판례로 하는 이야기
유책배우자의 이혼청구
(대법원 2020. 11. 12. 선고 2020므11818 판결)
[사실관계 및 경과]
판결문으로는 구체적인 사실관계를 알 수가 없어 구체적인 내용은 생략한다.
[원심] 의정부지방법원 2020. 5. 20. 선고 2020르7124 판결
유책배우자의 이혼청구를 예외적으로 허용할 수 있는지 여부 및 판단 기준에 관한 대법원 2015. 9. 15. 선고 2013므568 전원합의체 판결의 판시를 원용한 다음, 이 사건 혼인은 회복할 수 없이 파탄되었고 피고보다는 원고에게 혼인관계 파탄에 대한 책임이 더 있는 것으로 판단하였다.
하지만 다음과 같은 이유로 유책배우자의 이혼청구를 인정하였다.
① 원고와 피고는 혼인기간 중 총 10여 차례에 이를 정도로 협의이혼 절차 또는 이혼소송 절차를 신청 내지 청구하였다가 취하하는 행위를 반복하는 등 더 이상 부부간의 문제를 상호 원만하게 해결할 수 없는 상황에 이르러 정상적인 부부관계의 회복이 불가능한 것으로 보이는 점,
② 원고와 피고는 이 사건 소송 계속 중에도 상호 간은 물론 피고의 원고 어머니에 대한 폭언 등을 이유로 지속적으로 갈등하였고, 사건본인들을 양육하던 피고는 2019. 10.경부터 원고의 면접교섭 요구를 거부하였으며 제1심부터 원심에 이르기까지 양육환경조사는 물론 부부관계의 회복을 위한 부부상담이 제대로 이루어지지 않고 있는바, 원고와 피고 사이의 분쟁이 부부의 문제를 넘어 사건본인들의 정서에 악영향을 주는 등 사건본인들의 복리를 심각하게 저해하고 있는 것으로 보이는 점,
③ 결국 상호간에 애정이나 존중 등이 없는 형식적인 혼인관계를 유지하는 것은 원고와 피고 사이의 문제를 해결하기보다 새로운 문제의 원인이 되거나 동일한 문제가 계속되어 쌍방에게 크나큰 고통이 될 수밖에 없어 보이는 점 등
여러 사정들을 종합하면, 유책배우자인 원고의 피고에 대한 이혼청구를 허용하여도 혼인과 가족제도를 형해화할 우려가 없고, 사회의 도덕관‧윤리관에도 반하지 아니한다.
[대법원]
피고가 혼인관계를 회복하기 위한 노력을 기울이지 않으며, 혼인관계 지속이 미성년자녀의 복지를 해한다고 볼만한 사정까지 존재하는 이 사건에서, 유책배우자인 원고의 이혼 청구를 허용할 특별한 사정을 인정한 원심의 판단에 상고이유 주장과 같이 논리와 경험의 법칙을 위반하여 자유심증주의의 한계를 벗어나거나 민법 제840조 제6호, 유책배우자의 이혼청구 등에 관한 법리오해, 심리미진, 부부상담 및 양육환경조사 절차 진행에 있어서의 설명과 고지의무 위반, 자유재량의 한계 일탈 등의 잘못이 없다.
[관련규정]
* 민법 제840조(재판상 이혼원인) 부부의 일방은 다음 각호의 사유가 있는 경우에는 가정법원에 이혼을 청구할 수 있다. <개정 1990. 1. 13.>
1. 배우자에 부정한 행위가 있었을 때
2. 배우자가 악의로 다른 일방을 유기한 때
3. 배우자 또는 그 직계존속으로부터 심히 부당한 대우를 받았을 때
4. 자기의 직계존속이 배우자로부터 심히 부당한 대우를 받았을 때
5. 배우자의 생사가 3년 이상 분명하지 아니한 때
6. 기타 혼인을 계속하기 어려운 중대한 사유가 있을 때
[적어보는 글]
혼인관계 파탄에 책임이 있는 배우자(이하 '유책배우자'라 한다.)의 이혼청구를 우리 법원은 받아들이지 않고 있다. 민법 제840조 제6호의 혼인을 계속하기 어려운 중대한 사유가 있어도, 그에 대하여 책임있는 유책배우자가 하는 이혼청구는 받아들이지 않는 것이다.
이에 대하여는 혼인관계를 더이상 지속할 수 없을 정도로 혼인관계가 파탄이 났음에도 이혼을 인정하지 않는 것은 당사자에게 원치 않는 혼인관계의 지속을 강요하는 측면이 있기 때문에 논란은 꾸준이 이어지고 있다.
여기서는 현재 대법원의 태도가 옳고 그름보다는 대법원이 예외적으로 유책배우자의 이혼청구를 인정하는 기준을 알아보려고 한다.
혼인관계가 파탄된 경우에 유책배우자의 이혼을 인정할 것인가에 대해서는 파탄주의와 유책주의의 두 가지 입법례로 크게 나눠볼 수 있다.
파탄주의라 함은 혼인관계가 더이상 지속할 수 없을 정도로 파탄이 난 경우에는 그 원인이 누구에게 있는지를 묻지 않고 이혼을 인정하는 방식이고, 유책주의는 혼인관계 파탄에 책임이 있는 배우자의 이혼청구는 인정하지 않고 그 상대방 배우자의 이혼청구만 인정하는 방식이다.
파탄주의와 유책주의 두 가지 방식 중 세계적인 추세는 파탄주의 이혼방식을 택하고 있다. 하지만 우리나라는 아직 유책주의를 원칙으로 하고 있고, 원칙으로 하고 있다는 이야기는 유책주의를 취하되 예외를 인정하고 있다는 의미이다. 이런 의미에서 우리 대법원의 태도를 소극적 파탄주의라고도 한다.
그럼 어떠한 경우에 예외적으로 유책배우자의 이혼청구를 받아들이는가?
이에 관해서는 위 판결에서도 인용된 2015년의 2013므568 판결에서 대법원의 기준을 알 수 있다.
우선 대법원이 아직 유책주의를 취하고 있는 이유는 다음과 같다.
(1) 이혼에 관하여 파탄주의를 채택하고 있는 여러 나라의 이혼법제는 우리나라와 달리 재판상 이혼만을 인정하고 있을 뿐 협의상 이혼을 인정하지 아니하고 있다. 우리나라에서는 유책배우자라 하더라도 상대방 배우자와 협의를 통하여 이혼을 할 수 있는 길이 열려 있다. 이는 유책배우자라도 진솔한 마음과 충분한 보상으로 상대방을 설득함으로써 이혼할 수 있는 방도가 있음을 뜻하므로, 유책배우자의 행복추구권을 위하여 재판상 이혼원인에 있어서까지 파탄주의를 도입하여야 할 필연적인 이유가 있는 것은 아니다.
(2) 우리나라에는 파탄주의의 한계나 기준, 그리고 이혼 후 상대방에 대한 부양적 책임 등에 관해 아무런 법률 조항을 두고 있지 아니하다. 따라서 유책배우자의 상대방을 보호할 입법적인 조치가 마련되어 있지 아니한 현 단계에서 파탄주의를 취하여 유책배우자의 이혼청구를 널리 인정하는 경우 유책배우자의 행복을 위해 상대방이 일방적으로 희생되는 결과가 될 위험이 크다.
(3) 유책배우자의 이혼청구를 허용하지 아니하고 있는 데에는 중혼관계에 처하게 된 법률상 배우자의 축출이혼을 방지하려는 의도도 있는데, 여러 나라에서 간통죄를 폐지하는 대신 중혼에 대한 처벌규정을 두고 있는 것에 비추어 보면 이에 대한 아무런 대책 없이 파탄주의를 도입한다면 법률이 금지하는 중혼을 결과적으로 인정하게 될 위험이 있다.
(4) 가족과 혼인생활에 관한 우리 사회의 가치관이 크게 변화하였고 여성의 사회 진출이 대폭 증가하였더라도 우리 사회가 취업, 임금, 자녀양육 등 사회경제의 모든 영역에서 양성평등이 실현되었다고 보기에는 아직 미흡한 것이 현실이다. 그리고 우리나라에서 이혼율이 급증하고 이혼에 대한 국민의 인식이 크게 변화한 것이 사실이더라도 이는 역설적으로 혼인과 가정생활에 대한 보호의 필요성이 그만큼 커졌다는 방증이고, 유책배우자의 이혼청구로 인하여 극심한 정신적 고통을 받거나 생계유지가 곤란한 경우가 엄연히 존재하는 현실을 외면해서도 아니 될 것이다.
그러면 예외적으로 유책배우자의 이혼청구를 받아들이는 기준은 무엇인가?
(1) 유책배우자의 책임의 소멸
유책배우자의 이혼청구를 허용하지 아니하는 것은 혼인제도가 요구하는 도덕성에 배치되고 신의성실의 원칙에 반하는 결과를 방지하려는 데 있으므로, 혼인제도가 추구하는 이상과 신의성실의 원칙에 비추어 보더라도 책임이 반드시 이혼청구를 배척해야 할 정도로 남아 있지 아니한 경우에는 그러한 배우자의 이혼청구는 혼인과 가족제도를 형해화할 우려가 없고 사회의 도덕관·윤리관에도 반하지 아니하므로 허용될 수 있다.
(2) 상대방 배우자 및 자녀에 대한 보호와 배려
상대방 배우자도 혼인을 계속할 의사가 없어 일방의 의사에 따른 이혼 내지 축출이혼의 염려가 없는 경우는 물론, 나아가 이혼을 청구하는 배우자의 유책성을 상쇄할 정도로 상대방 배우자 및 자녀에 대한 보호와 배려가 이루어진 경우, 세월의 경과에 따라 혼인파탄 당시 현저하였던 유책배우자의 유책성과 상대방 배우자가 받은 정신적 고통이 점차 약화되어 쌍방의 책임의 경중을 엄밀히 따지는 것이 더 이상 무의미할 정도가 된 경우 등과 같이 혼인생활의 파탄에 대한 유책성이 이혼청구를 배척해야 할 정도로 남아 있지 아니한 특별한 사정이 있는 경우에는 예외적으로 유책배우자의 이혼청구를 허용할 수 있다.
대법원은 혼인관계가 파탄되어 혼인관계라고 볼만한 것이 없어 일방적인 이혼 내지 축출이혼의 염려가 없을 뿐만 아니라 상대방 배우자 및 자연에 대한 보호와 배려가 이루어져 혼인생활의 파탄에 대한 유책성이 이혼청구를 배척해야 할 정도로 남아 있지 않은 경우에는 예외적으로 유책배우자의 이혼청구를 받아주고 있는 것이다.
유책배우자이 이혼청구를 예외적으로 허용할 것인지에 관한 판단기준에 대하여는 다음과 같은 사정을 고려하여야 한다.
* 유책배우자 책임의 태양·정도,
* 상대방 배우자의 혼인계속의사 및 유책배우자에 대한 감정,
* 당사자의 연령,
* 혼인생활의 기간과 혼인 후의 구체적인 생활관계,
* 별거기간,
* 부부간의 별거 후에 형성된 생활관계,
* 혼인생활의 파탄 후 여러 사정의 변경 여부,
* 이혼이 인정될 경우의 상대방 배우자의 정신적·사회적·경제적 상태와 생활보장의 정도,
* 미성년 자녀의 양육·교육·복지의 상황,
* 그 밖의 혼인관계의 여러 사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