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릴러 영화는 참 묘한 매력이 있다. 그래서 평소 즐겨보는 장르 중 하나다. 감독이 미리 심어놓은 복선들을 연결해 퍼즐을 맞추다 보면 마치 내가 탐정이 된 것처럼 사건을 해결하는 쾌감에 빠진다. 내가 예측한 대로 영화가 진행되면 ‘이것 봐! 내 생각이 맞았어’라는 승리감에 도취되고, 설령 예상 밖의 반전에 허를 찔린다 해도 감독의 재능에 감탄하며 박수를 친다. 그래서 웬만한 스릴러 영화는 꼭 찾아서 보곤 했는데, 요즘엔 예전처럼 스릴러 명작들을 자주 만나기 어렵다. 이런 나의 아쉬움을 조금이나마 위로해 준 영화가 있으니, 바로 <지푸라기라도 잡고 싶은 짐승들>이다.
전도연과 정우성! 그 이름만으로도 기대감을 불러일으키는 두 배우에 배성재, 윤여정, 정만식, 진경, 정가람, 신현빈 등 연기파 배우들이 총출동했던 영화인지라 개봉 전부터 화제를 일으켰던 <지푸라기라도 잡고 싶은 짐승들>. 캐스팅만 보면 정말 환상적이지만, 요즘엔 화려한 캐스팅이 뒤통수를 더 잘 치기 때문에 기대감은 살포시 내려놓았다. 그래서일까? 어느 정도 결말이 예상되긴 했지만 108분의 시간이 아깝지 않은 영화였다.
빠듯한 집안의 가장인 중만(배성재)은 호텔 사우나 마감 청소를 하며 생계를 이어가고 있다. 치매의 노모까지 모셔야 하는 빈곤한 삶에 찌든 중만은 엄청난 지폐 뭉치가 든 가방을 발견하고 욕심과 양심 사이에서 갈등한다.
사랑이라 믿었던 연희가 빚만 남기고 사라졌다! 덕분에 이 구역의 대표 호구가 된 태영(정우성)은 사채업자 박사장의 협박에 시달리고, 벗어나기 위해선 큰돈을 마련해야 한다.
빚을 갚기 위해 유흥업소에서 일하는 미란(신현빈)! 빚보다 무서운 남편의 폭력으로 고통받는 미란에게 드디어 동아줄이 내려왔다. 그래서 잡았다. 다만 썩은 동아줄 인지도 몰랐을 뿐... 점점 더 나락으로 떨어지는 그녀에게 드디어 구원의 손길이 나타났다!
산전수전 다 겪으며 화류계에서 버틴 연희(전도연)! 하지만 더 이상 버틸 힘이 없어진 걸까? 갑자기 흔적도 없이 사라졌다. 과거도 행방도 묘연한 연희는 어디에 있는 걸까?
영화의 주인공들은 모두 각자의 이유로 돈이 필요하다. 그런 그들에게 절묘한 순간에 떡하니 나타나는 돈 가방! 과연 그 돈 가방은 어디서 왔고, 주인이 누구인지 밝혀내는 것이 영화의 큰 줄기이다. 그리고 제목에서 대놓고 말하듯 영화의 주요 인물들은 돈 가방 속 거액을 차지하기 위해 인간이기를 포기하고 짐승에 가까운 행동을 서슴지 않는다. 하지만 돈 가방은 계속해서 돌고 돌며 사람들의 악한 본성을 자극하는데... 인간의 탐욕에 의해 이리저리 옮겨지는 돈 가방! 과연 누가 차지할 것인가?
스릴러 영화에 대한 타는 목마름을 완전히 해결해주진 못했지만 꽤 집중해서 봤다. 원작의 구성인지 감독의 새로운 설정인지 모르지만, 사건들을 조각내어 시간을 뒤섞어 놓았다. 그래서 탐정놀이하며 영화를 보는 내게 혼선을 주었지만, 너무 쉽게 풀리면 또 긴장감이 떨어지고 재미없는 지라... 이런 트릭이 있는 것이 나쁘지 않았다.
명불허전 특급 배우들의 명품 연기도 좋았다. 다만 이토록 뛰어난 배우들을 모았는데..
뭔가 아쉬움이 남았다. 마치 특급호텔 뷔페에 갔을 때의 기분이랄까?
호텔 뷔페에 가기 전엔 여러 가지 훌륭한 음식들을 먹을 생각에 엄청난 기대를 한다. 하지만 막상 식사가 끝나고 나면, 수십 가지의 요리 중 기억에 남는 요리는 한 두 가지 정도? 그리고 괜히 본전 생각이 든다. 다음에는 이 돈으로 한우나 사 먹을까?
이 영화가 그랬다. 포털사이트의 영화 소개를 보면 8명의 주연배우라 나왔는데, 그러기엔 일부 인물들의 역할이 너무나 빈약하다. 드라마도 아니고, 짧은 시간에 모든 스토리를 다 담을 수는 없었겠지만 이럴 거면 왜 8명의 주인공이라 소개했는지 의문이다.
영화는 정우성으로 시작해 전도연으로 끝난다. 영화 초반은 정우성의 잘생김이 화면을 채우지만 후반부에 가면 전도연의 압도적인 아우라 때문인지 정우성이 기억에도 안 남는다. 그만큼 전도연의 팜므파탈 연기는 대단하다! 그래서 전도연이 조금만 더 일찍 등판했다면 어땠을까 하는 아쉬움이 든다. 특히 전도연이 맡은 연희라는 여주인공은 8명의 배우들 중에서도 가장 큰 존재감을 드러내는 여왕벌 같은 존재이다. 헌데, 왜 연희가 지푸라기라도 잡고 싶은 짐승이 되었는지에 대한 이야기가 부족한 것 같다. 영화가 주는 정보만으로 보기엔, 그저 돈에 욕심이 많아 보이고 연희가 어쩌다 최악의 상황까지 갔는지에 대한 처절함이 보이지 않았다.
이쯤에서 드는 잡생각!
일본의 유명 소설이 원작이고, 제목부터 정해져 있었기에 어쩔 수 없겠지만...
지푸라기라 표현되기에 돈 가방의 존재감이 너무 크다. 과연 거액의 돈 가방 앞에서 흔들리지 않을 사람이 몇 명이나 있을까? 원래 돈이란 것이 없으면 없는 대로, 많으면 많은 대로 더 가지고 싶은 것 아니던가?
물론 세상에 공짜는 없다! 애타게 기다리는 행운도 쉽게 오지 않는다. 설령 온다 할지라도 행운은 혼자 오지 않는다. 불행이라는 무서운 그림자가 따라오니, 모쪼록 긴장의 끈을 놓지 말아야 한다.
(엄청난 스포일러지만 영화 속 돈 가방을 손에 넣은 주인공들 역시 대부분 안타까운 결말을 맞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