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등학교 시절(2)
초등학교 3학년 — 5학년, 어느 봄날부터 가을까지의 기억
3학년 · 봄 · 일기장
3학년이 되던 봄 아침, 교실 문을 열었을 때 창문으로 들어오는 햇살이 유독 따뜻했다. 새 학년, 새 반, 새 자리. 설레는 마음으로 책상 위에 연필과 공책을 가지런히 늘어놓으며 나는 생각했다. 올해는 더 많은 것을 배우고 싶다고. 그 시절 나에게 새로운 것을 안다는 일은, 상장보다도 사탕보다도 더 달콤한 즐거움이었다.
그런데 그해 봄이 특별히 빛났던 건 따로 이유가 있었다. 좋아하는 여자아이가 같은 반이 된 것이다. 이름을 소리 내어 부르지 않아도, 그저 같은 교실 안에 존재한다는 것만으로 하루가 충분히 환했다. 쉬는 시간에 그 아이의 웃음소리가 들리면 괜히 공책을 들여다보는 척했고, 급식 줄에서 그 아이가 앞에 서 있으면 발끝이 살짝 멈추곤 했다. 말 한마디 걸지 못하면서도, 그 아이가 있는 방향으로 고개가 저절로 돌아가는 것을 어쩔 수 없었다.
담임 선생님은 일기를 잘 쓴 아이를 앞으로 불러 칭찬해 주셨다. 그 시절 일기란, 매일 써야 하는 의무였고 방학에도 예외가 없었다. 개학 날에는 과제물로 제출까지 해야 했으니, 아이들 사이에선 일기장이 작은 공포의 대상이기도 했다. 그러고 보면 친척 아저씨의 일화가 떠오른다. 방학 내내 동네 친구들과 뛰어놀기만 하셨던 그분은, 개학 며칠 전이 되어서야 비로소 펜을 들었다고 한다. 첫날 일기에는 이렇게 적혔다. "아침 먹고 친구들과 놀았다. 점심 먹고 친구들과 놀았다. 저녁 먹고 잤다." 그리고 그 다음날부터 방학이 끝나는 날까지, 일기의 내용은 단 한 줄이었다. "어제와 같음." 명절마다 어른들이 이 이야기를 꺼내실 때마다 웃음이 터지는 건, 그 솔직함이 어쩐지 우리 모두의 어린 시절을 닮아 있기 때문일 것이다.
방학이 끝나고 일기 검사날, 선생님은 나와 그 아이를 함께 앞으로 불러내셨다. 하루도 빠짐없이 성실하게 썼다고, 내용도 알차다고. 칭찬을 받는 동안 나는 귀가 빨개졌다. 그 아이와 나란히 서 있다는 것만으로도, 열 살의 심장은 충분히 뜨거웠다.
4학년 · 가을 · 청소 시간
4학년이 되어서도 그 마음은 사그라들기는커녕 오히려 커졌다. 하지만 그 시절 시골 학교에서 누군가를 좋아한다는 말은 입 밖으로 꺼낼 수 있는 것이 아니었다. "얼레리 꼴레리"—단 한 번의 놀림이면 교실 전체가 웃음바다가 되고, 그 수모를 감당할 자신이 없었던 소심한 나는 마음을 가슴 깊은 서랍 속에 넣고 잠가두었다.
부반장이었던 나는 청소 시간이 끝나면 각 구역을 점검하고 선생님께 보고하는 역할을 맡고 있었다. 어느 날 오후, 낮게 기울어진 햇살이 교실 바닥에 길게 누워 있던 청소 시간이었다. 빗자루를 든 그 아이의 등이 눈에 들어왔다. 창문으로 들어온 빛이 그 아이의 머리 위에 내려앉아 있었고, 먼지가 공중에 반짝이며 떠다니고 있었다. 나는 그 순간 이유를 알 수 없는 충동에 사로잡혔다. 아무 말도 하지 못하고, 아무것도 표현하지 못하는 이 답답한 마음을 어떻게든 그 아이에게 전하고 싶었던 것일까. 나는 살며시 다가가 그 등을 한 번 툭 치고, 그대로 교실 밖으로 달아났다.
그 아이는 울었다. 아무 이유도 모른 채 등을 맞고 눈물을 흘리는 그 아이 앞에 친구들이 몰려들었고, 이미 복도 끝에 숨어 있던 나는 심장이 발끝까지 떨어지는 것 같았다. 그 장면을 목격한 친구가 있었다. 결국 나는 선생님 손에 이끌려 교무실로 갔고, 반성문을 쓰는 내내 얼굴을 들지 못했다. 집으로 돌아오는 길, 논 사이로 난 좁은 길을 걸으며 나는 한참 울었다. 때린 것이 잘못이라는 걸 알면서도, 그 마음을 설명할 방법을 몰랐던 것이 더 서러웠다.
며칠 후 선생님이 둘을 불러 사이좋게 지내라 하셨고, 나는 엉성한 목소리로 사과를 했다. 그 아이는 고개를 끄덕였다. 나중에 물어보니 기억에도 없다고 했다. 나에게는 평생 잊히지 않을 오후가, 그 아이에게는 그냥 스쳐 간 하루였다는 것이 이상하게도, 오래도록 마음에 남았다.
5학년 · 늦가을 · 대전으로 가는 길
5학년이 되며 우리는 다른 반이 되었다. 그 시절 다른 반이란, 거의 다른 세상이나 마찬가지였다. 쉬는 시간이든 점심시간이든, 남의 반 교실 앞을 기웃거리는 일은 없었다. 그 아이가 있는 교실 앞을 지나치는 일조차 일부러 피했다. 마음을 들킬까 봐, 소심한 나는 스스로를 멀리 두는 방법을 택했다. 그렇게 5학년은 조용히 흘러갔다.
그해 가을, 나는 처음으로 동네를 벗어났다. 충남도 교육청 주관 과학경시대회에 우리 학교 대표로 나가게 된 것이다. 대전. 그 두 글자는 내게 상상 속의 도시였다. 읍내인 대천조차 한 번도 나가본 적 없는 내가, 도청 소재지인 대전까지 가야 한다는 것이었다. 선생님들은 이미 아셨던 것 같다. 도시 아이들과의 차이를. 경시대회를 한 달 앞두고 해당 과목 선생님은 매일 아침 하숙방에서 나를 특별히 가르쳐 주셨다. 이른 새벽, 잠에서 채 깨지도 않은 얼굴로 잠옷 바람에 문을 열어주시던 선생님의 모습이 지금도 눈에 선하다. 차가운 새벽 공기를 맞으며 선생님 방 문을 두드리던 그 시간이, 지금 생각하면 참 소중하고 따뜻하다. 친구들은 "양아들"이라고 놀렸지만, 나는 그 놀림이 싫지 않았다.
경시대회가 열린 대전 시험장에 들어서던 순간은, 충격이라는 말 외에 달리 표현할 방법이 없다. 도시 아이들은 달랐다. 얼굴이 뽀얗고, 옷이 깔끔했으며, 무엇보다 눈빛이 당당했다. 우리 동네 아이들과는 어딘가 다른, 다른 세상에서 자란 사람들 같았다. 시험 감독 선생님의 날 선 한마디가 가슴에 박히기도 했지만, 그보다 더 깊이 새겨진 것은 따로 있었다. 이 세상은 내가 알던 것보다 훨씬 넓다는 것. 그리고 그 넓은 세상에서 나보다 더 열심히, 더 잘 준비된 아이들이 이미 수도 없이 많다는 것.
대전에서 돌아오는 버스 안에서 나는 창문에 이마를 기대고 바깥을 바라보았다. 논이 펼쳐지고, 산이 멀어지고, 저물녘의 하늘이 주홍빛으로 물들어 갔다. 지고 오는 건지, 이기고 오는 건지도 몰랐다. 다만 확실한 것은, 아침에 집을 나섰던 그 소년과 지금 버스에 앉은 소년은 조금 달라졌다는 것이었다. 세상이 넓다는 걸 눈으로 본 사람은, 다시 예전으로 돌아갈 수 없다.
그 소년은 아직도 내 안에 있다.
일기장을 꼭 쥐고, 빨개진 귀를 감추며,
버스 창문에 이마를 기대고 먼 곳을 바라보던—
그 작고 따뜻한 소년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