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대 중반쯤에 취직한 뒤 5~6년 정도 회사 생활을 했습니다. 회사를 다니면서도 끊임없이 이 회사 다음에 대해서 생각하게 됩니다. 평생직장이라는 개념이 희미해지는 현대 사회에 어쩌면 대부분의 직장인들이 고뇌하는 부분이지 않을까 합니다. 불안함을 껴안고 5년을 다닌 후에야 이 회사를 나간 뒤 아주 새로운 것에 도전해 볼 생각을 했습니다. 그래서 올해 초 덜컥 대학교 편입 지원을 했습니다.
2000년대에 처음 대학교에 입학하고 나서 남들이 하니 나도 으레 해야지 하는 마음으로 1년을 휴학하고, 또 반년 졸업을 유예해서 꽤 오랫동안 대학생의 신분으로 지냈습니다. 항상 지나고 나면 그 시절이 미화되고 그립기 마련이라지만 사회에 나와 직장생활을 몇 년간 하고 나니 그 시절이 참 좋았던 것 같았습니다. 뭐가 좋았는지 정확하게 기억은 나지 않는데. 그랬던 것 같습니다. 또 한 편으로는 다시 그 시절로 돌아간다면 좀 더 생산적으로 열심히 대학생활을 할 수 있을 텐데 하고 생각했습니다. 지금 돌이켜 보면 좀 아쉬움이 남는 생활이거든요. 다시 그 시절로 돌아가면 이번엔 잘할 수 있지 않을까 했습니다.
다시 또 대학생이 되기로 했을 때 이미 30대가 된 제가 고려할 상황들이 좀 있었죠. 그래서 직장 생활을 병행하며 공부도 하기로 마음먹고 사이버 대학교에 지원했습니다. 지원할 때는 열정이 넘쳤습니다. 편입 지원서를 며칠 고민해서 열심히 써서 설레고 초조한 마음으로 지원했거든요.
편입 확정 후에 새 학교에 등록을 하고 새 학기 수업을 신청할 때까지도 열정의 불꽃은 꺼지지 않고 있었습니다. 교수님들이 미리 올려주신 강의 자료, 목차, 내용들을 훑어보고 여러 인터넷 카페를 돌아다니면서 어떤 수업을 수강하면 좋을까 고민에 고민을 거듭했습니다. 이 과목과 저 과목은 한 학기에 몰아 들어서는 안 된다는 선배님들의 충고가 보였지만 신경 쓰지 않았습니다. 다 할 수 있을 것 같았거든요. 어차피 내가 저지른 일을 수습하는 건 나니까 미래의 내가 어떻게든 알아서 하겠지. 나에 대한 믿음과 자신감으로 과거의 나는 남들의 충고보다는 내 가슴이 시키는 대로 수강 신청을 마쳤습니다.
사람은 쉽게 변하지 않는다는 변하지 않는 진리
간과했습니다. 나의 생활환경과 방식은 스무 살 때와는 여러모로 많이 달라졌지만 사람의 본성이라는 것은 쉽게 바뀌지가 않았습니다. 중학생 때부터 이어진 유구한 벼락치기의 역사가 2020년이 됐다고 하루아침에 바뀌는 것은 아니더라고요.
사이버 대학교의 대학생들이 한 학기를 보내는 방식은 이렇습니다. 먼저 학기가 시작되기 전 자신이 원하는 수업을 신청합니다. 수강 신청에 성공하면 그때부터 학교의 커리큘럼에 따라 매주 업로드되는 인터넷 강의를 수강합니다. 출석률을 인정해주는 기간이 있기 때문에 그 기간 안에 인터넷 강의를 들어야 합니다. 교수님이 내주시는 과제는 제출 기한에 맞춰 웹사이트에 업로드합니다. 그리고 정해진 시험 기간 안에 인터넷으로 시험을 칩니다. 학교 특성상 시험은 오픈북 형태입니다.
공교롭게도 이번에 코로나 사태가 터지면서 이런 방식으로 수업을 수강한 대학생들이 많았을 것입니다. 그래서 대부분의 학생들이 저와 비슷하게 불량한 학교 생활을 했을 것이라 자기 합리화를 합니다. 아무튼 나에게는 인터넷 강의를 밀리지 않고 제 시간 안에 바로바로 듣는다는 것은 불가능에 가까웠습니다. 편입 지원을 하고 수강 신청을 할 때까지만 해도 타오르던 열정이 성냥팔이 소녀의 촛불처럼 후룩 꺼졌습니다. 아니, 누가 이따위로 빡세게 수강 신청을 했을까? 한, 두 달 전 과거의 나였죠. 내가 나를 탓하겠습니까. 이미 일어난 일이고 내 얼굴에 침 뱉기인데.
일단 일이 벌어지고 나면 그때는 이미 누구 탓이네 따질 것도 없구나. 내가 저지른 일이라서 내 탓을 못하고 그냥 받아들이니 마음이 금방 편하네. 앞으로는 이미 벌어진 일들은 그냥 초연하게 받아들이는 게 정신 건강에 좋겠다.
사람은 쉽게 변하지 않는구나. 처음엔 분명 뭐든지 열심히 할 각오가 있었는데 이렇게 금방 허무하게 예전의 나로 사네.
아니지. 주경야독이라는 말이 괜히 있는 게 아니지. 그만큼 대단하고 힘든 일이니까 사자성어로까지 나온 것 아니겠어. 주경야독하는 내가 대단하다.
아니, 주경야독이라는 것이 애초에 가능한 일일까? 일단 저질러 놓았으니 꾸역꾸역 하기는 하는데 이게 잘 되고 있는 건지 어쩐 건지.
시험공부와 과제를 벼락치기로 몰아하면서 열정의 불꽃 대신 머릿속 잡생각들이 어지럽게 터집니다. 그래도 결론적으로 한 학기를 무사히 마쳤으니 과정이 좀 불성실했더라도 성과와 성취가 있습니다. 시험 기간 머릿속에 터지던 생각들도 이렇게 적어 놓으니까 사소하게나마 깨달음이라도 얻는 것 같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