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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우아 Apr 26. 2020

행복의 단추를 채우는 완벽한 방법

숨은 행복 찾기

‘이번 생의 마지막 미션! 실종된 아들을 찾아라’는 카피에 이끌려 보게 된 영화 

<행복의 단추를 채우는 완벽한 방법>. 

추리물일까 싶었는데, 행복의 의미를 찾는 가족드라마였다. 



영화는 얼핏 보기에도 어색한  아버지와 아들이 먼 길을 떠나면서 시작된다. 이들의 목적지는 신원불명의 남성이 보관되어 있는 시체안치소, 어쩌면 그곳에 그들의 잃어버린 가족이 있을지도 모른다. 


늘 실종된 아들을 찾는 전단지를 가지고 다니는 노년의 신사 빌 나이(앨런 역)

            

가짜 상표의 장난감을 사주고, 가짜 가수의 앨범을 들으며 아내 없이 홀로 두 형제를 키웠다. 녹록지 않은 형편에 어쩔 수 없는 선택이었지만 아들을 사랑한 아버지의 마음은 진짜였다. 그런데 어느 날 큰 아들이 집을 나갔다. 그 날 이후 아들과 닮은 사람을 봤다는 소식을 들으면 어디든 마다하지 않고 전국을 찾아 헤맸다. 하지만 이번만큼은 아들이 아니었으면 좋겠다... 아들을 만나면 직접 들어야 했다. 왜 그렇게 사라져야 했는지, 그것이 아버지의 속마음이었다. 


실종된 형의 그늘 속에서 어둡게 살아야 했던 둘째 아들 샘 라일리 (피터 역)

                

낱말 보드게임을 하던 25년여 전 어느 날 형이 집을 나갔다. 그날 사라진 것은 형만이 아니었다. 한 가족의 평범한 행복마저 함께 사라졌다. 곁에 있는 아들은 신경 쓰지도 않고 형을 찾아 나서는 아버지를 보며 자랐고, 어느새 남편이 되고 한 소년의 아버지가 되었다. 따스한 아버지의 사랑을 느끼고 싶었지만, 아버지의 시선은 늘 형의 그림자를 쫓고 있다. 그런 아버지가 서운하고 원망스러워 자꾸 화가 난다. 여전히 형만을 그리워하는 아버지에 대한 속상함이 자꾸 투덜거림으로 표출된다.



갈등의 골이 깊은 부자를 제외한 나머지 인물 관계는 나쁘지 않다. 심지어 세대차이가 꽤 날법한 할아버지와 손자의 관계는 멋지게 나온다. 맞춤 양복 재단사인 주인공이 손자에게 양복 입는 법을 알려주는 부분은 특히 인상적이다. 


실제로 영화의 원제목인 ‘SOMETIMES, ALWAYS, NEVER’는 쓰리 버튼 양복의 단추에 대한 설명이다. 할아버지는 양복을 입는 남자라면 꼭 기억하라 말한다. 가끔 채워야 할 단추, 항상 채워야 할 단추, 결코 채우지 말아야 할 단추가 있다는 것을... 이 부분을 착안해 한국에서는 ‘행복의 단추를 채우는 완벽한 방법’이라고 새롭게 바꾼 것 같다. 영화가 주는 메시지를 생각한다면 의외로 잘 어울리는 선택이라고 본다.


몇 시간을 함께 있는 것조차 어색한 아버지가 갑자기 아들의 집에 머물겠다고 하면서 새로운 전개가 시작된다. 손자와 함께 방을 쓰는 수고로움도 마다하지 않고, 오히려 손자의 컴퓨터를 차지해 몇 날 며칠 낱말 보드 게임을 하던 아버지. 어느 날 형을 찾은 것 같다고 말하던 아버지마저 갑자기 사라지며 영화는 절정으로 치닫는다. 정말 아버지는 형을 찾았을까? 그 둘은 함께 만나고 있을까?



영화는 대놓고 감동적이지도 마구 웃기지도 않지만, 가족의 실종이라는 심각한 이야기를 잔잔하고 감각적으로 풀어낸다. 화면 속에 등장하는 레트로 소품들과 멋진 풍경들이 마치 쨍한 색감의 유화를 보는 느낌마저 준다. 

그리고 스크래블 게임을 주요 장치로 활용해 호기심을 유발한다. 

알파벳이 적힌 플라스틱 조각들로 낱말을 만드는 보드게임 스크래블. 사실 이 게임은 삼부자가 즐겨하던 놀이였고, 아들이 사라지기 전 함께 했던 마지막 추억이다. 그래서 주인공인 아버지는 게임을 하다 보면 아들이 사라진 이유를 찾을 것이라 생각했다. 그리고 어딘가에서 아들이 나와 스크래블 게임을 하고 있다고 여겼다. 



주인공들이 스크래블 게임을 하는 모습들을 보면서 이 게임이 가족의 모습을 닮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서로 다른 알파벳이 모여 하나의 낱말을 만들 듯, 서로 다른 개인이 모여 가족이 되고 함께 살아간다. 내가 찾는 알파벳이 사라졌다고 게임에서 무조건 지지 않는다. 남아 있는 알파벳들로 만들 수 있는 단어를 생각해 낸다면 더 많은 점수를 획득할 수 있다. 가족도 마찬가지다. 형이 사라진다고 가족마저 사라지지 않는다. 비록 슬프지만 남아있는 가족들이 다시 뭉쳐 살아가면 된다.  


영화가 끝나는 순간까지 사라진 형의 모습은 등장하지 않는다. 이 부분이 아쉽기도 했지만, 전하는 메시지가 분명했기에 이해할 수 있었다. 


이 영화에서 작은 아들이 찾고 싶은 건 사라진 형이 아니라 과거라는 늪에서 빠져나오지 못한 아버지였다. 형의 그림자에서 벗어나 아버지와 보통의 일상을 함께 누리는 것, 그것이 작은 아들이 바라는 행복이었다. 실종된 큰아들을 찾느라 곁에 있는 작은 아들의 괴로움을 보지 못했던 아버지의 모습에서 우리들의 모습을 발견한다. 


우리는 때때로 잃어버린 것, 놓쳐버린 것에 미련을 남긴다. 현재 내가 가지고 있는 것들을 외면한 채 자꾸 과거의 영광에만 집착한다. 하지만 지금을 사는 우리에게 중요한 건 현재이다. 지금 내 주변에 있는 가족들, 그들과 함께 하고 있는 순간들, 평범한 듯 보이는 그 일상이 바로 행복이다. 과거의 영화로웠던 순간들은 그저 추억으로 남겨야 한다. 그 과거에 발목 잡혀 끌려가다 현재 눈앞에 있는 것들을 보지 못한다면 행복이 찾아온 것도 보지 못할 수 있다. 

행복은 결코 멀리 있지 않다. 항상 우리 주변에 있다. 다만 우리가 그것을 찾지 못했을 뿐... 


이쯤에서 이 영화와 어울리는 명언을 소개하며 마무리한다.


제임스 오펜하임

“어리석은 자는 멀리서 행복을 찾고, 현명한 자는 자신의 발치에서 행복을 키워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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