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형, 요즘 폼 좋은데요?”
훈련이 끝나고 짐 정리하는 나에게 정우가 다가왔고, 진심인지 아닌지 알 수 없는, 하지만 본인은 진심이라 믿으며 하는 그런 말을 여느 날과 다를 바 없는 장난조로 내게 건넸다.
“요즘 좀 공이 발에 잘 맞는 거 같아.”
“이러다 주전 꿰차겠어.”
“주전은 무슨. 폼 아무리 좋아도 소용 없다고. 현준이나 성태, 아니면 지유 오면, 난 그냥 벤치야. 2군 따리라고, 2군 따리.”
동고FC에서 나는 2군 따리다. 동네 축구 고수들이 모였다는 동고FC에 소속되긴 했지만, 가만 생각해 보면, 나는 축구를 단 한 번도 잘해 본 적 없다. 짧은 시간에 폼을 아무리 끌어올린다 해도 한계가 있을 터. 팀에서 측면 수비수 주전 자리는 애초에 젊고 빠르고, 게다가 감각도 남다른 친구들의 것이었다.
“에이, 2군 따리라니. 그렇게 말하면 너무 슬프잖아요.”
부정적이거나 비관적인 말에는 늘 어색해하는 정우가 이번에도 그랬던 것인지 그렇게 말했다. 현실을 봐, 정우야. 말이 슬프다 해서 그게 아니게 되는 건 아니란다. 나는 이런 말을 꺼내려다, 이게 웬 훈장질인가 싶어 그렇게 하진 않았고 그저 샐샐 웃으며 먼저 자리를 떴다.
언젠가 다른 팀에서 디비전 리그에 참가한 적이 있는데, 지금 동고FC에서처럼, 그 팀에서도 나를 늘 교체 자원으로 썼다. 나도 잘할 수 있는데. 내가 쟤보다 더 잘하는 거 같은데. 애초에 나를 부전 선수로 여기고 있는 것 같은 팀 분위기를 보면 더 잘하고 싶은 마음이 생겼다가도 없어지곤 했다. 못한다고 하면 더 잘하려 노력하는 사람이 있는 반면, 아예 안 해 버리는 사람이 있기도 한데, 나란 사람은 후자에 가깝달까. 잘한다 잘한다 해 주면, 정말 몸이 바스러질 때까지 뛰어다닐 텐데.
리그 경기 전날 밤 선발 라인업이 공개됐고 내 이름은 역시나 교체 명단에 있었다. 이번에도 부전이란 생각에 의욕은 떨어졌고 주장에겐—그 팀은 주장이 곧 감독으로서 선발 선수 정하는 일도 주장의 몫이었던 터라— 서운한 마음이 들었다. 경기 며칠 전부터 몸 관리를 해야 한다고 하지만, 그게 안 되면 바로 전날이라도 잘 먹고 잘 자야 한다고 하지만 나는 잘 먹지도 않았고—가볍지만 술도 마신 것 같은데— 잘 자지도 않았다. 경기 직전 워밍업을 할 때도 그저 설렁설렁 몸을 풀었다. 어차피 안 들어갈 텐데, 들어가도 한참 뒤에나 들어갈 테니 그때나 좀 풀면 되겠지, 하는 심술에서. 그런데 이게 무슨 일이람. 측면 수비수 한 자리에 선발로 들어가기로 했던 영호가—신분증이었나, 디비전 리그에선 AD카드로 검인을 하는데 그러면 그게 AD카드였나, 그런데 보통 주장이 선수들 AD카드 모두를 가지고 다니는데, 아무튼 검인을 하는 데 필요한 무언가를 집에 두고 왔다 해서— 경기를 뛸 수 없게 되었다. 운영 테이블에 제출하는 선발 명단에는 영호의 이름이 아니라 내 이름이 쓰였고, 그렇게 나는 갑작스럽게 선발 선수로 투입되었다. 내 정강이 보호대 어딨어, 정강이 보호대!
결과는 뻔했다. 몸은 너무 피로했고, 숨도 제대로 쉴 수 없었다. 한 번의 실수. 그리고 그 실수를 만회하기 위한 무리한 도전. 또 다른 실수. 다시 그걸 만회하기 위한 무리한 도전. 그렇게 실수의 연속. 엉망 그 자체라 할 수 있었다. 무엇보다 슬펐던 것은, 내 모든 무능을 내가 보고 있었다는 것이다. 전반전이 끝나고 나는 교체되어 벤치에서 경기를 지켜볼 수밖에 없었다.
나는 그날 깨달았다. 주전 선수가 아니라 해서, 그러니까 2군 따리라 해서 준비를 게을리하면, 정말로 2군 따리가 된다는 것을. 사실, 남들이 나를 부전 선수 취급하는 건 그리 큰 문제가 아니었다. 서로 스타일이 안 맞다 생각하고 가벼이 넘어가면 될 일이니까. 아니면, 감독을 욕하거나 주장을 욕하거나, 아니면 팀 전체를 욕하면 그만이니까. 어차피 열심히 해도 나 안 쓸 거잖아? 나 같은 선수를 못 알아보고 말이야. 언젠가 후회할 거다. 그냥 너네끼리 잘 먹고 잘 살아라. 진정 문제인 것은, 남이 아니라 바로 내가 나를 그렇게 생각하게 된다는 거. 야, 나라도 나 안 쓰겠다. 이러니까 2군 따리라는 거지. 인정.
마음을 고쳐먹은 건—완전히 고쳐먹어 마치 새 사람이 되었다고 하기엔 여전히 비관하는 모습이 남아 있긴 하지만— 그때부터였다. 그래서 지금은 어떻게 됐냐고? 아까 말했잖아. 여전히 난 2군 따리다. 그래도 난, 훈련에도 경기에도 늘 인생 마지막 축구라 생각하고 임하고 있다. 경기에서 겨우 1분 뛰고 나온다 해도 후회 없이 뛰었으면 좋겠다는 생각뿐이다. 내 진가를 알아보는 사람이 언젠가 나타날 거야, 하는 기대는 그 다음에나 할 일이 되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