가 발생 하지 않은 때에도 약정 임금을 지급해야 한다는 불확정기한으로 봄이 타당하다.


3) 그런데도 원심은 그 판시와 같은 사정만으로 피고가 보조금을 지급받는 것을 조건으로 원고에게 월 250만 원의 임금을 지급하기로 하였다고 판단하였다. 이러한 원심의 판단에는 부관이 붙은 법률행위의 해석과 조건에 관한 법리를 오해하여 필요한 심리를 다하지 않음으로써 판결에 영향을 미친 잘못이 있다.



나. 부관의 무효 여부


1) 근로기준법 제43조에 의하면, 임금은 통화로 직접 근로자에게 그 전액을 지급하여야 하고(제1항), 매월 1회 이상 일정한 날짜를 정하여 지급하여야 한다(제2항). 이는 사용자로 하여금 매월 일정하게 정해진 기일에 근로자에게 근로의 대가 전부를 직접 지급하게 강제함으로써 근로자의 생활안정을 도모하려는 데에 그 입법 취지가 있다 (대법원 2017. 7. 11. 선고 2013도7896 판결 등 참조). 한편 근로기준법 제15조 제1항은 근로기준법에서 정하는 기준에 미치지 못하는 근로조건을 정한 근로계약은 그 부분에 한하여 무효로 한다고 정하고 있으므로, 임금지급약정에 붙은 부관이 근로기준법 제43조에 반하여 허용될 수 없다면 그 부관만 무효이고, 나머지 임금지급약정은 유효하다고 보아야 한다.


2) 앞에서 본 사실관계와 기록을 통해 알 수 있는 다음과 같은 사정을 위와 같은 법리에 비추어 살펴보면, 원고와 피고 사이의 근로계약 중 월 250만 원의 임금지급약정에 부가된 ‘피고의 보조금 수령’이라는 불확정기한은 근로기준법 제43조의 입법 취지에 반하여 허용될 수 없다고 봄이 타당하다. 따라서 ‘피고의 보조금 수령’이라는 불확정기한은 무효이고, 나머지 월 250만 원의 임금지급약정은 유효하다.


가) 피고가 보조금을 수령하면 원고에게 지급하기로 한 임금은 월 단위 기본급 성격의 돈으로, 출근 성적, 근속, 성과 등에 따라 지급하기로 한 수당이 아니다.


나) 원고의 전임 사무국장이었던 丙의 월급이 355만 원 정도였고, 사무국장 보다 직급이 낮은 丁 과장의 월급이 315만 원 정도였던 사정에 비추어 보면, 사무 국장인 원고의 월급 350만 원은 합리적인 수준으로 보인다.


다) 피고의 보조금 수령을 부관으로 하여 피고가 지급하기로 한 임금은 월 250만 원으로서 전체 임금액의 70%를 넘는다. 피고가 원고에게 지급해 온 월 100만 원의 임금은 최저임금액에도 미달되는 수준이다.


라) OO구가 피고에게 보조금 교부를 중단한 사유는 피고의 대표자 선정 절차의 문제에서 비롯된 것으로 보이므로, ‘피고의 보조금 수령’이라는 사실의 실현은 피고의 지배영역 안에 있는 것인 반면 원고가 그 사실의 실현에 개입하는 것은 사실상 불 가능하다.


마) 이러한 사정을 고려하면 피고가 보조금 수령을 불확정기한으로 하여 원고에게 월 250만 원의 임금을 지급하기로 한 것은 임금을 생계유지의 수단으로 삼는 근로자인 원고의 생활을 매우 불안정하게 만든 것으로 보인다.


3) 그런데도 원심은 그 판시와 같은 사정만으로 피고가 보조금을 지급받으면 원고에게 월 250만 원의 임금을 지급하기로 한 부관이 무효가 아니라고 판단하였다. 이러한 원심의 판단에는 임금지급약정에 붙은 부관의 무효에 관한 법리를 오해하여 필요한 심리를 다하지 않음으로써 판결에 영향을 미친 잘못이 있다. 이를 지적하는 취지의 상고이유 주장은 이유 있다.



4. 결론


그러므로 원심판결 중 원고 패소 부분을 파기하고, 이 부분 사건을 다시 심리, 판단하도록 원심법원에 환송하기로 하여, 관여 대법관의 일치된 의견으로 주문과 같이 판결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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