겨울도 이제 지나가는지 슬슬 날이 풀리기 시작할 무렵, 주말 연습 경기에서는 A팀과 B팀이 맞붙었다. 신규 회원 모집이 한창이기도 했고 해서 입단 테스트를 보러 온 지원자도 있었는데, 그중 한 친구가 기억이 난다.
처음에는 살갑게 먼저 인사하던 그였다.
"저는 김철수라고 하는데, 성함이…?"
"저는 박성호입니다."
"윙백 보시죠? 저는 윙포워드 봐요. 말 편하게 하세요. 잘 부탁드립니다."
"네, 저도 잘 부탁드립니다."
폼은 딱 선수 출신. 그는, 성인 선수가 아니더라도, 적어도 고등학교 때까진 축구를 한 걸로 추정되는, 그렇지 않고서야 그럴 수가 없는 그런 폼을 가진 선수 출신이었다. 빠르게 생겼군. 그는 왼쪽 공격수 자리에 배치되었고 나는 늘 그렇듯 왼쪽 수비수 자리에 배치되었다. 아무래도 측면 공격수와 측면 수비수는 서로 의사소통해야 할 일이 많기 때문에, 그의 살가움에는 그런 이유가 있지 않았을까 싶다. 그래도, 먼저 말 걸어주고, 짜식. 인성이 됐군.
경기가 시작되고 상황은 달라졌다. 그날 감독은 새로운 전술을 시도한다고 하였는데, 측면 수비수부터 시작해서 최전방 공격수까지 흔히들 쓰는 방식과는 꽤 다른 방식으로 쓰는 전술이었던 터라, 그 친구에게는 그게 낯설었을 터, 팀 미팅 때 전술 설명 안 듣고 뭐 했나 싶었지만, 그래서인지 그의 불만은 자꾸만 나에게로 향하는 것이었다.
너무 올라오지마. 올라오지 말라니까. 후…. 그는 한숨을 쉬기도 했고 짜증 섞인 말로 쏘아붙이기도 했다. 안다, 이 녀석아. 나도 답답하다. 하지만, 내가 이해를 제대로 한 게 맞다면, 나는 감독의 지시대로 움직이고 있었다. 윙포워드의 움직임이 제한되는 것처럼 보이는 전술이었으니, 윙포워드로 뛰고 있는 그에겐 답답한 일이 아닐 수 없겠지. 그리고 그 움직임을 방해하는 게 누구? 바로 나, 윙백이었거든. 나중에 가서는 내 움직임 하나하나에 그는 고개를 절레절레 하고 있었다. 하긴, 전술이랑은 상관 없이, 기본적인 패스조차 똑바로 하지 못하는 내 모습, 나 같아도 복창 터지겠다. 그래, 나 못한다.
아까의 그 살가움은 이미 저 달나라로 떠난 지 오래. 1쿼터가 끝났고 벤치에 돌아가는 길에 나는 그에게 수고했다, 다음 쿼터엔 더 잘하겠다, 뭐 이런 인사를 건넸는데, 인사를 받는 둥 마는 둥 그는 어색하게나마 예, 예, 하고는 획 지나쳐 가지고 저기 먼저 걸어 들어가는 것이 아니겠는가. 서운하네. 근데 걸음도 빠르네. 나는 그와, 지난 쿼터에서 서로 원하는 바가 무엇이었는지, 앞으로는 어떠해야 하는 건지, 뭐 이런 것들로 더 이야기했으면 하는 마음이었지만, 싸늘하게 식어버린 그의 모습을 보니 말을 다시 걸기가 무서웠다. 잘 좀 가르쳐 주지, 치.
우린 살면서 한 번쯤은 누군가에게 화살을 쏜다. 짜증, 욕, 비난, 질책 등등의 모양으로. 하지만 그 다음은? 화살을 쏜 다음은? 이에 제대로 된 답을 아는 사람은 별로 없는 것 같다. 쏠 만하니까 쐈다고, 살 맞을 짓 했으니까 맞은 거라고. 우린 그저 그렇게 말할 뿐이다. 더 할 말 없으니, 그냥 나가 죽으라는 걸까?
사람이라는 동물 두 마리 이상 모이는 곳은 잘도 피해다니는 나지만, 그래도 팀워크가 뭔지는 알 것 같은데. 세상엔 팀워크라는 한 단어를 두고도 나와는 전혀 다르게 생각하는 사람이 꽤 많은 것 같다. 어쩌면 애초부터 팀이라 생각하지 않은 것일지도 모를 일이지만 말이다.
무슨 이유에서인지, 그 철수라는 친구는 우리팀에 들어오지 않게 되었다. 어딘가에서 마음 맞고 실력도 맞는 사람들과 다치지 않고 오래오래 축구를 했으면 하는 마음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