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정사를 다룬 본격 법정 스릴러
외딴 별장에서 한 남자가 추락해 사망한다. 유일한 목격자는 시각장애인인 아들. 현장에 있었던 아내와 함께 법정에서 그날의 일들을 밝혀내야만 한다.
영화를 선택할 때 예고편도 잘 보지 않는 나로서는 적잖게 당황스러운 내용이었다.
알 수 없는 관계의 두 여자가 서로 인터뷰하는 형식으로 시작하는 이 영화는 친절한 설명 없이 시각장애인인 아들, 그리고 남자의 죽음을 차례대로 보여준다.
하지만 <추락의 해부>는 여느 미스터리 스릴러 영화처럼 사실에 초점을 두는 게 아닌 이야기에 초점을 둔다. 저 남자가 추락한 것이 누군가에 의한 타살인지, 아니면 자살인지를 밝혀내기 위해 남자와 얽힌 가족의 이야기에 집중한다.
그래서 그런지 대부분의 장면은 법적 다툼을 하고 있는 그들을 보여준다. 초반 이후 남편을 잃은 가족의 슬픔은 온데간데없다. 죽은 남자와의 추억 중 가장 자신에게 유리한 기억을 꺼내 내뱉고, 혹은 번복한다.
등장인물 모두들 자기 일을 하고 있을 뿐이다. 경찰도 판사도 검사도 변호사도. 남자의 죽음의 이유를 밝히기 위해 온 힘을 다한다. 하지만 죽은 자는 말이 없는 법. 정황상 의심은 산 자인 아내에게 몰린다.
그 과정에서 아내는 물론 아이까지 지난날의 모든 이야기를 남김없이 이야기해야만 한다.
이 영화는 어느 누구 한 명에게 편향되지 않는다. 심지어 미성년자인 아이에게도 편향되지 않는다.
이로써 관객은 누가 잘하고 잘못했는지에 집중하기보다는 그들의 이야기에 집중하게 된다. 영화가 지향하고자 하는 목적 자체가 다른 것이다.
150분에 육박하는 러닝타임 간에 끊임없이 말싸움이 오고 가고, 그게 참 묘하다.
사람이 살면서 할 수 있는 이런저런 선택들, 그리고 그 선택으로 인해 벌어진 일들. 내뱉은 말들과 그 영향들.
어떤 실수와 그로 인해 받은 상처, 그 상처를 후비는 말들. 특이한 점은 그 모든 선택과 말들이 이 영화에서는 타살이냐, 자살이냐를 판단하는 사람들에게 중요한 단서가 되고 있다는 점이다.
영화 속에서 과학적 분석은 너무 양면적이어서 필요가 없다. 직접증거? 없다.
그렇기 때문에 남편이 죽은 상황에서 아내는 자신이 남편을 죽이지 않았다는 사실을 입증하기 위해 남편이 평상시에 자살을 할 만한 정신 상태였다는 것을 설득시켜야만 한다.
죽은 남편이 녹음해놓은 싸움 녹취록이 법정에 울려 퍼지고 아들은 이를 모두 듣고 있다. 녹취록 내용에는 검사의 질문이 꼬리에 꼬리를 문다.
말 그대로 그들은 법정에 서서 ‘해부’ 당하고 있는 것이다.
남자의 죽음은 혼자만의 죽음이 아니었다.
그러나 죽은 자는 말이 없고 법은 존재한다. 누군가의 죽음에는 무조건 이유가 따르며 그것을 밝혀내는 것은 제3자의 몫이다.
1년이 넘는 재판이 끝난 후, 그들에게 남겨진 것은 무엇이었을까. 법의 역할은 죽은 자를 지키는 것일까 산자를 지키는 것일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