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시 대학생 1년 차
"여보. 공부하는 중에 미안한데 뭐 하나 물어봐도 돼?"
나는 다시 사이버 대학교에 편입해서 퇴근 후에 짬을 내서 인터넷으로 수업을 듣고 있습니다. 나의 배우자는 다음 달에 있을 지도사 자격증 취득 시험을 위해서 퇴근 후에 공부를 하고 있습니다. 밤에 나란히 책상 앞에 앉아서 각자의 공부를 하는 중에 지난 기출 시험 문제를 2번째 다시 풀고 있는 배우자에게 말을 꺼냈습니다. 배우자가 공부를 방해받은 것에 짜증 내는 기색도 없이 응, 뭐야? 하고 다정하게 되물었습니다.
"여보 내가 지금 배우고 있는 것 중에 기본 원리로 베르누이 효과라는 게 나왔는데. 난 이게 도저히 이해가 안 돼."
배우자는 (내가 생각하기에) 똑똑한 편입니다. 새로운 무언가를 알아보고 공부하는 것도 좋아합니다. 깊이가 있지는 않지만 넓고 얕은 지식을 갖는 것도 자랑하는 것도 좋아합니다. 본인이 하는 공부에 방해는 됐겠지만 베르누이 효과라는 자체에 흥미가 생기기도 했을 것이고, 내가 자신에게 도움을 청하는 게 좀 신나기도 했을 것입니다. 내가 자기를 똑똑하게 여겨서 질문하는 걸 알았을 테니까요. 고개를 빼서 내가 공부하던 것을 보길래 설명을 덧붙였습니다.
"이거 봐. 속력이 빨라지면 압력이 낮아진대. 압력이 낮아지면 속력이 빨라지는 게 베르누이 효과야."
(* 베르누이의 정리란?
1700년대에 살았던 스위스의 수학자이자 과학자인 베르누이는 유체(공기나 물처럼 흐를 수 있는 기체나 액체)는 빠르게 흐르면 압력이 감소하고, 느리게 흐르면 압력이 증가한다는 법칙을 알아냈어. 그래서 유체가 좁은 곳을 통과할 때에는 속력이 빨라지기 때문에 압력이 감소하고, 넓은 곳을 통과할 때에는 속력이 느려지기 때문에 압력이 증가하지. 그의 이름을 따서 이 원리를 '베르누이의 정리'라고 해.
출처: [네이버 지식백과] [생활 속 과학 원리] 베르누이의 정리 (과학왕의 초간단 실험노트2, 2009. 3. 24., 박미애, 박재원, 이리) - https://terms.naver.com/entry.nhn?docId=2059658&cid=47316&categoryId=47316)
도통 이해가 안 갑니다. 저걸 이해를 못해서 한바탕 배우자와 토론 아닌 토론을 벌이고 배우자가 설득에 가까운 알기 쉬운 설명을 해줬는데도 온전히 이해할 수 없었습니다. 지금 봐도 또 아리송하네요. 그러니까 내게 고착화돼버린 생각은 이겁니다.
화단에 물을 줄 때 수도꼭지에 연결한 호스로 물을 더 빨리 멀리 쏘아내려면 호스 끝부분을 손으로 눌러서 좀 막잖아요. 그러면 거기에 수압이 더 많이 걸려서 물이 쭉 나가잖아요. 그러니까 압력이 높아져야 속력이 빨라지는 거 아닐까요? 그런데 이걸 반대로, 내가 물을 내보내는 입장이 아니고, 쭉 나아가는 물에 입장에서 보면 쭉 나가려면 압력, 그러니까 저항을 덜 받아야 하잖아요. 그러니까 압력이 낮아져야 속력이 빨라진다는 겁니다.
이걸 이해하는 데 거의 30분을 썼습니다. 그래도 아직 이해가 잘 안 가는 부분이 있어요. 더 설명하면 내가 너무 아둔해 보이니까 여기서는 그만 말하겠습니다. 아무튼 이런 아둔한 나를 인내심을 가지고 차근차근 여러 가지 방법으로 이해시키려 한 배우자는 참 대단합니다. 시험 점수 잘 못 받는 사람들 보면 이상하게 자기 고집이 있잖아요. 출제자의 의도를 파악하지 못하거나 파악하려 하지 않고 혼자 창의적인 생각에 갇혀 헤어 나오지 못하는 친구들. 고집을 버리고 관점을 좀 바꾸는 게 이렇게나 어렵습니다.
좀 아리송하긴 하지만 배우자를 더 붙들고 이야기하기도 어려워 그 후 다시 각자의 공부를 시작했습니다. 좀 미안해서 내 공부가 먼저 끝났지만 문제를 다 풀고 점수를 매기는 배우자의 곁에서 알짱거렸습니다. 배우자는 왜 틀렸던 걸 또 똑같이 틀리는 걸까, 하며 심각한 표정으로 문제에 동그라미를 치거나 빗금을 그었습니다. 그 날의 공부는 그렇게 일단락되고 침대에 누웠습니다. 배우자가 또 왜 틀렸던 걸 똑같이 틀릴까? 소리를 반복했습니다. 내가 그랬죠.
"여보. 한 번 고착화된 생각을 바꾸는 건 너무 어려운 거야. 내가.. 베르누이를 이해할 수 없었던 것처럼. 여보가 한 번 정답이라고 생각한 걸 바꾸는 건.. 너무 어려운 거야. 여보.. 나는 아직도.. 베르누이 효과가 이해가 안 돼."
30분의 토론을 말짱 도루묵으로 만든 나의 발언에 배우자는 헛웃음을 지었습니다. 자신이 이미 맞다고 정한 생각을 바꾸는 것은 얼마나 어려운 일일까요. 나는 내가 고집쟁이에 융통성이 다소 없다는 것을 잘 알고 있었지만 이번에 또 한 번 알게 됐습니다. 나의 배우자가 (내 기준에서는) 똑똑하고 지식이 많은 것도 열린 마음을 가지고 융통성이 있기 때문일 거라는 생각이 듭니다.
그렇다고 또 주관 없이 창의력을 발전시킬 수야 있겠습니까. 사람이 적당히 고집도 있고 그런 거지. 아, 이런 자기 합리화가 베르누이와 나 사이의 벽을 만드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