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파키뉴 Oct 26. 2024

경기가 끝난 후

KA리그 참가 명단에 이름 석 자는 올렸지만 그동안 이런저런 핑계로 경기에 참여하지 않다가 리그 전반기가 끝나갈 무렵이 되어서야 마침내 처음으로 참여하게 된 어느 여름날, 그날은 비가 참 많이 왔다. 간만에 수중전이라. 상대는 현재 K-5 리그에 참가하고 있는, 선수 출신이 많은 팀이었다. 그래서인지 그날 감독은 경기 전 팀 미팅에서 유독 수비 집중력을 강조했다. 물론, KA리그에 참가하는 팀들 전부가—우리 동고FC만 빼고, 우린 선수 출신이 두 명쯤 될까— 선수 출신 대다수로 꾸려져 있었기에 감독이 그날만 유독 그랬다고 하는 건 좀 이상하긴 하지만, 내겐 리그 첫 경기였던지라 아무래도 그렇게 보였다.


90분 간의 경기는 예상대로 상대의 공격을 막아내느라 정신없이 흘러갔다. 공을 지키는 데 좀 안일한 면이 있었는지 상대 공격수의 몸싸움에 밀려 경기장 바닥에 내동댕이쳐지기도 했고, 상대 공격수의 돌파를 막으려고 타이밍을 재다가, 걸려들었다 요놈 하고 다리를 뻗었으나—보통은 아주 보기 좋게 성공하곤 하는 태클이었는데— 공이 아니라 땅을 차게 되어 뒤로 나자빠지기도 했으며, 상대의 롱킥 한 방에 허용된 나의 뒷공간으로 뛰어들어가는 공격수를 따라잡으려다—점잖게 뛰어갔다면 도저히 따라잡을 도리가 없었기에, 마침 균형을 잃고 넘어질 뻔도 하였고 해서, 기왕 넘어지는 거 길이라도 막자는 심정으로— 어쩌다 덮치게 되어 그와 함께 엉켜 넘어지기도 했다. 한편 경기 중에 춤을 추기도 하였는데, 흥에 겨워 그런 것은 아니고, 상대 프리킥을 막으려고 제자리에서 엉덩이를 씰룩씰룩 하는 모습이 꼭 춤을 추는 것처럼 보였달까. 한바탕 땀을 쏟아내고 나니 주심의 경기 종료 휘슬이 울렸고, 이게 웬걸, 4:2로 결국 우리가 이겼다는 걸 그제서야 알 수 있었다. 우리가 선출 팀을 이기다니!


집으로 돌아가는 길, 비가 그치려는 기색을 보이던 아까의 하늘과는 달리, 빗발은 더욱 굵어졌다. 온통 땀으로 젖은 몸을 씻어내느라 밍기적거리며 경기장을 나온 터라, 어둡고 외로운 밤길, 우산을 때리는 빗소리에 나는 마음속에서 무언가 헛헛함을 발견했다. 승리의 기쁨은 온데간데 없고, 그날 있었던 나의 실수들이 하나씩 떠오르기 시작한 것이었다.


두 개의 실점, 이건 모두 내 눈 앞에서 벌어진 일이었다. 하나는 내가 우리 수비수를 돕지 못해 그렇게 된 것이었고, 다른 하나는 높은 곳까지 올라가서 상대의 공을 커트하는 데 성공하여 잠시 안도하는 사이 나의 빈 자리에 상대가 공을 빠르게 연결해서 그렇게 된 것이었다. 수비수가 수비를 잘 해야 할 텐데…. 그렇다고, 다시 생각해 보니 패스 실수투성이었던지라 공격을 잘 한 것도 아니었다. 축구, 어렵네.


1쿼터 언젠가, 그래도 공을 정확히 때려 태클에 성공하기도 하였는데, 아무리 공만 때렸다 해도 드리블하는 선수에게 어느 정도 힘이 가해질 때가 있기 마련이라, 상대 공격수는 스텝이 꼬이게 되었다. 착지를 안정적으로 하지 못해 그런지 한바탕 스프린트를 벌인 후 그는 자신의 한 쪽 허벅지 뒷편을 붙잡았다. 다음 공격 기회에서 그는 뛰려다 멈췄고, 1쿼터가 끝나갈 무렵에는 아예 걸어다녔다. 다음 쿼터부터는 그를 볼 수 없었고. 그 친구, 오늘 나 때문에 다치고 가네. 미안하구려.


썩 좋지 않은 마음으로 나는 버스 정류장으로 향하고 있었다. 160번 버스였나, 600번 버스였나, 아무튼, 둘 중 하나가 저기 정류장에 모습을  드러냈다. 경기장에 올 때 탔던 그 버스였다. 몸도 마음도 무거웠던 나는 비도 많이 오고 있고, 곧 서대문역까지 가는 다른 버스가 2분 후에 도착한다는 앱의 안내도 있고 해서, 버스를 잡으려고 굳이 뛰어가는 수고를 하지는 않았다. 그리고 그 다음에 오는, 역시나 160번이었나 600번이었나 하는, 낯선 번호의 버스를 탔지.


“결국 편의점엔 못 갔어.”


그날은 집을 나서기 전에 저녁을 챙겨먹지 못했고, 어쩌다 그때 연락을 주고받던 친구 하나가 근처에 편의점에 들러 빵이라도 사 먹으라 했지만, 집합 시간 전에 경기장에 도착하지 못할 것 같다는 마음 졸임에 그럴 수 없었는데, 그 졸임이 꽤 컸던지 답장할 여유조차 없어 하지 못했던 답장을 나는 집으로 돌아가는 버스 안에서 늦게나마 그렇게 했다. 한편, 다른 메시지가 온 것도 확인하였는데, 직장 동료의 것이었고, 그것을 통해 그날따라 일이 몰려 이를 모두 처리하느라 저녁 먹을 시간이 없었다는 것도 기억이 났다.


친구에겐 밥 얘기 대신으로, 직장 동료에겐 일 얘기 대신으로, 우린 오늘 선수 출신 팀을 상대로 승리를 거두었다는 자랑을 하느라 스마트폰에 고개를 파묻고 있던 중, 왠지는 기억나지 않지만 잠깐 주변을 살피려 했는지 나는 고개를 들었다. 그리고 어떤 아저씨와 눈이 마주쳤고. 마치 노려보고 있는 것도 같았는데, 눈이 마주쳤단 사실에 겁이 난 것도 사실이고 해서, 난 눈을 깔아 다시 스마트폰으로 고개를 떨구었다.


“웬 놈이 날 째려보고 있어.”


쿵! 이어폰을 꽂고 음악을 듣고 있었지만 쿵, 하는 소리를 들을 수 있었다. 무슨 일인가 싶어 고개를 들어 저기 아래를 보니, 버스 중간쯤 되는 곳에서 어떤 사람이 배를 아래로 깔고 대자로 뻗어 있는 게 아니겠는가. 딱히 놀라진 않았지만 왠지 도와야 할 것 같다는 생각에, 보던 스마트폰을 가방에 넣고 그가 뻗어 있는 곳으로 달려 내려갔다. 심폐소생이라도 해야 하나.


“선생님! 괜찮으세요? 선생님!”


쓰러진 사람은 아까 그 아저씨였다. 심폐소생은 무슨, 그는 눈을 뜬 채로 바닥과 뽀뽀를 하고 있었는데, 그걸 보니 그가 그저 제 몸을 가누기 힘들 정도로 거나하게 취해 있을 뿐이라는 점에 한 번 안심할 수 있었고, 그래서 아까 나와 눈이 마주친 건 마주친 게 아니었다는 점에 또 한 번 안심할 수 있었다. 나는, 선생님, 선생님, 하며 소리도 쳐 보고 흔들어도 보았지만, 그는 아무런 대답을 하지 않았다. 움직이지도 않았고. 눈 뜨고 자는 듯한, 그런 느낌? 그리고 곧 갑자기 깼고. 어으윽. 예. 예.


곧 버스가 빨간불에서 멈췄고, 기사는 운전석 밖으로 나오며 무슨 일인지 살폈다. 취하신 거 같아요. 아이고, 그런 것 같더니만. 그 아저씨는 스스로 일어나기 어려워 보였고, 일단 앉혀야 한다는 데 우리 둘은 동의했기에, 나는 그의 위를 기사는 그의 아래를 잡았다. 으쌰쌰쌰. 힘겹게 그를 일으켰고 가까이에 있는 노약자석으로 질질 끌고가 앉혔다. 그의 것으로 보이는 지갑과 스마트폰이 저기 멀리 바닥에 떨어져 있어 나는 그것들 역시 주워 왔다.


“선생님! 지갑이랑 핸드폰, 여기 넣었어요. 지갑! 핸드폰! 여기 넣었어요, 여기!”

“감사함미다, 혀님. 감사하미다.”

“선생님, 댁이 어디세요?”

“…”

“집 어디에요, 집!”

“파… 파크비.”


나는, 다시 운전석으로 돌아가 운전을 하고 있는 기사에게 갔고, 파크빌이라고 아는지 물었다. 모르겠는데, 씁. 네, 알겠어요. 잠시만요.


“선생님, 어느 구예요, 어느 구! 마포구! 영등포구! 서대문구! 이런 구요! 구!”

“요… 요사구.”


난, 이 버스 용산구로 가요? 하고 기사에게 물었고, 기사는, 이건 마포까지밖에 안 가요, 했다.


“저… 이 버스 차고지가 어디에요? 저 분, 아예 차고지까지 데려가셔야 할 거 같은데요?”

“차고지는 안 되지. 차고지는 여기서 또 한참이에요.”

“아, 그렇군요. 그러면 어떡하죠?”

“어떡하긴 뭘 어떡해, 그냥 내려 드려야지.”

“사람이 저렇게 취해 있는데요?”

“그냥 내려서 택시 타라, 해야 돼.”


다음 정류장에서 그 아저씨를 내리게 하자는 기사의 말에, 나는 왠지 모르게 수긍을 했다. 한 정류장에서 버스가 멈췄고, 비는 여전히 억수 같이 내렸지만, 기사에게 잠깐 기다려달라, 말하고는 그를 일으켜 부축하여 버스에서 내리게 되었다. 조심히 내리려다 보니, 그 만취자의 천근과도 같던 무게는 온전히, 소중하고 또 소중한 내 두 무릎이 감당해야 했다. 무릎 친구들, 고생 많았어. 내가 미안해.


“선생님! 여기서 택시 타세요! 지갑 여기에 있어요! 가방 앞주머니! 지갑! 여기!”

“감사하미다, 혀님. 감사하미다. 혀님.”

“저 형님 아니에욧!”


무엇이 그토록 억울했는지, 비를 맞으면서도 사람 하나를 챙겨야 한다는 부담감에 정신이 없을 법도 했지만, 나는 그 아저씨가 나를 형님이라 부르는 데 마음이 불편해져 그렇게 단호하게 부인했다. 형님이라니. 50대 초반은 돼 보이는 아저씨가 말이야. 나, 아직 어려, 어리다고!


“꼭 택시 타세요! 꼭 택시 타셔야 해요! 꼭! 전 갑니다! 조심해서 가세요!”

“혀님, 감사하미다.”


나는 다시 버스에 올랐다. 내게 이런 일이 있었다는 건 아무도 모를 테니, 나라도 열심히 알려야겠다는 생각을 했고, 그래서 아까의 그 친구와 아까의 그 동료에게, 웬 아저씨가 넘어졌고, 그래서 나랑 기사님이 구출 작전 펼쳤고, 버스 안에는 우리 둘뿐이라 그럴 수밖에 없었는데, 그런데 알고보니 저기 앞쪽에 제3의 인물이 이 난리에도 유튜브 보면서 꼼짝 않고 있었고, 그 아저씨는 웬 정류장에 내려줬고, 지금은 다시 버스에 앉아 가고 있는데, 생각해 보면, 내가 서대문역으로 가니까 그 아저씨를 거기까지 데리고 가서 택시를 잡아줬더라면 어땠을까, 그랬다면 지금처럼 집엔 잘 가려나 하고 마음이 불편하진 않았을 텐데, 하다못해 서대문경찰서가 지척에 있으니 거기에 맡기고 와도 되고, 또, 가방 안에 지갑이랑 핸드폰을 넣어두는 건 좋은 선택이 아니었던 것 같다고, 기억을 못 할 테니, 차라리 자켓 안주머니에 넣어줄걸, 하는 이야기보따리를 풀어 놓았다.


어느덧 버스는 서대문역에 거의 다 와 있었고, 한 정거장 전부터 내릴 준비를 하자, 기사는 고맙습니다, 하고 거울을 통해 나를 보며 큰 소리로 인사했다. 이번에는 기사 차례. 내가 서대문까지 오는데, 차라리 여기까지 데려와서 그 분 택시 태워 보내면 어땠을까, 하는 걱정을 이번에는 기사에게 전했다. 괜찮다고, 어차피 아까 내려 준 곳이 이 시간에 경찰차가 많이 지나는 곳이라 문제가 생기기가 어렵다고 하는 기사의 말에 나는 조금 편해질 수 있었다. 버스는 이미 정류장에 도착했지만, 파란불이 들어오기 전까지 나는 기사와 이런저런 이야기를 더 나누었다. 그리고 나는 아까부터 할까 말까 했던 말을 기사에게 하고 말았다. 큰맘 먹고.


“기사님, 이것도 인연인데, 우리 사진 한 번 찍으시죠?”




버스에서 내리고 난 뒤 나는 다시 기사를 향해 돌아섰다. 그리고 마치 중세 남자 귀족들이 한다는 그런 인사 포즈를 흉내내며 큰 소리로 말했다.


“여기까지, 동고FC 3번이었습니다!”


물론, 이건 뻥이다. 푸하하하하하하하.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